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리아와 고통에 대하여
아프리카 국가에 가기 위해선 여권에 붙는 ‘노란색 종이’가 필요하다. 바로 ‘황열병 예방접종 확인서’다. 그 종이가 없으면 아프리카 국가에 발을 들이지 못한다. 황열병은 모기를 통해 인간에 전염되어 출혈열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로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치명적인 아프리카 황토병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확인서는 일종의 목숨에 대한 보험이다. 나의 경우, 콩고 민주공화국에 가기 전 회사의 지시로 예방접종을 받았을 뿐, 그 병이 어떤 병인지, 또 어떤 병들이 있는지에 대해선 그렇게 궁금해하지 않았다. 왜냐면 그 병의 대상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어떤 병을 걸려보기 전까지는 그 병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특이한 병일 경우엔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나는 말라리아에 걸렸고, 병실에 누워 아프리카의 고통을 온몸으로 느꼈다.
내가 말라리아에 대해 알게 된 계기는 한국 국제협력단 코이카와의 민관협력 프로젝트 사업을 진행하면서부터다. 그 일을 위해 수도 킨샤사에 위치한 코이카 사무실을 자주 방문했고 나이 많은 어른부터 나보다 어린 행정직원 동생들까지 두루두루 친해지게 되었다. 가끔은 내가 일하던 농장으로 가지 않고 수도 킨샤사에 머물러야 했는데 그때 알게 된 동생을 통해 말라리아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책임자 한 분을 만났다. 그분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바로 별명인데 주변 사람들은 그를 ‘신 다르크’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치안이 위험하고 험준한 곳인데도 불구하고 그곳을 찾아가 말라리아에 취약한 마을 사람들을 가르치고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코이카 사무실에서 같은 장소에서 일을 하며(그곳에서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사람들끼리 사무실을 공유해서 썼다.) 조금씩 친해졌고, 불어 통역을 도와주면서 며칠을 같이 일한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조금씩 말라리아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서로 바쁜 탓에 말라리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물어보진 못했지만, 기본적인 내용은 (개인적인 경험을 포함하여) 아래와 같다.
- 모기에 의해 전염되고 잠복기를 가진다.
- 몸의 면역력이 약해졌을 시, 심한 고열과 살을 에는 듯한 한기가 나타나고 머리 한가운데가 깨질듯한 고통을 동반한다.
- 콩고인들이 목숨을 잃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 치료약은 콩고인들에겐 턱없이 비싸다.(사립 병원에서 치료받을 당시 치료비는 200달러 이상이었다. 반면 콩고인들의 한 달 평균 월급은 100달러 정도였다.)
- 목숨을 잃을 정도로 위험하다.
- 치료약은 하루에 세 알을 먹는데 복용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다.(그만큼 약이 강해 간에 무리를 준다.) 등
이렇게 위험한 병의 존재를 간과했던 내가 말라리아와의 사투를 벌이게 된 건 다름 아닌 어느 한 사립병원에서다. 당시 내가 다니던 농업개발회사 사장님이 말라리아로 한 사립병원에 입원을 했고, 간병과 통역을 위해 그 병원에 머물러야 했다. 깊은 밤, 이불도 없이 의자 위에서 누워 잠을 청했던 나는, 엄청난 한기와 어지러움에 잠에서 깼다. 다시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겠지 라는 안이한 생각을 품은 채,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캄캄한 병실에서 다시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머리가 깨질 듯 한 고통과 어지러움에 몸을 일으켰고 심한 몸살 기가 느껴졌다. 살이 아파오는 몸살 기에, 감기라고 하기엔 도가 지나친 느낌을 받았다. 이건 지금까지 내가 겪어봤던 감기몸살의 느낌이 아니었기에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본능이 말해주고 있었다. 병원 진료가 시작되자마자 바로 피검사를 받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말라리아다. 그동안 일을 하며 모기에 물린 적은 많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고, 고된 업무로 피로했던 심신의 면역력이 저하된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 아침, 사장님은 회복하셔서 침대에서 내려오셨지만, 그 침대에 내가 눕게 되었다. 침대 위에 누워 주사와 링거를 맞는 동안 깨질듯한 두통과 열과의 사투를 벌였다. 이불을 덮었지만 한기는 계속됐다. 땀은 시트를 흠뻑 적셨고, 온몸의 수분이 모두 배출되는 느낌이었다. 간신히 물만 들이켤 뿐, 음식은 입에도 대지 못한 채 이틀 정도를 병원에서 누워 지냈다.
어느 정도 회복했을 때 신 다르크 선생님도 병원에 방문을 해주셨다. 그리고 선생님으로부터 약을 받았는데 설명하시길 약이 강해 간에 심한 무리를 줄 수도 있다고 했다. 아직 완전히 회복한 상황이 아니었지만 열과 두통이 사그라들고 퇴원을 했다. 농장으로 돌아가 선생님이 주신 약을 실제로 복용을 해보니 약효가 너무 강해 숙소에 가서도 제대로 된 생활을 하지 못했다. 온몸에 기운이 쭉 빠지는 기분과 내리쬐는 햇살을 품은 뜨거운 콩고의 날씨 아래서 회복되지 않은 내 몸은 말라리아와의 사투를 계속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긴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다행히 나는 어느 정도 평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 깊은 아픔은 나에게 말할 수 없는 울림을 남겼고, 말라리아와 콩고인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됐다.
말라리아 치료비는 한 사람당 200달러 이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치료할 돈이 있어 무사히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콩고인들은 그럴 수 없었다. 당시 내가 일하던 회사에서 그들이 버는 돈은 한 달에 100달러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일하는 사람들은 그 정도라도 벌 수 있었지만, 실제로는 일자리가 거의 없기 때문에 그들은 하루하루 먹고살아야 하는 생존의 기로에 있었다. 집은 흙으로 지어졌고 아침과 낮으로 일교차가 심해 감기 또한 그들에겐 치명적인 병이었다. 또한 신 다르크 선생님과 대화를 하며 왜 사망률이 줄어들지 않는지, 상황에 대한 개선이 느린지 알 수 있었다. 말라리아엔 예방만이 최선이지만, 그들은 지원된 모기장을 되팔아 돈으로 바꾸거나 설령 모기장을 쓰더라도 사용법을 잘 모르기에 금방 너덜너덜해져 예방을 위한 조치는 금세 물거품이 되었다. 제1순위가 먹는 것이기에 예방보단 돈이 더 중요한 현실이었던 것이었다.
그들은 배우지 못해 병의 원인과 심각성을 잘 알지 못했고, 지원된 예방물품을 되팔아 생계유지를 했다. 돈이 없어 병에 목숨을 빼앗기는 그들의 슬픈 운명.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는 일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