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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ent Nov 04. 2021

갑툭튀

이러다 정말 좋은 엄마가 되는 건 아닐까?


는 갱년기다!

갱년기란 다시 삶을 사는 거라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지 불쑥불쑥 안 하던 말들이 자연스럽게 나오곤 한다. 며칠 전 평소 한 번도 묻지 않던 학원 원장님 연락처를 아들이 물었다. 그것도 문자로 급하게. 중2 앓이가 한창인 아들이 문자를 보내는 것도 요즘 흔한 상황은 아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진다.


며칠 뒤 오랜만에 아들과 점심을 먹는 중 생각이 나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들~원장님 전화번호 왜 물어봤어?"


얼마 전 끝난 중간고사 영어성적을 가져가야 하는데 성적표를 잃어버려서 다시 학교 영어 선생님에게 발행을 부탁드려서 사진 찍어 문자로 보냈다고 조곤조곤 얘기한다.

오늘은 기분 날씨가 맑음인가 보다.

점심 반찬이 맘에 들었나? 혼자만 생각해본다.

 그러고 보니 성적표를 안 가져왔다. 시험 끝난 지 2주 넘게 지나서, 가져왔어야 하는데. 또 조심스럽게 얼굴을 살피며 묻는다.

언제 교감신경이 항진돼 나를 천적으로 대할지 모르니^^

"성적표 나왔어? 안 보여 줬잖아"

잃어버렸단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그런 생각이 갑자기 나서 다시 물었다.

"아들 성적표 보여주기 싫어서 잃어버렸어?"

"응"하고 덤덤하게 말한다

아들은 솜씨쟁이다 따듯한 색감으로 그림을 그려 행복을 주곤 했다.지금은 절화중이지만^^


위로 5년 차 나는 누나는 공부를 곧잘 해서 점수 좋은 성적표를 많이 받아 왔었다. 방에 걸린 칠판에 적은 점수가 6년이 지난 지금도 흔적이 있다. 아마도 아무도 시험을 잘 치르란 말을 하지 않아도 부담이 있었나 보다.

남매는 뭐든 같이하곤 했었다.



갑자기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나답지 않게.

"아들! 영어 수학 그 정도 점수면 잘한 거지. 다른 과목도 평소처럼은 봤다며. 엄마는 지금도 좋아. 그리고 누나 보니까 고등학교 가면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3년은 정말 고생하더라. 중학교 때 많이 놀고 하고 싶은 것도 해 보고.

너 좋아하는 게임도 너무 지나치지 않게 실컷 해봐"

말하다 보니 신들린 듯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도 없이 책임지지 못할 말들을 해 버렸다.

"엄마는 성적보다 아들이 좋아하는 일을 찾았으면 좋겠어. 그게 뭐든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더 좋을 것도 같고. 그리고 건강이 제일 중요하니까 밥도 골고루 잘 먹고 좋아하는 축구도 많이 하고"

성적 때문에 시무룩해 보이는 모습이 안타까웠을까? 도무지 내일은 할 수 없을 것 같은 말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아무 말이 없었다. 그냥 어떤 표정도 없이 조용히 밥을 먹 아들이 왠 평온해 보였다. 뭔가 안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편안 마음이 물결처럼 번져 내게도 건너왔다.

순간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러다 내가 정말 좋은 엄마가 되는 걸 아닐까?'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데 그 큰 싸움에서 벗어나 이제 생각하는 대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아들의 법 먹는 소리가 너무 예쁘고 흐뭇한 점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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