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또한 그들일 수 있다.

영화 Beast of No Nation 보고 난 후

by Presentkim

영화를 감상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고 한다. 몰입형과 비판형. 나는 철저히 전자에 속한다. 그래서 영화가 주는 감성에 아주 깊이 빠져드는 편이다. 급격하게 예민해져 영화에 몰입되는 순간만큼은 혼자이고 싶은 순간들이 많다. 그래서 조용히 혼자 보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고 난 후 감상과 생각들은 대체로 감정적이고 주관적이며 편협할 때가 많다. 타인들에게 함부로 말하지 않고 느꼈던 것들을 혼자 기록해 두곤 했는데, 의견을 보이는 게 부끄럽고, 무엇보다 객관화시키는 게 어려웠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우연히 봤던 한 편의 영화는 그런 나의 절제력을 무너뜨렸다. 2시간 17분의 러닝타임 동안 혼자 만의 세상에 빠졌고, 주관적이고 편협한 생각 없이 반드시 이 느낌을 표현해보기로 결심했다.


프랑스 파리의 어느 조용한 밤, 고요한 공간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자 거실로 나왔다. 밤이 주는 침묵은 매력적이라 한 번쯤은 깊게 빠지게 된다. 고요함을 느낄 때 영화가 생각난다. 분위기에 대한 존경을 담아 영화를 찾다가 ‘Beast of No Nation’을 발견했다.

영화는 포스터부터 강렬했다. 나를 쳐다보는 흑인 소년의 눈빛과 그 눈동자. 그들의 눈빛을 마주한 사람이라면 흑과 백의 대조 속에서 부각되는 묘한 아름다움의 매력을 알 것이다. 그러나 그 오묘한 순간에 콩고민주공화국의 가난과 그곳에서 경험한 비참한 현실이 뒤엉켜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어릴 적부터 UNICEF나 월드비전 같은 기부단체의 광고 때 내보이는 다 죽어가는 어린아이의 모습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안 보면 후회한다는 소년의 눈빛을 차마 지나칠 수 없었다. 순간 내가 아프리카와 외국 여행을 하면서 마주쳤던 사람들의 모습이 디졸브 되면서 영화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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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Beast of No Nation’는 나이지리아계 미국인 Uzodinma Iweala의 소설 Beasts of No Nation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가나에서 촬영이 되었고 서아프리카 내전 중 가족을 잃고 반군의 소년병이 된 소년의 시선으로 바라본 시대상을 그린 영화다. 아프리카 하면 무엇을 연상할 수 있을까? 노예, 빈곤, 천연자원, 그리고 내전이다. 아프리카에선 흔히 볼 수 있는 정부군과 반군 간의 갈등 속, 참혹스러운 결과의 희생은 언제나 약자인 일반 시민들이다. 이런 내용은 언제나 내 경험의 기억과 결합되어 무거움을 안겨준다.

개인적으로 콩고민주공화국 킨샤사에서 농업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1년 4개월 정도 머물렀던 적이 있다. 중심도시에서 3시간 정도 떨어진 농장에서 지냈기에,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푸르고 울창한 원시적 숲과 흙과 짚, 비닐로 만들어진 집들이 운집한 마을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너덜너덜한 옷가지를 보며 내가 본 마을 아이들이 생각났다. 물이 없는 상황을 보니 30분 아래 강에서 물을 퍼다 쓰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리고 밤은 찬란한 별들의 지붕 아래 바이러스를 품은 모기에 물려 말라리아에 걸렸던 과거를 생각했다. 직접 겪어봐서 그런지 숲 속의 울창함이 주는 두려움, 전기가 없는 원시적인 밤의 어둠, 에볼라 바이러스 외에도 목숨을 앗아가는 말라리아나 황열병, 그리고 더운 날씨와 땀 등 영화 속 초자연적인 모습은 아름다움 보단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이 영화를 보며, 콩고에 겪었던 일들이 매분 매초 나를 덮쳤고, 엄청난 몰입감에 휩싸였다.


영화 속 가족을 잃은 소년 Agu의 마을은 내전의 희생양이 된다. 아버지와 형을 잃고 숲 속으로 도망을 치다 반군(NDF, National Defense Forces)에 잡히게 된 Agu는 살아 남기 위해 소년병이 되는 훈련을 받는다. 사령관은 “전쟁이 그대들을 강하게 했고 그대들에게 총을 주었다”라고 말한다. 그들만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그럴듯한 말로 순수한 영혼을 비참한 어둠으로 끌어들인다. 어린 소년들은 훈련을 받으며 잔인한 시체를 본다. 더 나아가 직접 총으로, 그리고 마체트로 사람을 죽인다. 그들은 순수해서 하얀 백지 같지만 마치 검은 잉크 한 방울이 맑은 물을 서서히 하지만 빠르게 잠식하는 것처럼 쉽게 어둠에 물들 수 있다. 신에게 수시로 질문을 던지는 장면 또한 깊은 울림을 남긴다. 종교가 가져다주는 구원이라는 이상과 죽음이라는 현실 간에 그들만이 느끼는 괴리감은 고스란히 스크린을 통해 전해진다. 마지막 부분에선 반군에서 탈출한 Agu가 한 선생님을 쳐다보며, 결국 직접 겪어보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을 깊은 어둠을 소년의 눈빛과 함께 표현한다. Agu의 말속에서 슬픈 감정의 깊고 잔잔한 폭발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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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가 바라는 것은 반군의 승리일까? 전리품일까? 아니면 살상? 그 어느 것도 아니다. 영화에서 소년이 바라는 건 단지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영화 속 Agu의 현실은 그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기본적인 것조차 지켜줄 수 없는 국가가 어떻게 국가라 할 수 있을까? 조금만 더 넓게 보면, 이런 분리 사태는 단지 한 국가의 문제만이 아니며 인류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게 한다.

지금 가장 깊게 연관시킬 수 있는 이슈는 난민일 것이다. 내전은 피난민을 낳고, 피난민은 목숨을 걸고 더 나은 곳으로 새 삶의 터전을 찾아 나선다. 지금 유럽이 겪고 있는 난민 문제는 단순히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닌 전 인류가 고민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 UNHCR이 최근 발표한 2017년 난민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난민이 6천8백50만 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4만 명의 난민 신청자들로 방관, 금지, 수용 등의 고민을 해야 할 입장이 되었다. 하지만 대다수 난민들의 삶은 소수를 제외하곤 비참한 현실 속에 살아간다. 가족을 잃고 외톨이가 된 Agu처럼 말이다. 약자를 위한 세상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 힘이 없는 것이 원죄가 되어야 하는 세상이 진짜 현실인 것인가? 그들은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인가? 깊은 밤, 찾을 수 없는 답 속에 깊은 우울감을 느끼며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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