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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Mar 24. 2024

리젼 오브 오너(Legion of Honor) 박물관

매주 토요일은 무료! 박물관 나들이 같이 가실래요?

 이전 연재 작품중 '집샌 물샌- 미국에서 집에 물이 새면'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 때 그 문제의 윗집이, 드디어 집을 내놨다! 장장 8~9개월 만에. 그리고 이번 주말에 드디어 오픈하우스(팔려는 집을 시간을 정해 사람들이 보러 올 수 있도록 광고하고 맞이하는 것)를 한다.


망했으면 좋겠는데 우리 집 값에 영향을 미치니 또 엄청 잘 팔고 나갔으면 좋겠는 복잡미묘한 마음에 괜히 윗 집 오픈하우스가 시작을 했는가, 사람들이 많이 왔는가 신경이 쓰였다. 이럴거면 어딜 차라리 나갔다오는게 좋겠는데. 오늘은 또 날씨가 우중충하단다. 비가 올지도 모른다네.


날씨가 우중충하면 실외활동은 또 하기 싫으니, 실내를 찾아보자. 마침 매주 토요일, 샌프란시스코 주민에게는 리젼 오브 오너 예술 박물관 입장이 무료다. 남편이 찾아보더니 무료더라도 온라인 티켓을 받아서 가는게 좋다기에 그렇게 했다. 잊고 있었는데, 오늘 오르간 연주 공연도 한단다. 잘됐다고 옷을 주워입었다. 리젼오브오너 박물관 일대는 보통 춥다. 남편을 닥달해서 패딩을 입고 나왔다.



무료 입장일이라 그런가 차가 많았지만 다행히 주차를 하고 내렸는데, 웬걸? 하늘이 파랗고 해가 따스했다.



이 박물관은 웅장하다. 옛날에 남편이랑 데이트할 때 처음 와 봤었고, 그 이후로도 시간이 날 때 종종 왔었다.


내가 사진을 삐뚤게 찍어서 그렇지, 그리스 신전 같고 멋있다. 그래서 그런가 언제나 누군가가 스냅을 찍고 있다. 오늘도 결혼식 스냅을 두 팀이나 봤다. 4-5월인가 갔을 때에는 Prom(고등학교 졸업 파티) 스냅사진 찍는 팀이 많았었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여기는 해가 들어도 조금은 쌀쌀한데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입은 저 여인네들은 춥지도 않은가 싱글싱글 웃고있다.



무료 혜택을 받으려면 카운터에 도착해서 주소지가 적힌 서류를 확인받아야 한다. 나는 신분증을 까먹고 안 가지고 와서 남편 눈치를 보며 지로 영수증 같은 걸로 확인했다. 확인 후에는 스티커를 하나 준다. 그걸 붙이고 있으면 나갔다가 다시 재입장도 가능하다.


우리는 몇 번 왔었기 때문에, 상설 전시는 꽤 눈에 익다.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저 중국풍 접시 전시물은 처음 보는 것인데, 도자기 전시관에 새로운 전시품이 있다고 해서 거길먼저 보러갔다.



18세기 정도의 깨진 접시유물(?)을 다시 붙이거나 재배치해서 새로운 예술품을 만드는 예술가였다. 나는 멀쩡한 유물을 사다가 깨가지고 만드는 건가 괜한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도 깨진 걸 구해다가 만드는 모양이었다.



이 전시관은 사실 어머님들이 상당히 좋아하실 만한 곳이다. 몇 백 년 전의 컵, 접시 등 도자기 예술품을 모아놓은 곳인데 엄청 아기자기하고 세밀한 디테일이 아름답다. 전시관 자체도 밝고 쾌적해서  흠흠~ 콧노래가 나온다. 마치 귀부인 접시컬렉션을 구경하러 온 것 같다.


도자기로 만든 새와 채소식기세트. 보라 아스파라거스 더미가 진짜와 똑같다.

보고 있으면 어머 저거 하나 갖고싶다-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저 조그만 티 컵 바닥에 저걸 어떻게 그렸나 싶고, 도자기로 저런 디테일을 어떻게 살렸을까 싶다. 우리 엄마가 이런 걸 엄청 좋아하셔서 엄마 생각이 났다. 어릴 때 부터 엄마는 이런 아기자기한 그릇과 장식품을 모았다. 지금도 한국 집 벽 한 면은 엄마가 사 모은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가득 차 있다. 엄마가 이걸 보면 아마 내 등짝을 두드리며 "어머! 이것 좀 봐! 진짜 같잖아!!!" 하고 소리치셨을 거다.


갑자기 돼지머리?


그리고 갑자기 돼지머리가 떡하니 있었다! 귀, 눈, 코, 이빨에 털, 약간의 핏자국(?) 까지 엄청나게 대놓고 멧돼지 머리다. 뜬금없지만 저런 거 하나 있으면 고사 지낼 때 진짜 돼지머리 없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보아하니 저 머리 절반이 뚜껑이여서 열리나 본데, 그러면 돈 꽂는 것 보다 그냥 열고 넣는게 엄청 효율적이겠는걸? 하는 생각이 드는ㅋㅋㅋ.. 영락없는 한국인.



여기 전시관을 나오면 그 옆에는 굿즈샵이, 맞은 편에는 카페가 있다. 자, 샌프란시스코내 유명 박물관들의 대미는 카페와 굿즈샵이다.


박물관 어린이 보드북과 러그모양 코스터 & 마우스패드. 이런 귀여운 생각은 어찌 하는 건가 몰라

굿즈샵은 일단 재치 넘치고, 귀엽고, 사고 싶은 물건들로 가득하다. 가장 위험한 곳으로는 모마(현대미술관)와 익스플로어토리움(과학미술관)이 있다. 그 두 곳의 기프트 샵 크기도 꽤 크거니와 구경할 것이 많아서 언제나 뭐가 손에 들려있게된다. 리젼오브오너의 굿즈샵은 굉장히 작지만, 알차게 재밌는 것들이 많이 있다. 특별전시가 있으면 그 굿즈를 사 모으는 것도 재밌다. 오늘은 가까스로 빈손으로 나오는 데 성공했다. 인내심 만세!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밖에 해가 좋아서 카페에서 쉬었다 가기로 했다 (벌써ㅋㅋㅋ) 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모마와 익스플로어토리움, 드영 박물관은 모두 카페가 찐이다. 다운타운 근처에 살 때는 모마 회원권을 끊어놓고 자주 다녔는데, 목적은 사실 카페였을 정도.



여기 카페는 작지만 알찼다. 각종 와인과 음료, 샌드위치와 디저트종류가 있었다. 우리는 작은 머랭 레몬타르트와 음료 하나를 사들고 밖에 앉았다.


옆 테이블의 5살 남짓 되어 보이는 아이가 같은 타르트를 주문해서 들고왔다. 타르트를 먹을 생각에 신이 난 건지, 아니면 원래 천방지축인건지 접시를 든 채로 딴 데를 보고 앉으려다가 타르트가 미끄러져 거의 떨어 질 뻔 했다. 어어어! 하는데 다행히 아빠가 달려와 접시를 잡으며 잘 들어야지 떨어진다고 나무랐다. 아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어쨌든 타르트는 말짱했으니 그런 불상사는 안중에도 없고, 신나게 타르트를 베어물었다.


하늘이 얼마나 파랗고 해가 따사로운지, 처음에는 추울까봐 해를 마주보고 앉았다가, 나중에는 너무 눈이 부셔서 반대방향으로 앉았다. 타르트는 새콤달콤했고, 햇살은 따사롭고. 우리는 거기 앉아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카페를 나와 다시 윗층으로 올라가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웬만한 건 그대로 있는 상설전시여서 본 것들이었지만, 그래도 훑어내려가는 재미가 있었다. 한 쪽 끝에서 1300년대 쯔음 부터 시작해서 현대까지 오는 흐름으로 보게 되어있는데, 우리는 별 생각 없이 역방향으로 돌았다.


(왼)모네, (오) 고흐
예전에 인스타그램이 있었다면 이런 게 아니었나 싶다. 이 멋진 피라미드 경치좀 봐! 혹은 내가 모은 조개 컬랙션좀 봐!
러시아 신부의 결혼식. 실제로 보면 크기가 한 쪽 벽 만큼 커서 분위기를 압도한다.


그림들 말고도 조각품(로뎅이라든가), 장식품, 가구에서부터, 벽 패널이나 천장까지 다양한 전시품을 보는 쏠쏠한 재미가 있다.


왼쪽의 테이블은 각종 하드스톤을 다양한 모양으로 깎아내 모자이크 한 수제 테이블. 갖고싶었다.

저런 건 지금 만들어도 사겠는데 싶기도 하고, 나는 그 당시의 삶을 상상해 보는 걸 좋아한다. 저 가구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지금은 빛 바랬지만, 그 당시에는 번쩍번쩍 엄청났겠지- 하고.





사실 여기까지 봤으면 다 봤는데, 아직 집에 갈 순 없었다. 4시에 오르간 공연이 있었기 때문. 한 30분 쯤 남아서 박물관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고 오기로 했다. 사실 여긴 뷰 맛집, 하이킹 맛집 이기도 하다.



저 멀리 금문교와 금문교 너머 마린헤드랜드가 한 눈에 보인다. 실제로 보면 건너편의 경치가 기가 막히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기 하고 싶은 걸 한다. 웨딩 스냅을 찍는 젊은 커플, 앉아서 쉬는 사람, 태극권 비슷한 걸 하는 사람들까지.



하다못해 잔디에 핀 작은 꽃들도 예술품 같다. 박물관은 언덕위에 위치해 있는데, 왼쪽에는 금문교 뷰가, 오른 쪽에는 도시뷰가 보이는 곳이라 하이킹/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다. 게다가 도시 골프장도 있어서, 이 멋진 뷰와 함께 골프를 즐기고 싶으신 분이라면 추천한다. 남편이 얘기하길 프라이빗 클럽이 아니고 오픈된 골프장이라고 하니 아무나 돈 내면 사용할 수 있는 모양이다.



주변을 둘러보고 돌아와 공연을 듣기 위해 의자에 앉았다. 딱히 무대가 있는 게 아니라, 조각품 전시관 한중간에 떡 하니 오르간이 있다. 오르간 연주는 매주 토요일 4시에, 전시를 관람하는 이 모두가 볼 수 있다.



전에도 본 적 있었는데, 이번 오르간 연주자 분은 더 짜임새 있고 재미있으셨다. 박물관 내에 그림을 몇 가지 골라서 그 그림에 맞게 곡을 준비해 들려주셨고, 오르간 자체에 대한 설명도 쉽고 자세하게 풀어주셨다.


이 박물관에서 특이한 점은 이 오르간이다. 바로 오르간 파이프가 이 박물관 건물 자체 속에 매설(?) 되어 있다는 사실! 겉에서 볼 때는 이렇게 오르간 밖에 안 보이지만, 벽 안에 4000개가 넘는 오르간 파이프가 숨어있다.


왜 갑자기 벽 사진일까? 사실 파이프가 저 안에 숨어있다. 단단한 시멘트 벽돌인 것만 같은 부분이 소리를 통과시키기 위해 벽돌인척 하는 천으로 되어있다! 때문에 오르간을 연주하면, 건물이 노래하는 것 처럼 들린다. 신비롭다.



저 밑에 페달 또한 건반이다. 오늘은 특별히 바흐가 학생들을 위해 만들었던 '발 페달 연습' 곡을 들려주셨는데, 온전히 발로만 연주하는 곡이었다. 세상에, 발로만 연주하는 곡이라니.




또 신기했던 점은, 오르간 자체가 몇 십 명 분의 오케스트라를 한 사람이 연주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악기였다는 것이었다. 저 하얀 레버 처럼 보이는 것이 모두 다른 악기 소리를 낼 수 있도록 바꾸는 도구란다! 그러기 위해서 오르간 연주자는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기 위해 4단이나 되는 손 건반 + 발 건반까지 손발이 다 따로, 또 같이 연주를 해야한다. 그러니까 이 것 하나로 팀파니 부터 심벌즈, 캐스터네츠, 현악기나 관악기 소리까지 흉내 낼 수 있다! 어머나 세상에 신기해라! 천둥드럼(?) 소리도 들려주셨는데, 건물 전체가 진동하는 듯한, 중압감이 느껴졌다.





그림만 보는 박물관은 재미없다고 생각한다면, 리젼오브 오너는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멀티플레스공간이다.


시각: 중세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그림 전시 2D, 조각품, 가구, 생활전시품 3D

청각: 오르간 연주로 듣는 음악에

촉각: 건물 전체로 느끼는 음악의 진동까지.

미각: 카페에서는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고


게다가 아름다운 박물관의 외관은 물론이고 주변을 둘러싼 샌프란시스코의 대표 풍경도 감상 할 수 있다. 원한다면 하이킹/바이킹/골프까지 즐길 수 있으니!

 

샌프란시스코의 박물관들이 지루하지 않아서 좋다. 언제나 가까이 있고, 다양한 시도와 혜택으로 시민들에게 문화경험을 제공하는 멋진 곳. 알찬 토요일이었다. 내일은 또 뭐 하고 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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