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부의 사유

신뢰를 잃어가는 원화, KRW

by 김현재



요즘 달러원 환율이

다시 1,400원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숫자만 보면 외환시장의 등락처럼 보이지만,환율은 그보다 훨씬 복합적인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통화의 가치는 한 나라에 대한 신뢰의 온도를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입니다.


경제 규모만 놓고 보면 한국은 세계 상위권입니다. 그러나 원화의 존재감은 그에 비해 작고, 불안정하다는 평가를 자주 받습니다. 이는 나라의 경제력의 문제 보다는, 예측 가능성의 문제입니다. 정부의 정책은 자주 바뀌고, 정치권은 매번 대립으로 시간을 흘려보내며, 사회 전체는 장기적 신뢰보다 단기적 이익에 민감하게 움직입니다.


그리고 최근 정부는 시장에 갖은 형태로 돈을 많이 풀고 있습니다. 시장에 돈이 많아지면 가치가 낮아지죠. 돈의 가치가 낮아진다는 것은 물건의 가격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시장은 이런 불안정함을 가장 먼저 감지합니다. 투자자들은 수치를 보지 않고, 태도를 봅니다. 말로는 '경제가 튼튼하다'고 해도, 실제 행동이 다르면 돈은 바로 반응합니다. 달러가 강한 이유는 경제력이 아니라 '미국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믿음에 있습니다.


믿음, 이 단어가 핵심인데요. 통화는 신뢰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한국은 위기 때마다 흔들렸고, 그 흔들림이 쌓여 신뢰를 갉아먹었습니다. 지금의 환율은 그래서 단순한 시장의 결과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신뢰 수준을 반영한 거울입니다.





신뢰가 사라진 경제는 균형을 잃습니다


원화가 약세를 보이면 수출기업은 잠시 숨을 고릅니다. 같은 달러를 벌어도 더 많은 원화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원화 약세는 단기적으로 기업 실적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그 이익은 곧바로 사회의 다른 부분에서 비용으로 돌아옵니다.


수입 물가가 오르고, 생활비가 뛰면 소비는 줄어듭니다. 기업의 이익은 남지만, 국민의 지갑은 얇아지고 내수는 식습니다. 경제 전체로 보면 한쪽의 호황이 다른 쪽의 냉각으로 상쇄되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통화의 신뢰가 약해질수록 이런 불균형은 더욱 심해집니다.


경제는 경제주체의 거래 총합일 뿐 아니라, 신뢰가 순환하는 구조로 움직입니다. 기업이 투자하고, 가계가 소비하며, 정부가 재정을 집행하는 모든 과정은 '내일도 이 체제가 작동할 것이다'라는 믿음 위에서 돌아갑니다.


이 믿음이 흔들리면 돈은 더 이상 가치의 매개가 아니라 불안의 신호가 됩니다. 원화 약세는 그래서 시장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가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징후로 봐야 합니다.




통화의 힘은 숫자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 힘은 신뢰에서 비롯됩니다. 신뢰가 있는 사회는 불황 속에서도 자본이 남지만, 신뢰가 없는 사회는 호황 속에서도 자본이 떠납니다. 지금의 원화 약세는 바로 그 신뢰의 부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경제정책이 일관되고, 정치가 책임을 다하며, 국민이 제도를 믿을 수 있을 때 통화는 비로소 무게를 갖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는 그 기반이 약합니다. 정치적 불확실성, 재정 악화, 세대 간 불신, 그리고 ‘나만 살아남겠다’는 단기적 생존 논리가 신뢰를 잠식하고 있습니다.


신뢰는 통화의 근본입니다. 그 믿음이 사라지면 돈은 더 이상 가치의 저장소가 아니라 불안의 전달자가 됩니다. 원화가 약한 이유는 한국이 가난해서가 아니라, 사회가 스스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통화는 사회의 거울입니다. 그 거울이 흐려지면 방향도 함께 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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