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쩍거리긴 하는데 당최 뭘 해야 되는 지 모르겠다면
라스베가스에 처음 갔던 때는 8년 전 한국에서 미국까지 나를 방문해 준 회사동료 겸 친구들과의 여행이었다. 그랜드캐년도 갈 겸 호텔이 저렴하길래 묵었었는데, 화려하고 번쩍번쩍한 라스베가스 스트립을 구경하는 재미에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녔다. 카지노에서는 뭘 어떻게 해야되는지 몰라 각자 십 불인가 이십불인가를 슬롯머신에 넣고 돌리다가 한 번도 아무것도 당첨되지 못한 채 셋이서 그럼 그렇지 하고 깔깔거리며 나왔다.
그 때 뭔가 때문에 친구들 둘을 방에 두고 나 혼자 볼일을 보러 잠깐 나왔었는데, 다시 방으로 돌아가니 친구들이 거의 실신할 지경으로 웃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고 하니, 내가 없는 사이 방에 전화가 걸려와 친구 J가 받았더니 뭐라고 자꾸 묻는데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더란다. 자기가 자꾸 못 알아들으니 그 사람이 이내 체념하고 "두유 니드 어 네이키드 맨?" 이라고 했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J는 화들짝 놀라 "노!"를 외친 후 전화를 황급히 던지듯 끊었으며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친구 Y와 같이 배꼽이 빠져라 웃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여자 셋이 베가스에 묵으니 베첼러렛파티 (결혼 전 날 예비신부가 친구들과 노는 파티) 같은 것인줄 알았는 모양이다. "동행이 필요하세요?" 나 "젠틀맨 필요하세요?" 정도로 포장해서 물어보는데, 상대방이 못 알아들으니 직원이 아주 적나라한 단어로 바꿨나보다. 셋이서 얼마나 웃었는지 ㅋㅋㅋ
어찌됐든, 카지노와 복권은 많은 주에서 금지되어 있다. 캘리포니아는 복권은 가능하지만 카지노는 불법이고, 일부 네이티브 어메리칸 지원구역이나 특정한 곳에만 사업할 수 있도록 허가가 내려져 있다. 그래서 사우스레이크 타호(캘리포니아와 네바다주 경계에 위치)에서 캘리포니아 쪽에서 네바다 선만 넘어가면 호텔에 갑자기 카지노가 즐비한 것을 볼 수 있다.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한국사람들에게 카지노란 패가망신의 지름길로 여겨지는 것 같다. 맞는 말이긴 하다. 그래서 처음에 라스베가스에 갔을 때, 나는 카지노에 발을 들여 놓는 것 자체만으로 왠지 엄마 몰래 사탕이 들어있는 찬장을 열어버린 것 같은, 제티를 우유에 다섯 스푼이나 넣어 버린 것 같은 이상한 죄책감+두근거림을 느꼈다.
문제는, 그게 다 라는 것이다. 도대체 이 번쩍 번쩍한 각종 머신들 사이에서 뭘 어떻게 해야 되는 지 모르겠고, 세상에 저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저기 앉아서 돈이 얼마나 많길래 저렇게 주구장창 앉아서 갬블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저 게임은 뭐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시도해 보자니 도박을 시작하는 것 같아 무섭고 해서 빠른 걸음으로 재촉해서 나오게 된다.
그렇다면 라스베가스에서 번쩍거리는 조명 구경, 벨라지오에서 15분에 한 번씩 하는 분수쇼, 베네치아 처럼 해 놓은 호텔 정도 구경하고 나면 할 게 없어진다. 큰 관람차, 에펠타워, 롤러코스터 같은 어트랙션은 다 너무 비싸서 꺼려진다. 음식 물가도 엄청 비싸그냥 가볍게 들어가 앉을 만한 데도 없고. 뭔가 이게 다야? 이런 느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다가 최근에 부모님을 보시고 자이언 국립공원을 가는 김에 베가스를 한 번 더 갔다. 부모님은 번쩍번쩍 눈이 돌아가는 라스베가스를 보며 정말 재밌어 하셨고, 밥도 먹고 분수쇼도 보고 이것 저것 구경한 다음에는 이내 굉장히 피곤해 하셨다.
다음 날, 그래도 뭐라도 한 번 해봐야지, 하고 부모님과 슬롯머신을 재미삼아 했는데, 한 몇 불 잃고, 조금땄다가 다시 잃고 어쩌고 하다가 한 번 괜찮은? 게 당첨되서 잃은 돈 제외하고 한 14불 정도 이득이 났다! 온 가족이 이런 것에 처음 당첨이 되어 봐서 다들 신나했고, 나와 남편은 돈 땄으면 당장 떠야한다며 부모님을 급히 끌고 일어났다. 곧장 캐셔에서 현금으로 바꾸어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사먹으며(딴 돈보다 더 나왔다) 수다를 떨었다. 남편은 입꼬리가 씰룩씰룩 (14불 따고 난리치는 이 상황이 웃기지만 기분은 또 좋음) 하며 카지노는 이렇게 따고 튀지 않으면 다 잃는다고 했고, 나는 그저 재밌어서 엄청 신이 났고, 엄마는 그런 신이 나는 내가 웃겨서 재밌어 했고, 아빠는 한 10불씩은 넣어야 돈 같은 돈을 따지 (푼돈 따고 이러는 게 좀 민망하지만 본인도 재밌다는 뜻) 하며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14불 딴 이 얘기는 두고두고 얘기하며 웃고 있고, 고작 돈 1-2만원 안 쪽으로 우리는 엄청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고전 미드 프렌즈를 보면, 모두가 라스베가스에서 이런 저런 게임을 하며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미국에서도 라스베가스는 방탕한 도시라는 너저분한 명성을 가지고 있지만, 또 나름 사람들이 잃으면 잃는 대로, 따면 따는 대로 나름대로의 즐거운 시간을 지내는 보통 사람들이 재미를 위해 방문하는 곳인 것이다. 나는 궁금했다. 어디 카페에 앉아 와인 한 잔 시키고 앉아 시간을 보내고 싶어도 20불은 드는 마당에, 카지노도 그렇게 놀 수 있는 게 아닐까?
이 글은 이렇게 나와 같은 분들을 위한 글이다. 라스베가스에서 분수 구경도 하고, 번쩍번쩍한 대로 구경도 벌써 다 해서 뭘 어쩔 줄은 모르겠는데, 돈을 잃기는 무섭고. 사람들이 저렇게 많은데 다 도박중독자는 아닐텐데? 어떻게 하면 그냥 저렴하고 재미있게 라스베가스와 카지노를 즐길 수 있지? 하시는 분들.
혹시 기타 여러가지 카지노 게임을 할 줄 아시는 분에게는 웃기는 얘기일 수 있다. 뭐 아무것도 모르는 입장에서는 꿀팁이다 ㅋㅋ.
잠깐! 지나친 도박은 패가망신이다. 코인, 주식 등에서 어려움을 느끼신 분들은 꿈도 꾸지 마시라.
아무것도 모르는 베가스 알못 입장에서, 다음을 반드시 기억하셔야 한다.
카지노의 모든 게임은 soon or later (지금이 아니라면 곧) 당신이 반드시 돈을 잃도록 설계되어 있다.
카지노는 미쳤다고 당신에게 돈을 주지 않는다. 그대신 환상을 판다. 내가 운이 좋아서 저 잭팟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환상. 어떤 게임이든지, 머신이든지 상관이 없고, 통계와 확률로 이미 다 세팅되어 있는 룰로 인해서 당연히 무조건 언젠가는 당신이 돈을 잃도록 설계되어 있다.
카지노는 당신이 거기 앉아서 오~~~~~~~~~~~~~~~~~~~래 게임을 하길 원한다.
중간 중간 조금씩 따게 해 주면서 당신을 신이 나게 해주고, 혹은 잃었기 때문에 약올라서, 당신이 계속 앉아서 게임을 하면서 오래 머물게 하는 것이 카지노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오래 앉아 있을 수록, 당신은 넣은 돈을 다 탕진 할 것이고, 혹은 끝 없이 돈을 더 넣을 수도 있다. 바로 이것이 중독을 야기한다. 여기서 당할 분들이라면 이 글을 읽을 필요도 없다.
기본 룰은 이렇다.
1. 내가 마음이 편한 금액을 정한다 (나는 20불이상 올라가지 못했다)
2. 만약 넣은 돈 대비 어느 정도 돈을 땄다면 더는 뒤돌아 보지 않고 당장 일어나서 돈으로 바꾼다
3. 약간의 돈을 넣고 그 돈을 탕진하면 더이상 플레이 하지 않고 떠난다.
4. 잃는 확률이 그나마 적은 게임을 한다.
5. 오래 앉아 서비스를 이용한다.
이 정도가 나와 남편의 룰이었다. 이 룰을 지켜 놀았을 때, 우리는 재밌게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 결과적으로 돈을 한 푼도 잃지 않았다. 너무 막연해 보일 수 있으니 다음 글에서는 실제로 우리가 어떻게 놀았나 썰을 풀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