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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Jun 29. 2024

더울때는 스위스의 눈 덮인 산

같이 인터라켄으러 떠납시다


"아니, 저거 사람 아니지?"



사진을 자세히 보시면, 지붕위 봉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사람의 형상을 볼 수 있다. 첫 날에는 깜짝 놀랐는데, 진짜 사람은 아니고(당연히) 조형물이다. 여기 말고도 바젤 도시 곳곳에 건물에 매달려 있거나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는 듯 보이는 조형물이 더 있어서 월리를 찾아라 처럼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리는 세 개를 찾았다. (총 몇 개 있는 지 아시는 분?)


드디어 눈이 시원하도록 하늘이 맑게 개었는데 우리는 아쉽게도 바젤을 떠나는 날이다. 5화 스위스의 이른아침, 혼자 빵을 사러 나왔다 에서 샀던 빵을 드디어 다 먹어치우고ㅋㅋㅋㅋㅋ 짐을 싸서 나왔다. 안녕 바젤 예술대학의 낭만! 맛있는 빵집! 귀여운 집들과 거리!



푸른 하늘을 가진 바젤은 더 아름다웠다. 떠나는 날인데! 괜히 아쉽고 야속했다 (누구한테?) 드르륵드르륵 캐리어를 끌고 얼굴 가득 해를 받았다. 어린이는 양말바람으로 자전거를 타고 동네 주민은 강아지 산책을 시키는, 평안함이 아름다운 도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라는 시 구절도 있듯이. 아름다울 때, 사랑해 마지 못 할 때 떠나는 것이 오래도록 사랑하는 방법일 것이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또 오면 된다. 남은 일정도 참 예쁠 것이다 하고.




다음 목적지는 인터라켄. 바젤에서 기차를 잡아탔다.

호수를 지나 인터라켄으로





인터라켄에 도착하자 관광지 느낌이 확 났다. 이리저리 우르르 단체관광객도 많았다. 비수기 인데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고? 내 기억속 13년 전의 인터라켄은 성수기었는데도 훨씬 덜붐볐었 던 것 같은데 - 혼란이 왔다.


일단 숙소에 체크인을 할 수 있나 보고, 안 되면 짐이라도 내려놓자고 숙소로 향했다.

Bed & Bar No.8 이라는 작은 호텔. https://maps.app.goo.gl/QstfFwfTsxkVMbRr7


체크인 시간 훨씬 전에 도착했는데 비수기라 그런가 바로 체크인이 됐다(야호). 셀프 체크인이라 미리 받은 코드를 가지고 쓰면 되서 편리했다. 이전에 바젤에서 묵었던 숙소 보다는 확실히 방 크기도 작고, 건물도 낡았지만 주인이 리모델링을 해서 꾸미려고 노력한 흔적이 가득한 호텔이다. 바쁜 관광지니까 어쩔 수 없지.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바/커피숍 겸 프론트도 있고, 여기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무료쿠폰도 준다. 이 쿠폰을 꼭 쓰시길 권장한다. 커피가 정말 맛있다! 근데 나는 이걸 마지막 떠나는 날에 알았다 ㅠㅠ


일단 뭘 먹어야겠기에 근처 카페 아무데나 찾아다니다가 앉았다.

날씨가 이렇게나 좋다니 가슴이두근두근했다. 자그마한 광장, 야외석에 앉아 간단히 치즈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하나씩 시켜먹었다. 얼른 산에 올라가고 싶었다.


인터라켄 인포센터에 가서 융프라우 패스3일권을 구매했다 (VIP티켓과 다른 것.  2화 스위스기차패스, 무제한이라는 단어의 굴레 참고) 스위스 하프페어권을 보여주면 바로 적용해서 티켓을 뽑아준다. 여름에는 얼마나 바쁠지 모르겠는데, 우리가 갔을 땐 우리 뿐이었다.



융프라우 지역을 머무는 건 단 3박 4일. 하프페어로 티켓을 다 따로 사는 것 보다 융프라우 패스의 뽕을 뽑으려면 부지런히 돌아다녀야한다는 얘기다. 점심까지 먹었으니 벌써 오후가 되었다. 날씨까지 맑으니 이 기회를 놓칠 순 없다.


어디를 먼저 갈까 고민하다가 피르스트를 꼽았다 13년 전에 안 가본 곳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네이버에 융프라우지역 여행을 찾아보면 피르스트 얘기가 제일 많았더랬다. 액티비티를 탈 수 있어서 재미있다고. 외국에 오래 살고 나서야 느끼는 건데, 관광을 알차게 즐기겠다는 한국인 특유의 바지런함과 국내 각종 루지/짚라인/레일바이크로 단련된 극강의 체력까지 어우러져 피르스트의 액티비티는 그야말로 찰떡이었던 것이다ㅋㅋㅋㅋㅋ



한국사람이 많았다. 일단 커플 자유여행객이 참  많았고, 그 다음으로는 중장년 단체관광. 바젤에서 동양인 자체를 못 보다가 갑자기 여기저기서 한국어가 들려서 혼란스러워졌다ㅋㅋㅋㅋ 기차역이 굉장히 붐비던 것에 비해서는 다행히 기차에 자리가 넉넉했다.


4월의 스위스는 신비로웠다. 눈 덮힌 산맥과 초록초로한 잔디가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곳. 간간히 노랗게 핀 들꽃들이 색을 더했다. 나는 바깥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남편은 쿨쿨 졸았다. 이 멋진 경치를 두고 잔다고?


 인터라켄오스트->그린델발트->그린델발트-피르스트 케이블카역->피르스트 요로케 간다. 그린델발트기차역에서 케이블카역까지는 걸어서도 금방 가기는 하는데, 언덕길을 좀 올라가야한다. 버스가 있으니 그걸 이용하셔도 좋다. 융프라우패스와 비슷한 패스가 있다면 어쨌든 그린델발트의 버스값도 포함이니. 버스 운영 텀이 짧지 않다는 점이 아쉽긴 하다.


액티비티는 계절에 한해 운영이 정해져 있기도 하고, 설사 운영시즌이라도 날씨가 별로면 운영을 안 하기도 하니까 운에 달렸다. 공식웹사이트에 시즌 정보가 나와있기는 한데, 꼭 그대로 운영하지만은 않는다. 예를 들어, 우리가 갔던 4월 말에 홈페이지에는 트로티 바이크 (킥보트처럼 생김)가 5월인가 부터 운영한다고 써 있어서 크게 기대를 안 했었는데, 막상 갔더니 운영하고 있었다. 케이블카역에는 전광판에 어떤 액티비티가 운영중이고 대기줄이 얼마나 되는 지 정보를 게시해 놓으니 참고할 수 있다.


우리는 탈까 말까 고민하다가 일단 그냥 올라갔다. 피르스트까지는 중간에 역이 몇 개 있고, 그 중간에 내려서 하이킹을 하고싶거나 액티비티를 할 거라면 자유롭게 내리는 식. 일단 그냥 끝까지 올라갔다. 날씨 좋을 때 피르스트 꼭대기를 한 번 가 봐야 되니까. 케이블카는 금새 초록에서 새하얀 눈을 지나갔고, 우리는 벙해진 귀를 달래느라 침을 꿀떡꿀떡 삼켰다.


슈웅 - 빠르게 올라간다!



피르스트 도착!



경치가 어마어마하다. 캐나다 밴프에 갔을 때와 비슷한, 푸른 하늘, 깎아지는 산과 흩뿌려 수놓은 눈. 산 위를 휘감아 넘는 구름까지. 차가운 공기와 바람이 촤아- 하고 청량함을 더하는 절경.


스카이워킹? 을 걸어다녀볼 수도 있는데, 밑을 보면 후덜덜하다. 휴대폰 떨어뜨릴까봐 괜히 넘나 무서웠다.



여기는 중간 중간 가다서다 가다서다 했는데,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다고 멈춰선 탓이었다. 왜 안 가냐고 투덜거리다가 앞에 있던 커플과 얘기를 나눴는데, 지난 3일간 우중충하고 비오고 그랬다며 오늘 도착했다는 우리에게 럭키라고 했다.



포토스팟에는 길게 줄도 서있다. 나는 아무래도 인스타그램은 영 못할 체질인게, 정성들여 사진찍고 이럴 여력이 없다ㅋㅋㅋ. 굳이 저 스팟이어야 하는가, 주변이 전부 그림인데.


전망대에는 음식점도 있고 기념품샵도 있었다. 풍경이 너무 멋져 뭔가를 먹어야 할 것 같았다. 간단히 소시지와 감자튀김을 먹었다. 밖이 좀 춥긴 했는데, 뷰가 엄청나서 맛있게 먹었다. 방금 분명히 점심을 먹고 온 것 같은데..ㅋㅋㅋ 고도를 탓해보도록 하자. 이런 추운 곳에서 소세지라니. 육개장이나 순댓국 같은 걸 팔면 대박나지 않을까.


으음- 노란감자 아름다워


저 소님들은 넘나 귀엽지만 넘나 비싸다. 28프랑이던가 (3만원이 훨씬 넘는 돈!)

꿀팁을 방출하자면, 저 귀여운 우든피규어님들은 저기 아니어도 많이 판다. 나는 바젤에 있던 맘에 쏙 드는 장난감 점에서 똑같이 생긴 걸 15프랑에 데려왔다. 차이점이라면 융프라우 도장이 찍혀있느냐 아니냐인데, 나는 상관이 없었다. 내가 스위스에서 샀는데 굳이 여기저기 덕지덕지 써있지 않아도 좋은 기억이 많이 나는걸<3




한국인 커플은 대놓고 티가 났다. 커플룩(혹은 그에 준하는)옷을 멋들어지게 꾸며입고, 사진찍을 삼각대까지 야무지게 들고다녔다. 여기저기서 혼신을 다해 여자친구(혹은 아내)의 사진을 찍어주는 착한 남편들.

  "한국인 커플은 항상 무채색 계열을 맞춰입고 있어"

남편은 곧 언어를 듣지 않고도 한국인 커플을 한눈에 골라내는 지경에 이르렀고 나는 그저 깔깔 웃었다. 우리도 커플옷 입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으니 남편은 질색을 했다. 왜 나도 예쁜옷 입고싶은데 ㅠㅠ



다른 커플 사진도 많이 찍어줬다. 한국인 커플에게 "사진찍어드릴까요" 하고 물으면 그들은 흠칫 놀라며 "한국분이세요?" 했고, 나는 멋쩍게 "아 네네" 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러면 친절하게도 그들은 우리 사진도 찍어주었다. 외국인들 사진술은 믿을 수가 없으니, 나로서는 내 사진좀 예쁘게 찍기 위한 방술이었던 셈이다.





부.. 부럽다 사진 잘 찍는 한국인 남편들. 사진 못 찍는 내 남편을 탓하면서.. 신나게 놀다보니 버뜩 액티비티 생각이 났다. 아직 하겠지 싶어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갔고, 중간에 내려서 티켓을 사려고 줄을 섰다. 헬멧도 고르고, 안전 서류도 쓰고 있는데 티켓이 다 팔렸다고 이미 티켓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떠나라고 했다 (안돼 ㅠㅠㅠㅠ). 아까 정상에서 나에게 트로티바이크에 대해 물어보던 한국인 커플은 벌써 어디에선가 티켓을 사 가지고 왔는지 줄에 계속 서 있었다. 우리는 아까 대기시간이 전광판에 40분씩 뜨길래 안 샀더니.. 혹시 꼭 타고자 하시는 분들은 산 밑이나 정상에서 티켓을 미리 사두시길 권장한다.



그래서 시간이 애매하게 떠 버렸다. 그린델발트에 내려와 도착했을 땐 오후 4시 쯤. 해는 아직도 쨍쨍. 날씨가 언제 우중중하게 변할 지 모르는 융프라우에서는 이 기회를 최대한 이용해야한다. 우리는 고민에 빠졌다. 그냥 내려가서 짐을 풀고 쉴 것인가, 아니면 아이거글래쳐까지 가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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