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어떻게든 도피하더라도
현실세계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다.
도피를 하고 싶었으나, 언제나 나를 기다린 건 현실이라는 차가운 벽이었다.
상사의 가스 라이팅으로 녹초가 된 하루, 책을 읽으며 그 소설의 세계에 빠져든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언제까지나 책을 읽을 수 없으므로.
몸이 부서질 정도의 운동을 하면, 잡생각 따윈 들지 않아서 좋았다. 그 순간만큼은 자유로웠다.
그러나 현실은 저만치서 나를 바라보며 내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믿었던 사람의 배신으로 등에 칼이 꽃인 채 집으로 돌아와, 물건을 파괴한다.
파괴하는 순간의 육체적 고통, 파괴된 물품을 보며 느끼는 약간의 쾌락.
그 짧은 순간은 금세 사라지고 현실세계로 돌아온다.
게임 속 상대를 Killing 해가며 느끼는 가상 속 즐거움.
기계가 차갑게 꺼지면, 현실은 더욱 차갑게 다가온다.
현실은 내가 돌아올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나를 끊임없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그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싸늘한 냉기로 나를 감싸고, 시린 칼바람으로 나를 도륙해도, 나는 언제나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도피는 언제나 일시적이나, 현실은 지속적이다.
현실은 도피라는 달콤한 사탕으로 나를 농락한다. 더 큰 고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