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부의 사유

돈으로 자유를 사는게 가능할까?

by 김현재


FIRE는 달콤합니다.



FIRE, 젊을 때 죽도록 아껴서 돈을 모으고, 30~40대에 은퇴해 평생 살겠다는 개념이죠. 바짝 벌어서 평생 살 수 있다는 말은 듣기만 해도 달콤해요. 하지만 현실은 냉정합니다. ‘조기 은퇴’는 모두가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며, 어쩌면 허영이거나 허상일지도 모릅니다. 그 이유를 3가지로 나누어 이야기해볼게요.




자산을 모으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FIRE를 하려면 일종의 규칙이 있습니다. 공식까진 아닌데 통용되는 룰이 있어요. 최소 생활비의 25배, 즉 4% 룰을 충족하는 자산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한 달 생활비가 300만 원이라면 9억 원 이상의 순자산을 확보해야 해요.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돈을 모으는 건 상상 이상으로 어렵습니다. 1억도 없이 사는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50%인걸요.


한국 사회는 고정비가 너무 높습니다. 특히 주거비가 큰 장벽이에요. 서울에서 집 한 채 마련하려면 이미 10억~20억은 기본이죠. 여기에 물가 상승, 교육비, 의료비까지 더해지면 월급쟁이가 FIRE를 목표로 자산을 모으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수학 문제’처럼 느껴집니다.


또한 자산을 불리는 과정에서 대부분은 금융 투자에 의존해야 하는데, 시장은 생각보다 예측 불가능하고 변동성이 큽니다. 한 번의 큰 하락으로 수년간 모은 자산이 절반으로 줄어들 수도 있어요. FIRE를 위해 극단적으로 저축하고 투자하다가, 오히려 삶의 질을 포기하고 불안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어느정도 규모있는 자산을 갖기 위해서는 긴 시간과 높은 소득이 필요합니다. 그런다면 화려한 FIRE는 못하더라도 평범하고 소박하게 삶을 유지할 수는 있어요.




인플레이션이라는 보이지 않는 적


돈을 아무리 많이 모아도 인플레이션은 그 가치를 꾸준히 갉아먹습니다. 과거에는 1억 원이면 집을 살 수 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전세 보증금도 못 되는 경우가 허다하죠. 앞으로 10년, 20년 후에는 현재 모아둔 자산이 절반의 가치로 줄어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FIRE를 꿈꾸는 사람들은 조기 은퇴 후 근로소득이 없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의 타격을 정면으로 받습니다. 연 3%의 물가 상승률이 20년 지속되면, 지금 300만 원으로 살 수 있는 생활이 20년 뒤에는 540만 원이 필요하게 돼요. 이를 맞추려면 자산에서 꾸준히 수익을 창출해야 하지만, 리스크를 감당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고, 리스크를 감당하다가 자산이 무너질 위험도 상존합니다.


결국 FIRE를 이루기 위해서는 인플레이션을 능가하는 수익률을 매년 꾸준히 만들어야 하고, 그건 전문가조차도 어려운 일입니다.


인플레이션을 이기는 꾸준한 소득이란 월세, 배당 등이 있지만, 월세도 관리비와 건축비 그리고 세금 등을 제하면 쉽지 않습니다. 배당 역시 배당금을 탐하다가 원금이 깎이는 상황이 쉬이 발생하고요.




은퇴가 곧 행복은 아니다


FIRE가 진짜 목표로 삼는 건 돈이 아니라 내 공간과 시간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일을 멈추고 시간만 많아진 삶이 과연 행복할까요? 놀랍게도 은퇴 후 공허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요. 일을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으로만 보던 사람도, 막상 일을 완전히 끊어보면 삶에서의 사회적 연결과 성취가 사라진다는 걸 깨닫습니다. 다만 이상적인건 일은 정규직으로 하지 않으며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내 시간을 자유로이 쓸 수 있는 행복이죠.


FIRE의 본질은 ‘돈을 많이 모아 빨리 쉬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완전 은퇴보다는 ‘반 은퇴(Semi-retirement)’나 ‘슬로 파이어(Slow FIRE)’가 더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조금 덜 벌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자산에서 나오는 소득으로 여유를 확보하는 거죠.



FIRE는 ‘빨리 돈 벌고 빨리 은퇴’라는 단어로 미디어에서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에게 허상에 가깝습니다. 미디어에 나와서 자신이 FIRE 했다는 사람들도 미디어에 돈을 벌러 나온걸요. 자산을 폭발적으로 불리는 것도, 인플레이션을 완벽히 이기는 것도, 일을 완전히 내려놓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아요. 허황된 꿈을 좇다 지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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