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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Jun 21. 2024

(프랑스) 미녀와 야수 옆동네 다녀왔다

벨처럼 노래부르고 빙글빙글 돌아야 될 것 만 같은 충동

일요일 오전 여덟시면 눈이 반짝 떠졌다.


엄마 아빠는 아직 자고 있는 듯한 조용한 집 안, 나는 조심조심 침대를 벗어나 텔레비젼 앞으로 갔다. 갖가지 디즈니 만화를 틀어주던 디즈니 만화동산. 왜 일요일 아침으로 편셩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꼬무랭이들이 학교도 안 가는 날인데 아침부터 일어나 부산을 떨게 만들었던 디즈니 만화.


디즈니 만화는 유럽에서 모은 이야기들을 배경으로 만든 경우가 많았으므로, 나는 자라면서 그 곳이 항상 궁금했다. 동화속의 아기자기한, 지붕은 뾰족하고 벽은 노랑색 분홍색으로 알록달록한 그 곳. 갈색의 포동포동한 빵을 한 가득 나르고, 연노란 색의 따뜻한 수프를 먹던 곳.


스위스 여행에서 바젤을 주요 목적지로 삼았던 것은, 바젤 자체가 문화의 도시였던 것도 있지만 국경을 접하고 있는 프랑스나 독일도 갔다올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것도 있다. 하루 낮에 그냥 슝 하고 다녀올 수 있는 곳. 프랑스의 디죵(그래, 그 머스타드가 유명한 그 디죵!), 스트라트부르그, 독일의 Freiburg im Breisgau도 있었지만, 종국에는 그냥 Colmar를 골랐다. 바젤에서 기차를 타면 40분 정도 밖에 안 걸리고, 마을이 아기자기하고 예쁘다고 했다.


그 때는 모르고 갔는데, 지금 다시 찾아보니 '미녀와 야수' 배경 마을의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 동네가 이 근처다. 어느 마을을 배경으로 했는지 디즈니가 확실히 밝힌 바는 없기에 찾으면 다 다르게 나온다. 다만 이 근방은 맞는 모양이다. 누구는 근방의 Ribeauvillé 나 Riquewihr 누구는 Colmar라고 하는 걸 보니. 이 중에 Colmar가 기차역이 있어서 가장 접근성이 좋다.


기차에 자리를 잡으니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국인 여행자 둘이 보였다. 20대에 유레일패스를 가지고 왔던 나의 여행이 생각났다. 남편은 그들이 한국인이라는 걸 칼하트를 입고 있는 걸 보고 먼저 알아챘다ㅋㅋㅋ 역시나 남편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농장에 칼하트 많았는데 그걸 가지고 있었으면 지금 구제 칼하트가 얼마야 하고 같이 낄낄거렸다. 칼하트 옷을 볼 때 마다 이 소릴 한다.





Colmar 역에서 저 아기자기한 곳 까지는 도보로 15분-20분 가량 걸린다. 버스 티켓을 사기가 귀찮아서 우리는 그냥 걸어갔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무료셔틀이 있었다! 기차 역에서 주요 관광지까지 한 방향으로 순환운영을 한다. 좌석이 8개 정도로 많지 않은 작은 버스다. 적어도 내가 갔을 땐 콜마르 검색할 때고 안 나오고, 도착했을 때도 눈에 잘 띄지 않아서 있는지도 몰랐다. 한참 걸으며 돌아다니는 작은 버스를 보고 저게 뭐야 했는데 무료셔틀이었다니. 검색을 거듭해 겨우 루트를 찾았다.

루트는 매번 바뀔 수 있으니 다시 확인해 보시는 게 좋겠다.

 


뭐가 특별히 있다기보다는, 여러가지 상점/식당/기념품을 파는 관광지다. 다만 그 가게 건물들이 1600년대에 지어졌고, 그 외관이 아기자기 참 예쁘다.



몇 백 년 된 프랑스 건물 일층에 초밥집이 있는게 재밌었다. 여기는 관광지임을 대놓고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아닌가. 비수기이기는 해도 바젤보다 확실히 관광객이 많고 붐볐다. 단체관광객들도 많았다.


이런 집들을 보는게 좋았다. 당시에는 길 면적을 벗어나 집을 짓지 못했으므로 위층으로 갈수록 면적을 크게 지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혹자는 1층 면적에 따라 세금을 부과했기 때문에 이런 식이었다고 하기도 하고. 예나 지금이나, 인간들은 언제나 꼼수(?)를 찾아낸다ㅋㅋㅋ. 엄마한테 사진을 보내줬더니 집이 무너질까봐 무섭다고 했다.



어디나 마켓이 제일 재미있으니 Marché Couvert Colmar라는 실내마켓에 가보도록 한다.


여러가지 먹을거리와 그로서리를 파는데, 어느 한 가게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치즈와 프로슈또를 사고 있었다.


고민하다가 남편과 프로슈또를 맛보기로 했다. 아주머니가 주문을 받으면 큰 다리를 통째로 들고 가서 슬라이스 해서 준다. 이름도 생각이 안 나지만 두 종류의 프로슈또를 구입했다. 하나는 궁금해서 제일 비싼(?) 놈으로 사봤다. 그래도 홀푸즈에서 파는 프로슈또보다 저렴했다 ㅠㅠ

사람들은 막 열 장 스무 장씩 사가는데, 꼴랑 두 장을 달라고 하자 주인 아주머니가 "두 장 만 달라고??" 하고 프랑스어로 되물으며 웃었다. 남편과 나는 손가락을 두 개 펴 보이며 조금 민망하게 웃었다. 아주머니는 두 장도 정성을 다해 잘라주셨다.


남편과 밖에 나와서 앉아 프로슈또를 찢어서 맛봤다. 아-왜 이 맛있는 건 미국으로 물 건너 오면서 다 맛이 없어지는 건지, 혹은 미친듯이 비싸지는 건지 모르겠다. 제일 고가였던 프로슈또는 신기하게 쫀득쫀득하고 기분좋게 쿰쿰한 치즈 맛이 났다.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촉촉하게 달라붙고 녹았다. 한아름 사오고 싶었는데. 그럼 공항에서 탐지견의 대환영을 받겠지.



그리고는 그냥 걸어다녔다. 물이 잔잔히 흐르고, 건물이 알록달록한 중세 마을. 미녀와 야수 초반에 벨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노래를 부르면, 동네 사람들이 창문에서 얼굴을 내밀고 함께 노래를 했다. 갑자기 노래를 부르고 뱅글뱅글 돌며 동네를 돌아다니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그럼 사람들이 행동을 멈추고 저 위층 창문을 열고 뛰어나와 노래를 따라 떼창할 것만 같은. 물론 실제로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벨이 부르는 노래 가사를 모르는 게 다행이었다.




중심가를 벗어나면 사람들이 사는 그냥 아파트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작은 병원도 있고, 은행도 있고, 수퍼도 있다. 얼마전에 이스터 축제같은 걸 한 모양이었다.


크리스마스에 오면 얼마나 더 멋질까! 정말 동화같을텐데!



어디나 그랬듯 일반인들은 바쁘게 살았겠지. 간간히 골목에 서서 몇 백년 전 사람들은 여기서 뭘 했을까 하고 공상에 잠겼다. 물을 길어오고, 먹을 걸 구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그 사람들은 자기네 집이 나중에 아시아에서 온 횟집이 될 줄 알았을까(웃음)



점심때를 한참 지나 뭘 먹으려고 식당을 찾았다. 식당이 엄청나게 많은데 다 관광지고, 메뉴도 다 그냥 비슷하다. 여기저기를 돌다가 하트로 도배가 되어있는 독특하게 생긴 식당에 들어갔다.

Brasserie des Tanneurs 라고 한다.


전 날 먹었던 세트에 감명받아서 이번에도 세트를 시켰다. 치즈 스팟젤(반죽을 잘게 자른 파스타 같은 음식)과 샐러드가 같이 나왔다. 나쁘지 않았다. 옆 테이블에 십 대 쯤 된 남자애가 슈바인스학세를 먹고 있었는데 그게 엄청 맛있어 보였다. 순간 아 저걸 먹을 걸 하고 아쉬워했다. 남편이 먹은 저 오렌지쥬스(?)가 엄청 맛있었다.



조금 외곽으로 나와 걸으면 좀더 체인스러운 가게들이 입점해 있다. Colmar를 찾으면 Vieille ville과 Petite Venice 같은 곳이 구경할 곳으로 나오는데, 이게 다 그냥 연결되서 끝없이 동화같은 골목이 등장한다. 물론 좀 덜 관광지 스러운 곳을 가면 좋겠지만, 그러려면 교통수단이 복잡해지고 시간도 없고 그럴 에너지도 없다. 나는 이 중세의 관광지 마을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끊임없이 구경할 게 많은 것도 좋았다. 간간히 나오는 푸른 하늘에 대비되는 알록달록한 건물도, 500년 전의 사람이 '아니 내 집이 버블티 집이 되었다니' 하고 역정을 내는 걸 상상하는 것도 즐거웠다.



돌아오는 길에는 아까 그 셔틀을 타고 편하게 기차역으로 돌아갔다. 기차를 타고 바젤로 향했다.




또 가만히 있으면 좋을 텐데 바젤의 마지막 날이라는게 아쉬워 또 나가서 돌아다녔다. 바젤에 한인마트가 있어서 구경했다. 그냥 기성품 말고도 조리된 음식도 냉동해서 팔았다. 안그래도 바젤에살았으면 하는데, 한인마트까지 있다니 진짜 사는 데 문제가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한 무리의 십대가 불닭볶음면을 사가지고 나갔다. '불닭볶음면은 스위스에서도 잘팔리는 군' 하는 생각보다도, '쟤들 저거 매운데 괜찮을까' 괜히 걱정이 됐다. 조심하렴 얘들아.


꼭 외국에 나오면 라면이 먹고 싶은 것이 국룰. 나는 외국(미국)에 사는 데도 그 외국(미국)에서 또 다른 외국(스위스)에 나왔다고 라면이 먹고 싶은게 웃겼다. 외국을 나가서 라면이 먹고 싶은 건 과연 몇 차원의 외국까지 허용되는 것인가. 한인마트에서 안성탕면 두 봉을 샀다. 와인을 좀 먹자고 쿱에도 갔다.


식당에서 와인이 너무 저렴해서 놀랐었는데, 아니 마트에서는 더 싸서 놀래 자빠질 지경이었다. 작은 병 선택지가 많은 것도 넘나 좋았다. 우리는 크게 흥분하여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5불인가 6불인가 주고 작은 병을 하나 구매했다. 저걸 종류별로 다 사가지고 왔어야 했다.




벌써 바젤에서의 마지막 날. 그냥 밖을 돌아다녔다. 그냥 너무 좋아서. 지는 해가 너무 아쉬워서. 덜렁거리는 왼쪽 무릎을 붙잡고, 오늘의 걸음수도 19500보를 향해 늘어만 갔다.




라면은 한 개만 먹자고 끓였다가 맛있어서 하나를 마저 또 끓였다. 저렴한 레드와인은 너무 달콤해서 술술들어갔다. 어슴푸레한 조명 아래, 모던한 우리의 숙소에서.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바젤대학 예술건물의 불빛을 보며.


왜 시간은 행복에서 멈추지 않는가. 왜 1주일만 잡았지? 왜 2주를 만들지 않았냔 말이다! 아직 첫 날에 산 빵도 다 못먹었고, 치즈 타르트도 또 사먹어야 되는데 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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