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허무주의를 이겨내는 방법.

수영. 시작.

by Presentkim

내가 허무주의에 빠지게 된 건 2년 4개월의 해외업무를 마친 후다. 이를 악물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며 버텨왔던 회사생활을 그만둔다고 생각하니 속이 후련했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무엇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사표를 내고 나니, 아이러니하게도 ‘방향’을 잃게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할 수 있을 거란 기대, 많은 경험이 지혜를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방향을 잃음으로써,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하기 싫었다. 메마른 가을바람에 쓸려가는 모래처럼, 작열하는 햇빛에 메말라 갈라진 땅처럼, 나의 의지는 사라졌다. 그리고 허무주의자로 전락해버렸다.

지금에서야 돌이켜 보니, 그동안 겪었던 회사 내 조직문화, 돈에 대한 욕심 등에 치여 건강마저 잃어버린 내가 방전이 된 게 아닌가 싶다. 전기가 나가 깜깜해진 방 안에 있는 것처럼 갑작스러우면서도 멍하니 있게 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아무튼 이러한 허무주의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단 하나라도 목표를 잡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 목표를 통해 내 정신 깊숙이 가라앉아있던 악을 끌어올려야 했다. 내 머리를 스친 건 운동이었고, 오랫동안 미뤄왔던 운동이 생각났다. 바로 수영이다.


수영을 선택한 데에는 몇 가지 남모를 고통(?)과 이유가 있다. 어릴 적, 친구의 형이 동네 가까운 수영장에서 익사했다. 물만 보면 수영장에 떠 있는 그 형의 모습이 떠올랐다. 바로 앞 동에 살았던 터라 그 자리에 항상 있을 것 같은 존재였다. 익숙함을 상실한 생생했던 기억은 성인이 되어서도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그 뒤로 물과는 멀어졌다. 내 인생이 물과는 친하지 않다는 어머니의 말씀도 한몫했다. 어디서 점을 보시고 오셨는지 모르겠으나, 어린 시절의 팔랑귀가 지금도 나를 괴롭힌다.

이것들이 남모를 고통이라면, 수영을 선택한 다른 부수적인 이유들도 존재한다. 그건 바로 사람들의 편견이다. 대개 사람들은 바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바다 주변에 살거나, 바다 관련된 일을 하면 당연히(?) 수영을 할 줄 안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 고향이 부산이고, 해군 전역이다 보니, 그런 편견 아닌 편견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수영을 할 줄 아세요?’라는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수영.. 못합니다.’


알게 모르게 자주 접했던 편견이다. 나를 만난 사람들은 처음엔 내가 수영을 잘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들이 예상했던 대답이 나오지 않자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럴 때마다 나는 궁색한 변명을 하기에 급급했다. 사람들은 예상과 빗나간 대답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나를 쳐다본다. 수영을 못하는 게 죄는 아니지만, 바다와 밀접한 부산과 해군이라는 조건을 갖춘 나에겐 이러한 상황은 그저 민망하고 죄스러울 뿐이었다. 이게 내가 허무주의를 극복하고자 선택한 이유였다.


수영을 선택한 이후 상상하지 못했던 장애물을 극복해야 했다. 과거의 물에 대한 기억을 매일 접해야 했고, 내가 익사하는 상상의 공포를 자주 접해야 했다. 의지로 해결될 문제였다면 이미 해결했겠지만, 심리적인 문제가 얼마나 큰 고통과 문제인지 뼈저리게 깨닫게 됐다. 물속에서 숨을 쉬지 못할 때면 순식간에 멘틀이 붕괴됐다. 물속에서 나와 호흡을 가라앉혀보지만 심장 박동수는 가라앉지 않았다. 더욱이 매일매일 하다 보니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이 지쳤었다. 이렇게 사서 고생하지만 이 고난의 기간들이 취업에 도움은 될까라는 걱정도 들었다. 왠지 이 모든 고생이 쓸모없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수영은 하나의 운동이었지만, 나에겐 많은 것을 극복해야 하는 높디높은 벽이었다. 다행인 것은, 그대로 허무주의에 휩싸이기보단 빨리 극복해야겠다는 근성이 속 깊숙한 곳에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느덧 수영과 씨름한 지 7개월째가 되어간다. 많이 부족하지만, 오리발까지 구입해서 열심히 물살을 가르는 중이다. 마이클 펠프스(미국 국가대표 수영선수, 어릴 적 ADHD를 진단받았으나 극복, 2016년 리우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기까지 가장 많은 올림픽 메달을 거머쥔 선수)가 되겠다는 불굴의 의지도 함께 한다. TV에서 그를 본 적이 있는데, 산과 같은 등과 넓은 어깨, 평범한 사람의 2배, 3배에 달하는 큰 손과 넓적한 발로 인해 한동안 TV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었던 기억이 있다. 안타까운 일은, 시간이 흐르고 물에 익숙해졌지만, 물에 관한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공포감 역시.. 앞으로도 영원히 안고 가야 할 것 같다.

하지만 한 가지 얻은 게 있다면, ‘수영이 재밌다’는 것이다. 깊으면 깊을수록 더 즐겁고, 여러 영법으로 훈련을 하다 보니 몸도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오리발을 사용하고 나면 다리의 근육이 팽팽해진다. 스태미나가 넘치는 기분이다. 허기지는 느낌도 좋다. 먹는 즐거움이 배가 된다. 가끔 부정확한 자세와 남들이 차올린 물이 내 입 속으로 들어와 본의 아니게 락스 물을 들이켜야 했다. 그렇지만 그게 대수랴. 숨을 고르고 자세를 유지하며 손과 팔을 뻗고 다시 물살을 가른다. 한 레인의 물살을 가르며 나만의 흐름 속에서 나만이 존재하는 행복한 순간이다. 머리를 돌려 호흡할 때마다 살아있음을 느낀다. 수영장 창문으로 햇빛이 수면 위를 비춘다. 그리고 나는 그 수면을 가른다. 오롯이 나로서 나를 위해 물 위를 거슬러 나아간다.


이 순간, 나에게 다가온 허무주의는 흔적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허무주의여, 이대로 나에게서 자취를 감춰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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