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의 일
매일 아침 5시 40분. 주말을 제외하곤 내가 기상하는 시간이다. 일어나자마자 부엌으로 가 커피를 텀블러에 내린다. 잠이 쏟아지지만 자주 하는 일이라 그러려니 하며 올라오는 커피 향으로 잠을 깨 본다. 와이프가 나갈 준비를 한다. 때맞춰 커피는 알맞게 찼다. 텀블러를 들고 옷을 걸치곤 함께 대문을 나섰다. 아직 컴컴한 아침 길을 지하철역까지 함께 한다. 바로 와이프 출근길이다.
나의 와이프는 파티셰다. 프랑스의 수도 파리의 République역 근처에 위치한 한 파티스리 가게에서 4년째 근무 중이다. 스트라스부르에서 어학을 하던 2011년 때부터 알게 된 사이니, 학교와 인턴을 합치면 꽤 경력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살던 집이 와이프가 인턴을 하던 곳과 5분 거리였다. 자연스럽게 내 집에서 자주 머무르게 됐고, 그런 와이프를 아침마다 매일 일터에 데려다 주기 시작했다.
파리에 온 이후부터 가끔씩 와이프의 가게에서 일을 돕기도 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따분하기도 했던 터라 기회가 될 때마다 같이 일하곤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이전부터 제빵사나 파티셰들이 하는 일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나와 가장 가까운 이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더욱이 친절한 가게 사장님은 언제나 환영이라고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던 중, 여름이 한창이던 9월, 와이프가 일하는 가게에 비상이 걸렸다. 갑작스러운 주문 폭주로 인해 일손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보통 9월은 관공서 및 학교 등 기관들이 일을 시작하는 기간이라 주문이 많은 편이지만, 이번 연도 들어 갑자기 짧은 기간에 주문이 밀리게 된 것이다. 두 팔을 걷어 부치고 일을 돕기로 했다. 일주일 동안 일을 도와주게 되었는데, 그 기간을 요약해보면 참 ‘고된 노역’이었다.
먼저 와이프가 하는 일은 작지만 빠른 속도를 필요로 하는 작업들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작고 동그란 모양 또는 네모 모양의 빵 위에 생크림, 연어알 등 여러 재료를 올려 만드는 과자인 카나페, 그리고 작은 빵을 반으로 잘라 그 안에 마요네즈 또는 버터를 바르고, 햄과 치즈 또는 상추 및 모차렐라 조각과 토마토, 그리고 올리브유 등을 넣는 BB(베베) 등, 이 모든 작업은 크기가 작은 과자를 만들어야 하는 섬세하고 꼼꼼한 작업이라 그 자체만으로도 어려운 일일뿐더러, 예쁘게 보기 좋아야 하기 때문에 예술적인 요소가 요구된다.
더욱이 마요네즈, 생크림 같은 거의 모든 재료를 직접 만들어 쓰다 보니 끊임없이 계속 움직여야 했다. ‘속도’를 중시해야 하는 작업이다 보니 손이 빠른 한국인들에게 적합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게만은 예외였다. 키가 큰 탓에 섬세한 작업을 하려니 몸을 남들보다 더 구부려야 했다.(나의 키는 190이다.) 테이블이 낮아 허리가 부서질 것만 같았다. 낮은 천장 탓에 수없이 머리도 부딪혔다. 마치 거인이 드워프 일을 도와준다고 해야 할까.. 한 번은 크림위에 작은 연어알(3알 또는 4알)을 올리며 ‘이런 집중력으로 공부했더라면..’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봤다.
그 외에도 일주일 중 이틀은 기존 6시 출근이 아닌 4시 30분 출근을 하여 저녁 6시~7시까지 작업을 계속했다. 하루에 500-600명가량의 주문이 몰아닥친 터라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기존 배달 차량 외에 한 대를 더 렌트하여 하루 종일 꽉 채워 배달했으니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모든 빵집이 그런진 모르겠지만, 앉아서 일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기 때문에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한다.
주문 폭주에 대해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끔 주문을 그렇게 대책 없이 받으면 되냐고 원망 섞인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장이 주문을 거절하면 고객은 다시 그곳에 주문을 하지 않기 때문에 사장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다. 무리한 주문이더라도 가게의 생존을 위해선 주문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일주일이 폭풍처럼 지나갔다. 매일이 이런 건 아니겠지만, 가장 바쁜 기간을 함께 일해보니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시간에 쫓기고 물량에 치이고 손은 두 개 밖에 없으니 빠르고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제때 일을 마칠 수 있었다. 그걸 해내는 와이프가 자랑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와이프 덕분에 내가 프랑스에 와서 좋아하게 된 빵이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았지만, 나는 이 분야의 고유한 가치를 볼 수 있었다. 음식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고, 수 많은 정성 속에 탄생하는 작품이었다. 비싸든 싸든, 그곳엔 그걸 만든 사람들의 정성이 들어가 있다.
내 일이 힘든 만큼, 와이프도 힘들다는 사실, 둘 사이엔 무엇도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은 소중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