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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양희 Mar 25. 2024

도심 속 초록 해변

모든 이가 사랑하는 공원

작년 2월 샌프란시스코에 온 내 친구 아현은 돌로레스에서의 명상 시간이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이라고 했다. 아침 9시 30분, 미션으로 온 우리는 타르틴 베이커리에서 커피와 크로와상을 챙겨 돌로레스 공원 북쪽의 벤치 위에 앉았다. 맛있는 빵과 커피가 아침의 허기를 달래주었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었다. 우리는 태양을 향해 얼굴을 쳐들었다. 기미와 주근깨 같은 사소한 걱정 따위에 천금 같은 햇빛을 낭비할 순 없었다. 서울의 호텔에서 일하는 아현은 휴식을 찾아 이곳 샌프란에 왔다.

아현과 함께한 돌로레스

“아현아 눈을 감아봐. 그리고 눈썹 사이 미간에 햇빛을 모은 공을 생각해 봐. 딴생각이 생기면 ‘아, 다른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린 다음 다시 공에 집중하면 돼. 몸과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계속하다 보면 나중에 스트레스받는 상황이 와도 조금은 편안할 수 있어.”

돌로레스의 평화로운 풍경과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불어오는 바람과 빛나는 햇살은 눈을 뜨든, 눈을 감든, 모두의 근심을 녹여버리는 마법이 있다. 우리는 그렇게 드넓은 잔디 밭과 샌프란시스코의 전경을 바라보며 두시간 반 가량 명상을 했다.


작년 5월, 나의 동생들도 샌프란을 찾았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최고의 장소 역시 돌로레스였다. 이번에도 역시 샌프란의 전경이 다 내려다보이는 북쪽 끝에 앉아 햇볕을 등지고 경치를 바라보았다. 빨간색 요가매트를 잔디 밭에 깔았다. 별 말 하지 않아도 그렇게 머무르고만 있어도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우리 셋이 이렇게.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구나.’하는 생각에 괜히 마음이 뭉클했다. 하늘은 짙게 푸르렀고 멀리 도심의 스카이라인도 보였다.

"언니야, 여기 참 좋아." 

막내동생이 말했다. 

"응. 언니 좋은데 살고 있으니 맘 놓고 한국에서도 잘 지내고 있어."


들로레스 공원의 세 자매


샌프란을 찾은 나의 손님들 모두 돌로레스를 가장 인상적인 장소로 손꼽았다. 평화로운 공원의 분위기와 따사로운 햇살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게 아닐까. 들로레스는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요즘 같이 날씨가 좋은 주말이면 잔디밭 빼곡히 사람들이 앉아있다. 어떤 이들은 돗자리를 깔았고, 어떤 이들은 그냥 잔디에 드러눕는다. 친구들과 온 사람들은 피크닉 테이블을 펼쳐 음식을 먹기도 하고, 누군가는 선탠을 한다.


우리 옆자리 해변에 온듯한 젊은이들


최근 이사를 한 나와 남편은 돌로레스 공원 10분 거리에 살고 있다. 햇살 좋은 날이면 우리는 돗자리를 깔고서 가장 조망이 좋은 곳에 자리를 잡는다. 나는 책을 읽고, 남편은 낮잠을 잔다. 온갖 종류의 자유가 뭉쳐져 있다. 분명 따로 온 사람인데도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다 같이 앉아 시간을 보내고, 모든 종류의 사랑이 부끄럽지 않게 표현된다. 특히 이곳은 동성애와 성 소수자들의 성지인 카스트로와 가까워서 다양한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쉬쉬 되어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사랑, 다양한 모습들이 나란히 깔려있는 잔디 위에서 펼쳐진다. 스스로가 얼만큼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람인지 알아차리기 좋은 장소다.

 

요즘 같은 봄볕이 좋은 날 주말이면, 피서가 한창인 해운대의 물 반 사람 반 처럼, 초록색 잔디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꽉차 있다. 그런날이면 꼭 돗자리를 챙겨 나의 영역을 쟁취해야 한다. 약간의 물도 준비하면 좋다. 같이 갈 친구가 있다면 금상첨화다. 저마다의 놀거리로 채워진 탁트인 공원의 한 가운데 앉아있으면 세상 제일가는 힙스터가 된 느낌이다.


소란스럽기도 하고, 조용하기도 하고, 젊음의 에너지가 넘쳤다가, 고요해지기도 하는것이 돌로레스의 매력. 


비스듬한 경사면에 위치한 이 드넓은 잔디밭은 1905년 당시 유대인들의 공동묘지였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시가 이 땅을 구매한 이후, 공원으로 조성되었다가 1906년과 1907년에는 샌프란시스코 대지진과 화재 피해자들의 구호 캠프가 차려진 곳이다. 지금은 젊은이들이 수영복 차림으로 태양을 즐기는 도심 속의 초록해변이다.


도심 속에서의 휴식을 즐기고 싶다면, 젊음을 느끼고 싶다면, 평화와 자유를 느끼고 싶다면 돌로레스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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