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조금 어려운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소재는 익숙하지만, 내용은 불편하고 어려울거에요.
세상에 공짜 없다는 말은 누구나 잘 아는 말이지만, 복지국가 논의 앞에서는 종종 한쪽 눈을 닫곤 합니다. 알지만 불편한 것을 말하고 싶어하지 않죠.
복지는 분명히 일부 필요하고 좋은 제도지만 실제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과 함께 사회적 연대의식이라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결국 복지국가의 기반은 세금과 연대, 이 두 가지입니다. 현재 우리에게 모두 점점 사라져 가고 있음이 안타까울 뿐이죠.
우리나라는 세율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부자 증세를 해야 복지가 가능하다”는 주장이 자주 등장합니다. 하지만 실제 수치를 살펴보면 한국의 고소득자와 기업은 이미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준의 세금을 부담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지방세를 포함해 49.5%입니다. 복지국가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스웨덴이 52%이니 큰 차이가 없고, 프랑스·독일이 약 45%, 미국이 37%인 것을 고려하면 오히려 높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인세 역시 OECD 평균은 21%인데 우리는 24%로 상회합니다. 전 정부가 추진했던 법인세 감세도 사실상 25%에서 24%로 조정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상속세 부담은 더욱 무겁습니다. 실제로 한샘이나 넥슨과 같은 기업이 상속세 문제로 흔들린 사례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100년 가는 기업이 있던가요, 일본은 3만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부동산 보유세는 다들 잘 아시겠죠. 전체 세수에서 보유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12.6%로, 주요 선진국 가운데 우리보다 보유세가 높은 나라는 사실상 없습니다.
요약하자면, 우리나라는 복지 수준에 비해 부자와 기업이 이미 과중한 세금을 내고 있는 나라입니다.
선별적인 납세로 인한 낮은 조세부담률
그렇다면 왜 우리의 조세부담률은 OECD 평균보다 낮을까요. 그 이유는 세금이 특정 계층에만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소득이 있는 사람 열 명 중 네 명이 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습니다. 이는 OECD 평균의 두 배가 넘는 수치입니다. 결국 우리의 조세구조는 ‘좁은 세원, 높은 세율’이라는 기형적인 구조로 고착화되어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사회주의적인 면이 있어 그렇고, 그 배경에는 정치적 계산이 있습니다. 모든 국민이 형편에 따라 세금을 내야 한다는 ‘보편 증세’는 설득이 어렵고 부담이 큽니다.
대신 정치권은 “부자에게 세금을 더 물리자”라는 단순한 구호를 반복해왔습니다. 세금을 내지 않는 다수는 손쉽게 동의했고, 세금을 내는 소수는 점점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게 민주주의라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우리 사회가 성장 동력을 잃고 있는 원인 중 하나입니다. 갈라치기를 하며 사회는 점점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사회적 연대의식은 점점 무너졌습니다. 부자는 서민을, 서민은 부자를 싫어하게 되고 그 중간에 서 있는 정부만 웃고 있는 양상입니다. 조세의 기본 원칙은 ‘넓은 세원, 낮은 세율’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그 반대로 가고 있고, 이 왜곡된 구조가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길을 막고 있습니다.
복지국가의 본질은 연대
복지국가는 부자에게서 세금을 걷어 서민에게 나눠주는 제도라기 보다는 더 가진 사람이 더 기여하고, 그 혜택을 받는 사람은 고마움을 느끼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정치적 이익을 위해 오랫동안 ‘나쁜 부자’라는 프레임을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이 세금을 내는 사람을 비난하는 기형적 현실이 굳어졌습니다. 세금을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한다면 복지국가의 기반인 연대는 더욱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세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복지국가를 유지할 수 있는 세원을 내는 사람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줘야 합니다.
국민 모두가 형편에 맞게 세금을 내는 보편 증세를 정직하게 설득하고, 더 내는 이들이 존중받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기업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필수입니다. 세금은 공동체의 철학입니다. 누가 더 내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함께 낸다는 인식입니다. 갈 길이 멀고 요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