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부의 사유

소비를 줄이는 일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by 김현재



시간이 흐를수록

소비는 점점 커지죠.


살면서 소비를 줄여야겠다는 결심은 누구나 한 번쯤 하는데요, 한 달에 얼마 썼나 확인하며 잔고를 보고 놀랄때가 한두번이 아니에요. 남은 돈을 확인해보며 세후 소득 외에도 카드값 나가고 난 후의 가처분 소득인 '카후소득'이 더 중요해졌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결심은 오래 안가더라구요. 며칠 안 가 다시 커피를 사 마시고, 쇼핑 앱을 열고, 배달 앱을 켜게 돼요. 대체 소비를 줄인다는 건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




소비는 돈을 쓰는 것 이상의 무언가


생각 없이 돈 쓰다보면 어디에 쓰는건지도 모른채 돈만 없다고 느끼게 되는데요, 소비는 이보다는 훨씬 더 복합적인 의미를 갖고 있어요.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옷을 입는지, 화장품은 어떤 브랜드를 쓰는지, 어떤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지, 무엇을 먹는지 등 한 사람이 생활하며 보여주는 라이프스타일은 소비로서 대표되고 어떤 가치관이 있는지도 보여지니까요.


소비는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


그래서 지출을 줄이려는 순간, 괜히 위축되거나 스스로를 제한하는 기분이 드는 거예요. 커진 소비는 늘어난 가죽처럼 좀처럼 예전으로 줄이기 어려워요.




소비는 습관이자 나에게 주는 보상


그래서 소비는 습관이에요. 어제의 습관들이 모여 오늘의 내 무의식이 생기듯이, 어제 소비들이 내 한달 카드값으로 나가버리죠.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거나 기분이 우울할 때 자꾸 뭔가를 사고 싶어지는 이유는 뇌가 소비를 보상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걸 '시발비용'이라 하던데, 충동적인 소비인거죠.


기분이 나쁘니 홧김에 하는 무의미한 소비. 배달음식 한 번, 커피 한 잔, 간식 하나 등 이런 건 욕구 해소라는 면도 있지만 일상 속 반복되는 보상 패턴이 되어 버려요.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은 쉽게 끊어지지 않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나 별로 쓴 것도 없는데 왜 잔고가 이래?”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죠. 작은 지출들이 쌓이고 쌓여서 큰 부담이 되는 건 생각보다 흔한 일이에요.





자존심을 건드리는 절약


절약은 좋은 거라고 말하면서도, 막상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 하면 불편함을 느껴요. 열심히 일하는 내가 굳이 아껴야 하나 싶고, 이 정도 지출도 못하면서 뭘 하고 있나 자괴감이 들기도 해요.


커피 한 잔 마시는 게 뭐 어때서?
내가 이 정도도 못 쓰는 사람인가?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절약은 억울함으로 바뀌고, 소비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수단으로 전락해요.


그래서 절약을 ‘돈을 아끼자’라는 수준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자존감, 자율성, 나를 대하는 태도와도 연결해서 이해하는게 좋죠.




주변 사람과의 비교


주변 사람들은 내가 속한 사회를 보여주는데, 그들을 통해서 내 모습을 새롭게 보기도 하죠. 친구가 좋은 차를 뽑았을 때, 동료가 비싼 옷을 입고 왔을 때, SNS에서 남의 여행을 볼 때 마음속에서 '나도 저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자연스러운 생각이 들잖아요.


약한 자아가 고개를 드는 순간이죠.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소비를 통해 ‘내 위치’를 확인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안에서는 절약이 뒤처지는 일처럼 느껴지기 쉬워요.


이게 반복되면 소비는 사회적 압력에 가까워져요.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기준 삼게 되는 거죠. 타인의 눈으로 살면 그 만큼 괴로운게 없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를 조절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결국 소비를 줄인다는 건 돈을 아끼려는 목적보다 더 가치 있는 무언가를 위한 선택일텐데요.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그 삶을 만들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점검하는 과정이에요. 지출을 통제할 수 있어야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고 또 그걸 살 수 있어요.경제적인 여유도 중요하지만, 감정적인 주도권도 같이 따라오는 거니까요.


제한된 자원 속에서 최적의 선택을 하는게 인생. 그 선택의 큰 축이 소비고, 소비가 나를 표현하는 방법이 되어 버리면, 인생의 끝없는 갈증이 시작되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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