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물: 쫄보 가슴, 확률과 통계에 대한 믿음, 결단력
샌프란시스코에서 라스베가스는 비행기 한시간 반 거리로 가깝다. 샌프란시스코 공항과 오클랜드 공항 모두에서 취항하고 저가항공도 많다. 운이 좋다면 비행기를 인당 50불 이내, 괜찮은 호텔을 하룻밤 100불 이내에 구할 수 있다.
이전 글 - 라스베이거스, 돈 잃기 싫지만 카지노에서는 놀고 싶어 1 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이다.
나와 남편은 기왕이면 돈 잃지 말고 놀고 오자고 마음먹고 준비(?)를 했다.
다시 한 번 기본 룰을 상기시키자면 이렇다.
내가 마음이 편한 금액을 정한다 (나는 20불이상 올라가지 못했다)
만약 넣은 돈 대비 어느 정도 돈을 땄다면 더는 뒤돌아 보지 않고 당장 일어나서 돈으로 바꾼다
약간의 돈을 넣고 그 돈을 탕진하면 더이상 플레이 하지 않고 떠난다.
잃는 확률이 그나마 적은 게임을 한다.
오래 앉아 서비스를 이용한다.
1. 슬롯머신 - 번쩍번쩍 재밌지만 잃는다고 보면 된다
슬롯머신은 화려하다! 어디에나 수백가지 종류가 있고, 비딩금액을 내가 낮은 것으로 고를 수 있다는 점에서 진입장벽이 매우 낮다. 1센트 (10원)짜리 페니슬롯부터 하이비딩 금액으로 가면 10불-100불 짜리도 있다. 하지만 슬롯머신에서 당신이 돈을 딸 확률은 매우 적고, 앉아서 플레이 할 수록 돈을 더 잃도록 설계되어 있다. 보통은 한 번 누를 때 1불 미만~10불 정도여서 적은 액수 같이 들리지만, 1달러 슬롯으로 플레이 한다고 했을 때 한 30초면 10불을 잃을 수 있다. 가끔 운이 좋다면 1.5~3배 정도로 돈을 따게 되는 경우도 있다.
만약 돈을 땄다면, 더 플레이하지 말고 벌떡 일어나서 현금으로 교환해라. 계속 플레이하면 반드시 다 잃는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두 번 정도 돈을 땄다. 10불 정도 넣고 조금 잃고 조금 따고 하다가 24불 정도가 터졌길래 바로 나왔다. 이러면 엄청 재밌다. 별 것 아니어도 돈을 땄다는 재미, 카지노의 음모에 속아넘어가지 않았다는 재미. 하지만 그 이후에는 플레이하고 다 잃었다. 그래봐야 25센트 슬롯머신에서 2불, 2불, 4불 이렇게지만.
2. 블랙잭 - 확률과 통계에 대한 믿음
모든 게임은 운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그렇지 않은 게임도 있다. 뼛속까지 공돌이인 남편은 운이 아닌 게임플레이에 따라 이길 가능성도 있는, 그러니까 잃을 가능성이 그나마 적은 게임을 탐색했다. 이길확률에 개인의 스킬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임중에는 포커가 있으나, 포커는 숙달될 만큼 자신이 있지 않으므로 포기. 그 다음에 흔하게 사람들이 플레이 하는 쉬운 것을 찾은 게 블랙잭이었다.
블랙잭은 딜러와 플레이어가 카드를 2장씩 처음에 나누어 가지고, 각자 카드의 합이 21에 가깝게 되는 쪽이 이기는 간단한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21이 되지 않았다면 카드를 더 받을 지(Hit), 아니면 그대로 있을 지(Stand)를 정할 수 있고, 딜러는 17이 될 때 까지 무조건 카드를 계속 더 받는다. 21을 넘어가면 진다. 21이 딱 나오면 "블랙잭"이라고 해서 돈을 더 받는다. 어떻게 플레이하는 지는 유투브 같은 것을 찾아봐도 잔뜩 있으니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패와 딜러의 패가 있을 때, 어떤 대응을 해야 이길 확률이 높은지 확률과 통계를 통해 이미 누군가가 계산해 놓은 표가 있다는 것이다! 이 표는 뭐 암암리에 돌아다니는 어둠의 지식 같은 것이 아니고, 검색하면 바로 나오고 하다못해 카지노 자체의 블랙잭 기계 설명 버튼에도 나와있다.
표 대로 플레이한다고 해도 반드시 이기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길 확률이 높다는 것. 여기에 카드 카운팅까지 한다면 (이미 나온 카드를 통해서 향후에 나올 카드를 예측하는 것) 확률을 더 높일 수 있다. 실제로 MIT에서 한 팀이 확률과 통계를 이용한 카드카운팅으로 전문적인 플레이 스타트업(?)을 시행한 적이 있다. 이렇게까지는 너무 할 게 많아서 우리는 하지 않았고 그냥 앞서 말했던 표를 외우기 위해서 블랙잭 게임 앱으로 며칠 전부터 연습을 좀 했다. 연습하면서 우리는 왠지 웃기고 재밌었다.
실제로 라스베가스 스트립 카지노에 가면 블랙잭 테이블의 최저 비딩은 25불이다 (가끔 15불도 있지만 흔하지 않다). 사람들과 딜러와 플레이하는 것이고, 카지노 혹은 테이블마다 룰이 조금씩 다르다(보통은 카지노에 유리한 쪽으로). 우리는 사람들과 플레이할 용기가 나지 않았고 무엇보다 최저비딩 25불이 엄두가 나지 않는 쫄보였다ㅋㅋㅋ 사람이랑 플레이하면 아무래도 딴 다음에 바로 튀기도 좀 눈치보이고, 따면 딜러도 팁좀 줘야하고 여러모로 귀찮았기 때문에 막상 플레이할 엄두를 못 냈는데, 블랙잭 게임기가 있더라. 몸매 좋은 버추얼 딜러 언니가 놀아주고, 최저 비딩도 5불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언니랑 놀았다.
승률은 어땠냐고? 주로 20불 정도 넣고 한 35불에서 40불 정도까지 따면 바로 프린트에서 현금으로 바꿨다. 한 두 세 번? 쯤 그랬던 것 같다. 그걸로 여기저기 여러 슬롯머신도 해보고 놀다가 잃으면 또 블랙잭 하러 가고 그랬다.
3. 오래 앉혀두려는 카지노의 전술 이용- 프리 드링크!
앞서 카지노에서는 당신을 오래오래 앉혀두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래야 돈을 더 잃으니까. 어떻게하면 사람이 더 감정적으로, 사리판단이 흐려져서 계속 돈을 잃게 할 수 있을까?
바로 술이다! 때문에 카지노에서 게임을 하면 술이 무료다. 물론 냅다 가서 술을 무료로 달라그러고 막 마실 수는 없다. 여러가지 방법이 있는데,
- 일단 바 테이블에 있는 카지노 기계로 놀면서 바텐더에게 물어보면, 얼마정도 비딩하고 몇 판 정도 할 거면 무료로 주겠다고 알려준다.
- 하이비딩(최저 비딩 금액이 높은 구역)에서는 얼마든지고 열심히 술을 가져다 준다.
- 가장 흔하기로는, 딜러테이블이든지 슬롯머신이든지 아무거나 계속 플레이 하고 있으면 서빙하는 분들이 지나다니는데, 그 분에게 주문하면 된다. 물론 다만 얼마라도 팁을 주어야 하는데, 자기 쪽으로 계속 더 술 주문 받으러 오게 하고 싶으면 팁을 두둑하게 주면 된다는 속설도 있다.
우리도 프리드링크를 받았다. 그것도 두 번이나! 한 번은 무려 페니슬롯(10원짜리)에 1불을 넣고 놀고 있는데, 앞에 있는 두 아주머니가 기세등등하게 지나가는 서버를 불러 술을 주문했다. 서버가 앞에 앉아있는 우리에게도 뭐 마시겠냐고 물어봐서 우리도 얼떨결에 주문했다. 양심상 페니슬롯 가지고 놀면서 술 주문은 안하려고 했는데, 뭐 물어보는데 안 마실 수 있나?ㅋㅋㅋ
천원 내고 게임하다가 몇천원 팁 주고 술 마시면서 한참을 신나게 논 셈. 술이 한 잔에 10-18불씩은 할 텐데, 이런 이득이 있나? 신이 나서 에이 기분이다, 1불 더 넣고 플레이했다 (그래봐야 총 2불..ㅋㅋㅋㅋ) 다른 한 번은 저 위에 사진처럼 블랙잭을 하고 놀다가 맥주를 주문해서 마셨다. 저 때는 20불인가 따고 술도 받아서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물론 단점도 있다. 일단 술을 받기 위해서는 오래 앉아서 계속 플레이해야한다. 하다못해 우리는 돈을 따고 일어서려고 하는데 주문을 받으러 와서 다시 앉아 더 플레이하기도 했다. 이러다가 돈을 더 잃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한다. 돈을 따고 일어설까 하다가 술 서버 눈에 띄이려고 계속 플레이하다 결국은 다 잃은 적도 있다.
무료 술은 사람이 적은 날이 유리하다. 아무래도 사람이 많으면 돈을 많이 거는 테이블이나 구역, 혹은 정말 주구장창 않아서 몇 시간동안 플레이하는 사람 위주로 서버가 계속 가 버리지, 조금 플레이하고 눈치보는 나같은 쫄보에게는 순서가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4. 카지노 멤버십 리워드 카드
라스베가스 메인스트립에는 크게 Ceasars 계열 호텔과 MGM 계열 호텔이 큰 주를 이루고 있다. 예를들어, 시저스 호텔, 플라멩고 호텔, 파리스호텔은 전부 시저스 계열이고 벨라지오, 아리아, Park MGM은 전부 MGM 계열로 묶여있다. 어느쪽이든 가입해서 Reward카드를 받는 것은 무료인데, 호텔에 숙박할 때나 카지노에서 게임을 할 때 일정 금액에 대한 리워드 포인트와 각종 혜택을 제공한다. 물론 가장 낮은 티어에서 다음 티어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몇 백, 몇 천 만원 어치를 비딩하며 플레이 해야 하므로 나는 여기에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즉석으로 가장 좋은 것은 무료 드링크쿠폰이나 무료 카지노 크레딧을 바로 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료 드링크쿠폰을 받아서 남편이 비싼 스카치를 마셨다.
우리는 도박이 무섭고 쫄보이다. 어차피 어떤 공연을 봐도 최소 인당 50불이니, 한 100불 정도는 잃는다고 생각하고 놀다오자고 140불을 뽑아서 가지고 갔었다. 술도 마시고, 팁도 내고, 슬롯머신도 하고, 블랙잭도 하고 잘 놀고 결과적으로 그 돈 고대로 들고 돌아왔다ㅋㅋㅋㅋ 물론 이건 카지노에서 쓴 돈 자체만이고, 나가서 밥 먹고 다른데 구경하고 이런 돈은 포함되지 않았다.
방문하실 분이라면 몇가지 팁이 있다.
* 라스베가스 호텔은 저렴하지만 어메니티나 이런 면에서는 매우 쓸모없다. 저렴한 방들은 방 컨디션도 그냥저냥 뭐 그렇다. 저렴한 방을 예약했다면 룸에 미니바가 있다면 굉장히 비싸고, 한국처럼 무료 물이나 간식, 슬리퍼 등은 기대 안 하는 것이 좋다.
* 카지노는 대부분 스모킹존이다 (사람들이 계속 앉아서 게임하게하려고). 들어가면 그, 오래 전 피씨방에 처음 가봤을 때 같은 텁텁한 공기와 냄새가 얼굴을 감싼다. 한참 다니면 목이 매케하고 눈이 따가웠고, 맞은 편에 앉은 사람이 담배를 피워대서 직빵으로 연기를 얼굴에 맞기도 했다. 담배연기에 민감하신 분이면 금연카지노를 택하시는 것이 좋겠다. ParkMGM 카지노는 금연이라 담배냄새가 지긋지긋하면 거기로 갔다 (자기네가 스트립에서 유일한 금연카지노라고 광고했었는데 아직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
* 생각보다 많이 걸어야한다. 지도로 볼 땐 다 거기가 거기고 가까워보인다. 그런데 길을 건너려 육교를 오르락 내리락, 신호등을 찾아가고 이 건물 저 건물을 연결해서 가다보면 생각보다 훨씬 많이 걷게된다. 카지노 안에서는 길을 잃기 십상인데, 일부러 그렇게 해 놓은 것이다. 카지노는 당신이 길을 잘 알아 잘 빠져나가게 할 마음이 없다. 첫 날은 2만 천 보를, 둘째 날은 만 육천보를 걸었다.
*ParkMGM부터 벨라지오호텔까지는 무료 모노레일로 연결되어 있다(2023년 7월 현재). 그 반대편에 있는 긴 루트의 모노레일은 시저스계열의 호텔을 연결하고 라스베가스 다운타운까지 연결된다. 이건 유료다.
*개인적으로 어린 아이가 있다면 베가스 메인 스트립 여행은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담배+대마초 연기가 너무 아무데나 다 있고, 에스코트 명함을 길바닥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사람이 너!무! 많다.
겜블링은 그 컨셉 자체와 부모가 이를 플레이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도록 하는 것 모두가 발달적으로적합하지 않다. 비행기에서 앞자리에 탄 가족에 4-5살 정도 된 아이가 있었는데, 무슨 베가스 스타일 아이패드 게임을 줬나 아이가 계속 "I won! I won big! (내가 크게 땄어!!)" 이런 얘기를 하는데 대체 라스베가스에서 뭘 본걸까 싶었다. 라스베가스는 자극과 중독을 판다. 어린이는 뇌가 아직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극에 대한 중독에 취약하다. 중독성이 있는 상품에 나이제한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아이가 있다면 다운타운쪽이 더 나을 것 같다. 어린이 뮤지엄등 아이들과 갈 곳이 좀 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