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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Sep 13. 2023

미국에서 고양이가 아프면 어떻게 해요?

어쩌다 보니 아프면 어떻게 해요 시리즈가 되어 버림

3년 전 쯤, 후추가 모래화장실을 너무 자꾸 들락날락 거리기에 급히 동물병원을 검색해서 가 본 적이 있다. 급히 환묘를 받는 곳, 그러면서도 일반진료비가 너무 비싸지 않은 곳을 찾다가, 도시 외곽에 허름한 동물병원에 갔었다. 굉장히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뭔가 다 허술했다. UTI일 수 있다고 소변검사를 한다더니, 후추가 무서워서 테이블에 쉬 한 것을 가지고 검사를 해서 검체가 오염되었을 수 있다며 UTI같긴 한데 결과는 확실치 않다고 했다. 어쨌든 항생제, 진통제를 처방받고, UTI용 처방 사료와 습식 캔도 받아왔다. 동물병원 직원인데 후추를 캐리어에서 꺼내지도 못했고, 구매한 습식 캔은 빼 놓고 주질 않아서 영수증 보고 다시 얘기하니 어머 빼먹었네~ 하며 가서 꺼내왔다. 급히 찾은 것 치고 진료비용이 조금 저렴했(?)던 기억은 있지만 그 이후로 거기는 다시는 안 갔다.






우리야옹이들은 인터넷에 흔히 보이는 살가운 애들이 아니다. 지금이야 우리도 야옹이들도 서로의 언어적/비언어적 큐를 잘 이해하기 때문에 서로 잘 지낸다. 자기들 기분이 좋을 때는 무릎에 앉게 내놓으라고 야옹거린다든가, 와서 막 친한 척 하고 골골거리고 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얘들은 성묘가 된 다음에 셸터에서 데려왔는데, 애기 때 사람 손을 안 타서 그런지 겁이 아주 많다. 집에 온 첫 주에는 소파를 파헤쳐서 그 속으로 들어가 숨었으며, 처음 얘들과 이사 갔을 때에는 둘 중 한 마리가 1주일 동안 음식을 거부했었고 4년이 지난 지금도 발톱 한 번 깎으려면 인간은 피를 보는 경우가 많다. 후추가 8층에서 떨어져 실종 되었을 때에는 나는 거의 못 찾는 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므로 고양이가 아프면 일이 좀 커진다. 일단 캐리어에 넣는 것부터 동물병원이라는 새로운 곳에 가는 것, 가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진찰 받는 것, 갔다와서 약 먹는 것 모두가 스트레스 최고치이고, 이 스트레스 자체가 민감한 고양이의 경우에는 병을 더 키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후추의 비뇨기 증상 문제는 계속되었다. 처방받은 사료를 먹을 때에는 좀 괜찮아지는 것 같았는데, 사료가 떨어진 이후에는 계속 증상이 돌아왔다가 없어졌다가를 반복했다. 처방사료는 수의사의 처방이 필요하기 때문에 살 수가 없어 비슷한 성분의 값비싼 비처방 사료를 사다가 먹여왔다. 안 좋을 때는 화장실을 한 30분 여 동안 열 번은 왔다갔다 하다가, 또 괜찮다가 했다. 가끔은 핑크색 소변이 보이기도 했다. 혼란스러운 것은, 그 외에는 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고 멍청귀염한 평소 그대로였다는 점이다. 어디 만져도 아픈 것 같지도 않고, 먹성도 엄청나게 좋고. 검색해 보니 고양이의 소변 관련 문제는 이유가 없이 나타났다 없어졌다가 한다는 경우가 많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문제는 우리가 며칠 내에 여행이 예정되어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매일 있으면서 관찰할 수 있으면 상관이 없는데, 우리가 없는 동안 감사하게도 이웃이 와서 봐 주기로 했으나 혹시나 그 때 증상이 악화된다거나 하면 일이 더 복잡해지는게 문제였다.


주말인데, 증상이 더 안좋아졌고, 어찌저찌 관련 문제로 논쟁하다가 갑자기 남편은 패닉했다. 주말에 응급치료를 받는 동물병원도 많지 않거니와, 있더라도 그냥 수의사를 보는 기본 비용만 500불-1000불이 깨질 것이 분명했다. 여기는 그냥 가서 냅다 진료를 받을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고, 일반진료는 1주일-한 달 전에는 예약해야 하며, 새 환동물을 받지 않는 동물병원도 많다. 워낙에 이러니 남편이 패닉하는 것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남편은 빨리 응급실을 가자고 했다. 나는 남편을 천천히 설득했다.


"쟤가 지금 화장실을 자주 가는 것 외에는 아주 멀쩡하지 않은가. 저 예민한 녀석이 어디가 아프면 저렇게 생강이 밥까지 다 뺏어먹으면서 똥꼬발랄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일반 환묘를 받는 병원을 찾아서 일반 급진료를 받을 수 있는 지 찾아보고, 거기서 약이라도 받을 수 있으면 좀 먹인 다음에 여행 돌아와서 더 상세한 게 있으면 진료받으면 되지 않냐, 알아보지도 않고 어떻게 응급실밖에 방법이 없다고 난리를 치냐, 기본 비용만 몇백불이 넘고 검사비용까지 합하면 엄청날텐데!"


라는 내용이었는데, 말이 천천히 설득이지, 사실 나도 답답해서 소리를 꽥 질렀다.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는가 어찌저찌 설득이 됐고, 남편은 주변 동물병원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최근 이 주변에 멤버십방식의 동물병원이 많이 등장했는데, 그 중에 한 곳이 꽤 괜찮은 듯 했다. 우리가 선택한 것은 Modern Animal이라는 체인. 우리 집 근처에 지점이 여러 개 있다. 1년 구독료는 199불, 구독을 하면 일반진료비(수의사를 만나는 행위 자체. 보통 50-300불)가 무료에 모든 진료비 10% 할인, 무엇보다 24시간 앱을 통한 간단한 상담이 가능했다. 여러 사람들의 후기를 보니 구독멤버십으로 상담 후 급하다고 생각되면 하루 이틀 사이에 예약을 잡아준다고 했다. 아잇, 구독료 200불 일반진료비라고 치고 그럼 이게 괜찮겠다 하고 구매했다. (구독 없이 진료도 가능하다. 일반진료비 80불. 다른 혜택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급히 예약이 필요했는데 이 경우는 앱상담->예약 루트가 없기 때문에 연 구독을 선택했다)


앱은 깔끔했고, 상담도 빨랐다. 증상을 대충 설명하자, 잠시만 기다려보라고 하더니 이틀 후 아침으로 급예약을 잡아주었다. 아아, 이렇게 빨리 예약을 잡아주다니. 마음이 꽤 놓였다.


예약 날 아침이 되었고, 아침을 먹인 다음 후추를 캐리어에 넣었다. 사실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게, 후추는 긴장을 하면 화장실을 가야하기 때문에 잡으려고 하면 화장실에 들어가기를 3번 정도 반복했다. 담요로 말아올려 캐리어에 넣고 병원에 도착했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으잉? 내부가 엄청 크고, 깔끔하고, 모던하고 엄청 좋은 것이었다. 그냥 작은 동네의원 같은 곳을 예상했는데, 내부에 진료실/처치실도 엄청 많고 커다랬다. 아니 심지어 음료수도 권했다. (저 핑크색 고양이 그림액자는 갖고싶다)


아주 마음에 들었던 것은, 벳 테크니션 (동물 간호사 라고 보면 될까)이 노트북을 들고 나와 한 명씩 개별적으로 상담했다. 아주 친절하고 상세하게, 각종 정보를 입력하고, 예상 가능한 최대치의 진료/검사 내역과 비용을 리스트로 뽑아 보여주었다. 이번에 급 진료 (급-Urgent. Emergency보다는 덜 급하고 general/ routine 보다는 급한 개념. 사람 진료할 때도 비슷하게 용어가 쓰인다) 였기 때문에 후추를 두고 가면, 의사가 진료 후 앱을 통해 가능한 진료내역과 비용을 우리에게 승인 받고 그 다음에 추가 검사를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승인 받지 않은 검사는 하지 않으며, 혹시나 응급상황에 위독하면 응급처치를 해도 된다는 동의서까지 받아갔다.




집에 온 후 시간이 좀 지난 후에 수의사가 진료를 시작했고, 그에 따라 진료검사 내역 및 비용 승인서가 앱으로 도착했다. 피검사+소변검사와 엑스레이를 찍기로 했다. 물론 싸지는 않았다. 피검사+소변검사가 500불 가량, 엑스레이+엑스레이 전문수의사 진료가 또 500불 가량.. 뭐, 어쩌랴. 몇 년 째 계속 이 증상을 겪으며 불편한 것은 후추였는데, 이 검사 없이는 약도 받기가 힘들었다. 이 참에 해야 할 검사라도 다 한 다음에 괜찮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야 다음부터는 더 검사하란 말 안하고 약이나 처방사료를 받을 수 있을 테니, 눈물을 머금고 하기로 했다.




앱 챗을 통해 계속 업데이트를 해 줘서 아주 마음이 놓였다. 얼마 후에는 수의사가 직접 전화를 해서 진료 내역과 진행상황을 알려주었다.


신체 진료상으로는 아주 조금 비만인 것과 (ㅋㅋㅋ) 이에 타르가 좀 낀 것 외에는 건강하고, 피도 뽑았단다. 문제는 후추 방광이 아주 작고 겁이 나면 자꾸 소변을 봐서 방광이 텅 비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주사기로 소변 추출이 불가능했단다. 후추가 엑스레이를 1장 찍게 해주었는데 그 이후에는 '야옹이 인내심 시간'이 다 소진되서 이제 안하겠다며 협조를 안 해서, 엑스레이는 못 했다고 했다 (고양이 묘칭시점으로 얘기해 주는게 웃겼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일단 안정제와 항생제만 처방 받고 먹고, 다음에 올 때 안정제 먹고 와서 소변검사와 엑스레이만 찍자고 했다.


글 초반에 이야기했던 동물병원 기억하는가? 거기서는 에잇 몰라 그냥 테이블에 쉬 한거 쓰자 하고 그걸로 검사 보내버렸는데, 여기서는 그러면 검체가 오염된다고 정직하게 이야기 한 후 나중에 하자고 하는 책임감과 전문성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비용내역에서도 엑스레이+엑스레이 의사비용이 빠졌다. 그런데 소변검사는 아직도 내역에 남아있어서 물어보니, 비뇨기과 검사 패키지에 소변검사+혈액검사가 포함이라 같이 부과가 되었단다. 각자 따로 내면 300불씩 총 600불이라 패키지가 100불 가량 저렴하니 다음에 와서 검사 할 때 그럼 채취비용만 받고 제하겠다고 해서 그러기로 했다. 근데 지금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다음에 채취비용이 60몇불이라고 했는데, 그럼 결국엔 거의 비슷한 비용아닌가.. 아니면 다음에 미리 낸 건 안 쳐준다고 안해주고 다시 돈 받으면 그만 아닌가.. 문서를 받아둘 걸.. (미국 와서 컨펌 문서 없으면 사람을 못 믿는 병이 생깃나..)


어찌됐든간에,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친절하게 잘 상담해 주었다. 약은 형광 핑크색 풍선껌 맛(...) 이어서 음식과 섞어서 주면 음식도 안 먹을 수 있다고 그냥 입에다 주사기로 쏘라고 얘기해 줬다. 자기도 고양이가 있는데 고양이는 이거 먹기 너무 싫은데 뱉어내는 걸 못해서 거품을 물더라고, 그러더라도 놀라지 말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 약을 바로 먹여보기로 했다. 요즘 식탐이 하늘을 찌르는 후추는 좋아하는 습식 사료 한 스푼이랑 섞어서 주었더니 다행히 잘 먹었다. 그래서 이웃이 와서 봐 주실 때도 훨씬 편하게 됐다. 그 분한테 후추 붙잡에서 입에다 주사기로 약 먹여달라고 하는 건 불가능하므로..


후추는 약+습식얌얌이를 먹고나서 그루밍(아마도 으, 병원냄새! 시러!) 을 열심히 한 후, 다리에 피뽑고 감아놓은 붕대? 때문에 뒤뚱거리며 어정찌게 걸어다니다가 입으로 뜯어내려고 기를 썼다. 남편이 동물병원 앱으로 이거 뜯어도 되냐고 물어보고 된다고 답이 오자 잘 떼어 주었다. 이 앱 최고라고 남편이 좋아했다.


하루가 지나고 앱으로 피검사 결과도 편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피검사 결과지 원본과 의사의 진단도 함께 써 있었다. 모든 것이 정상. 느낌에 총 100만원 넘게 들여서 나머지 검사까지 다 마치더라도 딱히 후추의 비뇨기 증상 이유를 찾지 못할 것 같다. 모든 증상에 명확한 이유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 후추가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일단 후추가 건강하다는 것이 다행인 거고, 이후에 증상을 다스릴 수 있는 약이나 잘 받을 수 있으면 좋지 않은가. 미국에서 인간 건강보험 때문에 걱정이고 어쩌고 하는 것 보다, 동물 병원비용이 훨씬 무섭다. 돈이 문제야 생명이 문제야! 하면 할 말은 없고 나는 후추를 사랑하지만, 비용이 무서운 건 무서운 거다! 남들은 동물 어떻게 키우나 모르겠다. 어휴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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