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치는 할머니가 될래>를 통해 배우는 삶의 태도
내가 사는 동네 골목에는 작은 피아노 교습소가 있다.
가정집의 1층을 피아노를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민 곳이다. 산책을 하다 보면 가끔 ‘솔,...미미,..파,레,..레’ 이제 막 피아노를 시작한 듯한 소리가 들려올 때도 있고, 자주 들었지만 제목은 모르는 아름다운 곡이 흘러나올 때도 있다.
피아노 교습소 앞을 지나다니면 가끔 나도 아름다운 피아노곡을 연주해 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 시도는 하지 않는다.
'나이 들어서 뭔가를 배우는 일은 쉽지 않다. 더구나 그것이 악기라면 더 어려울 것'이라는 내 편견과 '나는 음악은 잘 못한다'는 관념이 그 밑에 깔려 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간절하게 해보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피아노가 아니라 그림이나 언어처럼 살면서 정말 한번은 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 것이라면 달라질까?
우리나라에서는 sbs 스페셜 ‘퇴사하겠습니다’로 많이 알려져 있는 전 아사히 신문 기자이자 작가인 이나가키 에미코의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오십이 넘은 나이에 피아노를 배우고 더 나아가 연주회까지 열게 된 이야기다.
늦은 나이에 어린 학생들과 함께 피아노를 배우면서 ‘뜻대로 되지 않음’의 온갖 버전을 경험하기도 하고, 수십 년을 살면서 손가락 하나하나를 의식하면서 산적은 없다는 것을 인식하기도 한다.
아이들에 비해 속도는 느리지만 어른이 되어 뭔가를 배울 때의 장점은 ‘노력은 배신하지 않음’을 아는 것임을 되새기기도 한다.
피아노를 배우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지만 사실 나이 들어서 뭔가를 배우거나 새로 시작하는 것이 어렵고 두려운 일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은 책이다.
저자는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은 인생의 영원한 친구를 얻는 일’이며, 연습이란 ‘나를 발굴하는 작업’이라 이야기한다. 뜻대로 되지 않는 손가락, 악보를 읽기 힘든 침침한 눈, 짧은 시간 연습에도 떨어지는 체력과 집중력을 이겨가며 마침내 저자는 연주회를 열게 된다.
- 이나가키 에미코, <피아노치는 할머니가 될래> 중-
40년 만에 가지게 된 피아노 발표회에서, 긴 시간 고전하던 마주르카의 첫 악구를 연주하며, 작가는 인생에서 피아노를 치는 일이란 음악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계속 품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걸 알게 된다.
조급해하지 않고, 자신의 속도로 연주를 하며, 피아노 치는 할머니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자신감과 위안을 얻는다.
- 이나가키 에미코, <피아노치는 할머니가 될래> 중-
피아노, 외국어, 그림, 댄스, 무엇이 되었든 배우고 새로 시작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새로운 나를 발굴하고 옛날엔 몰랐던 그것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자신의 신체를 이용해 뭔가를 함으로써 드뷔시의 <달빛>자체가 되고, 경탄해하던 예술가, 작가와 온전히 하나 됨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자기만의 속도로 인생을 연주한다는 것의 의미를 비로소 온전히 이해하게 될 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호기롭게 뭔가를 시작했지만 중간에 흐지부지 그만두게 된 경험이 여러 번 있다. 그래서 뭔가를 다시 배우거나 시작한다는 게 쉽지는 않다. 하지만 어떤 시험에 붙겠다거나 자격과정을 통과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나이 들어도 그림을 그리는 할머니,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하는 할머니가 된다는 건 내 삶을 더 풍요롭게 아름답게 만드는 일임을 이 아침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