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가 좋아하는 선배는 이런 선배입니다!
인턴까지 합치면 총 3곳의 회사에서 막내생활을 했고 기관 봉사까지 합치면 4곳이며,
현재 막내인 곳을 합치면 총 5곳의 조직을 경험해본 셈이다.
신입, 혹은 막내가 되면 선배 혹은 나를 관리할 누군가로부터 멘토링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종종 생기는데,
그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듣는 내용이 '어떻게 하면 예쁨받는 신입/ 막내가 될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그래, '예쁨 받는 사수'는 어감이 이상하니
'존경 받는 사수' 정도로 바꾸자.
'예쁨받는 신입'이 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선배들이 그러하듯
'존경받는 사수'의 내용도
결국은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로 시작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아래의 내용은 지극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나는 이런 선배들은 존경하고 좋아하고 우러러보지만
다른 '막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편할 것 같다.
막내/신입의 입장을 여러 번 경험해본 결과,
선배들은 절대로 신입이 기대하는 '일'을 바로 주지 않는다. 이것은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고 사실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된다.
주로 하게 되는 것은 흔히 말하는 '잡일'스러운 것들인데,
누가 손으로 적은 수치들을 엑셀에 채워넣기, 내용 복사 붙여넣기 하기, 팀 캘린더 만들어서 월초에 프린트해주기 등등
그 밖에도 엉덩이 떼고 일어나서 해야하는 기타 움직임들,
가령,
다른 부서에 서류 갖다주기, 회의 자료 인쇄하기, 팀 문구류 떨어지면 주문하기
요즘은 '커피를 타오라'라는 식의 무례한 지시를 내리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지만,
"xx아, 내가 지금 이거를 30분 안으로 마무리해야하는데, 임원 회의 때 드릴 음료수 세팅도 해야하거든.
혹시 나 대신 아메리카노 5잔만 사서 테이블에 올려놔줄 수 있어?"
(여기까지는 나도 웃으면서 심부름을 하는 편이다)
엑셀 채워넣기로 예시를 들어보겠다.
A라는 사람은 팀의 신입자리로 직접 가서 숫자 몇 개가 적힌 종이를 내밀며 이렇게 지시를 내린다.
"XX씨, 이거 내가 급해서 손으로 적은 건데, 엑셀로 좀 옮겨줄 수 있어요?"
하지만 B라는 사람은 이렇게 지시를 내린다.
"XX씨, 잠깐 이리 와볼래요? 내가 일 뭐 하나 가르쳐줄게요."
그럼 일단 신입은 수첩과 펜을 들고 선배의 자리로 간다. B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정기적으로 ~회의를 하는데, 거기는 누구누구가 오시고, 주로 ~한 내용으로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에요. 그런데 이번에 우리팀에서 ~를 하기로 해서, ~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거든요"
신입은 벌써 수첩에 빼곡히 뭘 적었다. B가 흘깃 보고는 다시 말을 이어간다.
"~가 이런이런 수치를 알려주셨는데, 내가 노트북을 못 들고 가서, 손으로 급하게 적어왔어요. 그런데 이거를 빨리 정리해서 보고를 해야해서. 엑셀에 정리해야하는데 혹시 XX씨가 좀 해줄 수 있어요?"
결국 신입이 하는 일은 "엑셀에 숫자 채우기"이지만
A 선배가 시킨 일은 그냥 숫자 채우기지만
B 선배가 시킨 일은 ~회의 내용을 보고하기 위한 자료 준비가 된다.
위의 상황에서 선배가 종이에 숫자 하나를 잘못 적었다고 가정하자.
A 선배에게 지시를 받은 신입은 그것이 엉뚱한 수치인 줄도 모를 것이다. 그에게 그것은 그냥 숫자다.
하지만 B 선배에게 지시를 받은 신입은 그것이 엉뚱한 수치임을 안다.
맥락을 알기 때문에 '매출이 10인데 영업이익이 20인 것은 말이 안 된다' 같은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선배님, 혹시 이 숫자가 맞는지 한번만 확인 해주실 수 있을까요?"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은 신입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중요한 일이고,
선배의 입장에서도 고려해볼 만한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맥락을 가르쳐주지 않으면 그 신입은 팀이 하는 일이나 회사의 일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점점 느려지고,
3개월이 지나도 6개월이 지나도 그 사람은 팀의 일감을 나눠서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만약, 혹시라도,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이 누군가의 선배나 사수가 될 예정이라면,
자신의 일감을 빨리 나눠주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더 나아가 후배와의 인간관계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작은 일을 시킬 때 맥락을 가르쳐주는 습관을 들여주길 바란다.
모두가 "예쁨"받는 신입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존경은 더더욱 어려운 문제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