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부의 사유

공공임대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by 김현재




‘사유재산’을 향한

국가의 시선에 대하여


요즘 정치권에서는 다시 한 번 ‘공공임대 확대’가 뜨거운 이슈예요. 청년부터 고령층까지, 무주택자의 주거 안정을 위한 정책이라고 하죠. 겉으로는 복지처럼 들리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정책이 향하는 방향이 ‘집을 싸게 빌려주는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공공임대, 왜 필요한 걸까?



지금 전·월세가 너무 비싸니까,
시장에 맡기지 말고 국가가 개입해서
‘값싼 임대주택’을 공급하자.
그래야 서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다.”


정부의 말만 들으면 굉장히 선하고, 주장에도 일리가 있어 보이죠. 하지만 이 안에는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다’라는 문장이 슬로건처럼 따라붙어요.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집은 사는 곳이기만 할까요?


취지는 좋은데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에요. 공공임대를 수십만 호 공급하겠다는 주장을 실현하기 위해선 생각보다 쉽지 않고 돈이 많이 들어가요. 한 채 짓는 데 수억 원, 수십만 호면 조 단위 예산이 필요해요.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이미 재정적자 구조고, 국민연금도 고갈 예정이에요. 결국 이걸 하려면 증세가 불가피해요. 국민 모두가 세금으로 임대주택을 짓는 셈이죠.


게다가, 좋은 입지에 지으면 민간과 충돌하고, 안 좋은 입지에 지으면 미분양·미입주 사태가 발생해요. 공공기관이 짓고 운영하면 비리, 비효율, 부실 관리는 덤이 되죠. 공유지의 비극이 떠오르죠?


결국 “누구를 위해 짓고,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라는 실질적 질문에 정부는 답하지 못한 채, 구호만 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하려 할까?


그 배경에는 복지 확대와 사유재산을 약화하려는 이념적 욕망이 숨어 있다고 생각해요.


'주택은 공공재’ 라는 프레임이 크죠. 집을 소유할 수단이 아닌, 누구나 접근 가능한 공공재로 만들자는 흐름이에요. 이것은 시장 원리에 의한 소유를 부정하고, 국가가 자산을 배분하는 사회를 지향하는 움직임이죠.


사유보다 공유를 추구하는게 느껴지고요. 공공임대가 많아지면 민간임대는 위축되고, 결국 집을 자산으로 소유하려는 개인들의 재산 가치가 하락합니다. 이는 시장에 대한 국가의 지배력 확대와 연결돼요.


소유자에 대한 도덕적 비난도 커요. 요새 갭투기와 다주택이 비난받죠. 근데 갭투기라는 것은 전월세를 내어주는 공급자 아닌가요? 다주택자도 살 집은 한채일거고 나머지는 다 임대내어주는데, 이들이 나쁘기만 한건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죠. 사회적으로 ‘재산을 소유하는 것’ 자체가 마치 불공정한 행위처럼 여겨지죠. 결국 이는 사유재산의 정당성 자체를 흔드는 시도가 될 수 있어요.




부동산 시장은 자유를 시험하는 거울



왜 집 가진 사람만 더 부자가 되는가?


집을 소유했다는 건 돈을 벌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노동과 저축, 리스크를 감수한 결정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어요. 이걸 ‘공공의 이름’으로 부정하기 시작하면, 개인의 삶은 점점 국가의 허락 아래에서만 가능해집니다.


많은 공공임대가 들어설수록, 더 많은 사람들은 정부를 바라보게 되죠.


나는 집을 살 수 없으니,
나라가 나에게 집을 빌려줘야 해요.


이 말은 점점 자유를 대신해 복종을 요구하게 됩니다. 즉 노예의 도덕을 의미해요.




그래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공공임대는 완전히 나쁜 제도라고는 할 순 없어요. 일정 수준의 선별적 지원은 필요하고, 사회적 안전망으로 기능할 수 있어요. 문제는 보편적 복지에 있는거죠. 그 비율과 규모, 방식이 커지고 과잉되면 그건 복지를 넘어 ‘시장경제의 교체’를 의미할 수 있어요. 국가는 '주택 문제 해결사’를 자처하며 실제로는 사유재산의 의미 자체를 희석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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