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가장 큰 부작용은 양극화가 심해진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똑같은 자본으로 삶을 시작한다고 가정해도 삶의 끝에는 사람마다 다른 자본을 가진채 마무리하게 될거에요.
인간은 더 나은 삶을 위해 경쟁하고, 이 과정에서 혁신과 생산성이 끊임없이 발전해 왔는데요,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풍요로운 세상은 바로 이 격차가 만들어낸 산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격차를 단순히 악으로 몰아 부정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본질을 거스르는 일이자, 사회 발전을 멈추게 하는 길일 수 있어요.
하지만 격차가 지나치게 심화되어 중산층이 붕괴하면 상황은 달라지게 되죠. 상위 1%와 하위 99%의 극단적 양극화는 사회적 불만과 혁명적 기운을 불러오고, 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불안 요소로 작용하니까요. 자본주의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부 사회주의적 정책을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자본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키기 위한 조치였어요. 자본주의는 때에 따라 큰 정부, 작은 정부를 번갈아 차용하며 인류의 역사 속에서 살아남아 왔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발전해왔나
자본주의는 시대와 흐름을 타며 여러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시대마다 위기를 맞을 때마다 스스로를 바꾸며 생존해왔어요.
초기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으면서 소비 기반을 허물었고, 결국 1930년대 대공황이라는 파국을 맞았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것은 케인즈주의입니다. 정부가 개입해 최저임금을 보장하고 고용을 안정시키면서 소비를 회복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큰 정부’는 불황기에 임금과 고용의 유연성을 막아, 오히려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새로운 문제를 낳았어요.
이후 1980년대 신자유주의가 등장하면서 작은 정부, 규제 완화, 시장 중심의 정책이 대세가 되었죠. 하지만 이는 거대 자본의 독점을 키우고, 자영업자를 몰락시키며, 자산 격차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자본주의가 반복적으로 겪어온 위기에서 우리는 문제의 핵심이 생산이 아닌 소비에 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생산이 늘어도 소비가 받쳐주지 않으면 경제는 결코 건강하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한국 정책의 모순과 위험성
오늘날 한국 정부의 정책은 어떨까요?현재 시행되는 각종 정책은 오히려 중산층을 무너뜨리고 소비를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듯합니다.
아파트 가격을 잡겠다며 실거주를 위한 이사조차 허가제처럼 제한하고, 빈집 소유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며 소유권을 압박합니다. 재건축을 틀어막고 10평대 임대아파트 공급을 강조하며, 집을 사지 말라는 경고를 연일 내놓죠. 동시에 은퇴자와 저소득 주택 소유자에게 살인적인 세금을 부과해 중산층을 무주택자의 길로 몰아넣고 있고요.
이러한 접근은 국민들 사이에 ‘배아파리즘’(질투 정서)을 자극하고, 가진 자를 공격하는 데서 오는 단기적 카타르시스를 정치적으로 활용합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소비를 촉진하기보다 오히려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불신을 키워 궁극적으로 사회 안정성을 해칩니다. 하지만 표가 되죠. 여론전에서 인기몰이에 좋고요.
건전한 자본주의를 위해선?
자본주의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사회적 불만을 최소화하려면 부자와 서민이 함께 소비할 수 있는 건강한 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부자들에게 무리하게 세금을 걷어 재산을 빼앗는 대신, 그들이 지갑을 열 수 있는 프리미엄 마켓을 만들어 세수를 확대하고 이를 통해 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식이 훨씬 건전합니다.
예를 들어, 부자들이 수백억짜리 럭셔리 주택을 구매하게 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세금으로 서민들이 살 수 있는 주택의 질을 높일 수 있습니다. 수억 원짜리 고급 자동차를 판매해 확보한 세수로, 서민이 타는 2천만 원대 자동차의 안전성과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죠. 고급 레스토랑과 서비스 산업이 활성화되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임금이 올라가고, 이는 다시 소비로 이어질테니까요.
결국 자본주의는 부자와 서민이 함께 잘 사는 구조를 만들 때만 지속 가능한 체제로 작동할 수 있어요. 이는 질투나 분노가 아닌 건강한 소비 문화와 자본주의 가치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만 가능하죠.
현재의 한국에선 이상적인 얘기죠. 좁은 땅에 아웅다웅 살다보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나보다 경제적으로 낫다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고, 눈 앞에 보여서 더 질투하게 되거든요.
자본주의가 사회주의 정책을 일부 받아들인 것은 체제를 붕괴시키지 않기 위한 ‘역설적인 선택’이었어요. 하지만 현재 한국 정부가 펼치는 정책은 중산층을 두텁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붕괴시키고, 양극화를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부자들에게 상속세를 과도하게 물리고, 주택 소유자들에게 세금 폭탄을 안기는 것이 과연 건전한 자본주의의 모습일까요? 북유럽 국가들은 상속세가 없지만 소득세를 공평하게 부과하며 복지와 소비를 지탱하는데, 그들은 격차를 없애기보다 건전한 소비 순환을 통해 자본주의를 지키는 방법을 선택했어요.
지금 한국이 가고 있는 길은 과연 자본주의를 위한 유연한 변화일까요, 아니면 자본주의의 근본을 흔드는 포퓰리즘의 함정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