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거대한 시대의 진실을 기록한 역사철학자였고,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구조를 꿰뚫어본 통찰자였어요. 특히 그는 ‘부(富)’라는 개념을 단순한 욕망의 결과물로 보지 않았어요. 사마천은 오히려 인간과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으로서의 부를 인식했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했어요. 이 글에서는 사마천의 생각을 통해 우리가 지금 시대에도 곱씹어볼 만한 부의 교훈들을 정리해보고자 해요.
부는 인간의 본능이며,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
사마천은 인간이 부를 추구하는 것은 마치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라 했어요. 위로는 고위 대신부터 아래로는 도둑까지, 누구도 이익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죠. 또한 사람들은 각자 능력에 맞게 힘을 다해 원하는 바를 이루려 하고, 자신의 생업에 부지런히 종사하는 것이 바로 인생의 본질이라고 보았어요.
이러한 사마천의 인식은 도덕주의적인 시선에서 보면 거칠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그러나 오히려 그는 이를 현실의 한 단면이자 인간 존재의 본성으로 인정했어요. 인간의 생존과 자율, 창조와 발전은 결국 ‘더 나은 삶을 향한 갈망’에서 비롯된다고 본 것이죠.
도덕과 인의는 부의 기반 위에서 존재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먹고 입을 것이 넉넉해야 명예와 치욕을 안다
사마천이 한 이 말은 도덕과 예절이 경제적 여유 위에서 작동한다는 뜻이에요. 즉, 생존이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도덕을 이야기해도 그 실천이 어렵다는 말이에요. 물성이 갖춰져야 인성도 갖춰진다는 거죠.
또한 그는 “실세한 사람은 외면당하고, 천금의 재산을 가진 자식은 결코 사형당하지 않는다”고도 말했어요. 이 구절은 빈자(貧者)의 도덕이 사회적으로 설 자리 없음을 암시해요. 실제로 자공은 공자의 제자 중 가장 부자였고, 그 덕분에 공자의 명성도 널리 퍼졌다는 분석도 있어요.
사마천은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는 인의와 도덕이라는 개념이 이상향이 아닌, 물질적 조건이 갖춰졌을 때 비로소 현실 속에서 꽃필 수 있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였어요.
부는 곧 지위와 권력,
그리고 생존의 전략
사마천은 재력의 차이가 사람 사이의 위계를 만든다고 보았어요. 열 배 차이가 나면 스스로를 비하하고, 백 배 차이가 나면 상대를 두려워하며, 천 배 차이가 나면 예속되고, 만 배 차이가 나면 노예처럼 복종하게 된다고 했어요.
현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재산이 많으면 사회적으로 발언권이 생기고, 사람들은 그 말을 더 귀 기울여 듣죠. 반대로 아무리 옳은 말이라 해도, 빈자의 외침은 쉽게 묻히고 말아요.
또한 그는 부의 형태도 다양하다고 봤어요. 귤나무 1천 그루, 166마리의 소, 250마리의 양이나 돼지 등 일정 수준 이상의 자산을 가진 사람은 “앉아서 수입을 기다리는 유유자적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했어요. 즉, 부는 단지 소비의 도구가 아니라,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수단이라는 것이죠.
사마천은 왜 이토록
‘부’에 집착했을까요?
그는 단순히 ‘돈이 좋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었어요. 그가 바라본 ‘부’란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 생존의 원리, 그리고 사회 질서의 실체였어요. 사마천은 도덕만이 정답이고, 부를 좇는 것은 오답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거부했어요. 오히려 그는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 세계는 부를 매개로 움직인다”는 역사의 진실을 기록했어요.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이는 유효해요. 우리는 부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나요? 부자라는 이유로 누군가를 폄하하거나, 반대로 도덕을 빙자해 가난을 미화하고 있지는 않나요?
부는 죄도 아니고, 신성한 것도 아니에요. 부는 ‘수단’이에요. 그 수단을 어떤 방향으로, 어떤 철학 위에서 사용할지는 각자의 몫이에요.그리고 그 선택은 결국 삶의 구조를 결정짓는 가장 큰 힘이 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