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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Sep 02. 2023

37도 폭염에 디즈니랜드를 가면

샌프란시스코에 살면 온도에 나약하게 된다.

재수가 없는 것인지, 특별한 것인지 우리가 디즈니랜드를 가는 고 딱 3일만 폭염이 왔다. 보통은 20도 후반-30대 초반 온도였던 것 같은데, 우리 갈 때만 37도를 웃돌 것이라는 예보를 보고 출발했다.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은 더위와 추위에 약하다. 일년 내내 15도-22도의 봄가을 날씨에 살기 때문에 대부분의 건물에는 에어컨도 없다. 생각해 보니 우리집에도 선풍기겸 공기청청기 밖에 없고, 이번 여름에도 한 번도 선풍기를 틀지 않고 보냈다. 이런 나약한 차에 37도라니. 그것도 땡볕에 하루 종일 돌아다녀야 하는 놀이공원이라니.



나름 만반의 준비를 했다. 가진 옷 중 가장 얇은 상 하의, 모자, 선스크린, 선글라스를 챙겼다. 분명히 20대 때에는 아무리 춥든 덥든 풀 화장에 예쁜 옷을 입고 다녔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런 것 없다. 바지도 룰루레몬의 기능성 반바지나 마 소재 반바지, 세상편안한 운동화. 화장도 어차피 녹아내릴 건데, 마스카라고 아이라인이고 필요가 없고, 선크림과 파운데이션 약간이면 족했다.


오후에 도착한 공원 입구는 한산했다. 그리고 더웠다. 한 끼도 못 먹고 놀 준비를 위해 가자마자 허겁지겁 치즈버거로 배를 채운 우리는 본격적으로 놀이기구를 타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 넓은 공원에, 하필 그때 그 때 줄이 짧은 놀이기구는 공원의 반대편에 있거나 먼 거리였다. 태양을 받아 아스팔트 바닥이 타올랐다. 새로 만든 스타워즈 섹션은 공원 안쪽에 위치해서 더 멀었다. 아주 잘 만들어 놓았고, 약간의 중동 느낌의 데코가 있는 것이 마침 이 날의 날씨와 잘 어울렸다. 딱히 스타워즈 팬이 아니라 감동적이고 이런 건 없었다. 놀이기구는 약간 멀미가 났다.



톰 소여의 모험이라고 보트를 타고 작은 섬으로 들어가는 어트랙션이 있는데 그걸 왜 하자고 했는지 모르겠으나 땡볕에 물 위에서 나룻배 나부랭이를 타고있자니 피부가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물이 꿀떡꿀떡 계속 들어갔다. 왜 이 더운데아이스크림 파는 곳이 눈에 안 띄는지, 어느 하와이 테마 구석에서 파인애플맛 소프트아이스크림을 발견했다. 하와이 돌 플랜테이션에서 먹었던 그 아이스크림 같았다. 근데 또 하필 온라인 주문만 받고, 주문을 결제하면 15분 후에 오세용~ 하는 시스템이었다. 이런 씨, 시키는 대로 결제를 넣고 놀아다니다가 와서 아이스크림을 받았다. 새콤 달콤,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은 정말 황홀해서 금방 입속으로 삭제되었다.


웃긴건 그러고 나서 한 시간 만에 아이스크림이 또 먹고 싶었다. 이번에 겨우 보이는 것은 미키모양 쿠키 샌드위치 아이스크림이었는데 결제 할 때 직원이 '아 많이 얼어서 좀 기다렸다 먹어~' 했다. 아니 아이스크림(Ice Cream)이 그럼 얼어(Iced)야지 뭔소리야 했더니 정말이었다. 너무 얼어서 이도 안 들어갔다. 아이스크림 부분은 안 녹고 겉에 쿠키 부분만 빨리 녹아서 뭔가 너저분해졌지만 어떻게든 쪼개먹었다. 더위는 이도 강하게 했다.



음식이고 뭐고 제일 좋은건 달콤하고 차가운 음료. 평소에는 마시지도 않는 콜라를, 남편이 구매하고 싶어하면 못 이기는 척 제로슈가로 하자고 받아들었다. 목젖을 탁 치는 차가움과 달콤함. 저녁 여덟시가 넘었는데도 에라 모르겠다 하고 피쉬엔 칩스를 먹었다. 또 제로콜라와 함께. 16:8 단식이고 나발이고 이 더위에 단식타령했다간 쓰러지지 싶었다. 그러고 나서 공원이 문닫는 12시까지 계속 돌아다녔다.


제일 마지막, 11시 50분에 탄 놀이기구는 낮에도 한 번 탔었던 "캐리비안의 해적" 였다. 캄캄한 실내에 보트를 타고 떠다니면서 해적 전시를 보는 어트랙션이었는데, 폐장 10분 전엔 우리가 탄 보트를 포함해 앞과 뒷 보트에도 아무도 없었다. 낮에 탔을 때는 캬 이거 시원하고 완전최고다 했는데 이번에는 전혀 다른 느낌. 물 흐르는 소리와 차가운 공기, 인공 인간 전시가 만나 삽시간에 으스스해졌다. 살아있는 인간이 시야에 보이질 않으니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으스스한 놀이공원 느낌을 좋아하신다면 폐장 10분 전에 타 보시길 추천한다. 게다가 라이드가 15분이 넘어서, 결론적으론 놀이공원이 문 닫은 12시가 넘어서까지 논 셈이었다. 마치 중학생 때 노래방을 가면 끝나기 1분 전 10분짜리 가요메들리로 마무리하던 느낌?


이미 열두시가 넘었고, 2만보는 한참 전에 넘었다. 호텔로 돌아가는 15분 거리가 천근 만근 같았는데, 물이 더 필요할 것 같아 가는 길에 CVS(편의점+약국)를 들렀다. 하필 이 CVS는 방금 문을 닫았다고 직원이 문을 막았다. 바로 길 건너편에 Walgreen(비슷한 가게인데 다른 체인)이 있었는데 이미 지쳐서 미역처럼 흐물거리는 우리에겐 고작 그 횡단보도 너무 멀었다. 물을 사다가 벌컥벌컥 들이켰다. 나중에 깨달았는데 하루 종일 물과 콜라, 아이스크림을 마셨는데도 불구하고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종일 화장실을 안 갔더라.




새벽 1시가 넘어서 잠이 든 우리는 7시 15분에 일어나 허겁지겁 준비했다. 발이 너무 아팠는데 뭐 아플 새도 없었다. 캘리포니아어드벤쳐가 8시에 열기 때문이다. 세상에 아침인데도 벌써부터 더웠다. 우리는 급히 공원에 도착해서 조금 한산할 때 놀이기구를 열심히 탔다.


첫 끼 아침으로 길라델리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빈속에 아이스크림을 들이킨 남편은 속이 안좋아 뭘 먹어야 겠다고 해서 문 연 식당을 찾았으나 또 햄버거였다. 어제 먹었는데 또 햄버거 먹기는 싫어서 우리는 급히 공원 내 스타벅스로 들어가 음료와 함께 작은 아침용 샌드위치를 먹었다. 회사 다닐 때 아침으로 자주 사먹던 스타벅스 구다베이컨에스 샌드위치. 음, 여전히 맛있었다.


12시 반쯤까지 놀이기구를 많이 탔다.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우리는 너무 더워서 호텔로 후퇴하기로 결정했다. 걸어갈 기운도 없어 우버를 타고 돌아갔다. 우버 기사가 방금전까지 바깥 온도가 100도(섭씨 37.77도) 찍으려고 했다며 웃었다. 나는 호텔 수영장에 들어갈 까 하다가 그럴 힘이 어딨나 싶어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남편은 금새 잠이들었다. 한 4시까지 침대에서 쉬었다.


또 어찌어찌 준비를 하고 공원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걸어갔는데 밖은 아직도 37도였고, 저녁 6시나 되야 그래도 온도가 조금 떨어진다고 했다. 일단 뭘 먹어야하니 도착하자마자 이탈리안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알리오올리오 파스타를 시켰는데 웬걸, 마늘과 오일은 거의 없고 브로콜리와 루꼴라가 섞인 파스타였다. 어제부터 패스트푸드만 먹은 나는 채소가 마음에 들긴 했지만, 맛은 그냥 그랬다.


그래서 나와서 돌아다니다가 한 2시간 후에 거대한 칠면조 다리를 하나 사서 남편과 나눠먹었다. 몽둥이 크기같이 커다래서 고인돌 만화에 나오는 것 같다. 여기 올 때마다 꼭 먹는 나의 별식.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 그냥 먹었다. 돌아다녀야 하니까, 아까 식사에 단백질이 없었으니까 핑계를 대면서. 칠면조 다리는 닭다리보다 힘줄? 잔뼈?가 많아 잘 발라 먹어야한다. 재밌는 건 남편은 디즈니랜드를 어렸을 때 부터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날 만나기 전에는 이런 걸 여기서 파는 줄도 몰랐단다.



저녁이 되니 온도가 좀 떨어져서 살만 했다. 밤에 보는 디즈니는 또 느낌이 달라서 카스랜드 레이싱도 한 번 더 타고, 픽사피어에 롤러코스터도 한 번 더 탔다. 해 지는 하늘과 조명이 어울리는 공원이 아련하고 아름다웠다.


가게마다 귀여운 건 많았는데 막상 살 만한 건 또 없었다. 유일한 기념품으로 세일 중인 벙거지 모자도 하나 샀다. 양면으로 뒤집어 쓸 수 있는 토이스토리 캐릭터가 조금 그려진 모자. 쓰고 다니던 플루토 모자를 벗고 이걸 썼다. 플루토 모자를 쓰고 플루토 캐릭터를 만나면 막 반가워 해주는데, 아쉽게도 이번에는 못 만났다.



캘리포니아 어드벤처의 피날레인 분수+조명+영상 쇼를 보고 천천히 걸어나와 중앙 매표지역으로 갈 때쯤 반대편 메인 공원에서 하는 불꽃놀이가 시작했다. 집에 가기 아쉬운 사람들은 바닥에 앉아서 불꽃놀이를 보고 있었는데, 우리도 거기 앉았다. 한낮 동안 달아오른 바닥이 후끈후끈 했다. 엉덩이가 따끈따끈 해지는 바닥에 앉아 바라보는 불꽃놀이는 꽤 낭만적이었다. 이러라고 일부러 쇼 시간을 배치해 놓은 건가 싶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뭔가 아쉬워서, 아이스크림을 사러 CVS에 들어갔다. 마땅한 아이스크림이 없어 반대편 Walgreen에 다시 갔다가, 결국은 커다란 맥주 한 캔과 함께 먹을 퍼프 치토스를 골랐다. 생전 내 돈 주고 안 사먹는 퍼프 치토스. 호텔 방에 앉아 치토스를 까먹으며 두런두런 맥주를 마셨다. 밤 열 시 넘어서 먹는, 보기만 해도 몸에 해로울 것 같은 형광 주황색의 과자맥주. 그건 명백한 일탈이었다.








이틀동안 우리는 총 5만 보를 넘게 걸었다. 그것도 37도의 폭염속에서. 놀이공원에서 계속 드는 생각은 아, 더워서 짜증난다 뭐 이런 게 아니라 신기하게도 거기서 일하는, 혹은 방문한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었다.


간간히 보이는 캐릭터들은, 캐릭터 특유의 긴 옷 복장, 털 옷, 인형옷, 가발까지 그 더위에 말도 안되는 것들을 입고 있었다. 저 사람들 저래도 괜찮을까 걱정이 되었다. 실제 캐릭터와 제스쳐, 말투, 목소리 까지 비슷하게 해야하는 터라 뭐 찡그릴 수도 없고, 덥다고 헉헉거릴 수도 없을 텐데.


반면에 10대 후반-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많은 여성 방문객들은 완벽한 헤어와 메이크업을 하고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저게 어떻게 가능한가 경외심이 들었다. 땀구멍이 없나? 저 무거운 속눈썹 붙이는 풀은 녹아내리지 않는 것인가?


하던 일이 아이들 관련이어서 그런가, 아이들과 고생하는 가족도 많이 보였다. 더위에 지쳐 울고 떼 쓰는 아이들. 아이들 너댓을 데리고 다니는 가족들. 안전벨트를 안 메겠다고 무조건 "노!"를 외치다가 직원이 내리도록 하자 왜 나가나며 우는 아이를 데리고 내리는 부모. 겨우 2달이나 됐을까 한 갓난아기를 데리고 다니며 분유를 먹이는 부모들. 햇빛에 익어 발그레한 볼로 유모차에 뻗어 잠든 아이들. "와! 이거 진짜 멋졌어 그지!!?" 하고 상기된 얼굴로 조잘 거리는 아이들.



디즈니가 최근 큰 애니메이션 히트작은 없었다 해도, 디즈니의 컨텐츠 파워는 어마무시한 것이었다. 매년 내어 놓는 다양한 영화와 티비 프로그램 -> 이를 바탕으로한 다양한 제품 판매 -> 그리고 다시 디즈니에서 재생산 해 내는 그 캐릭터들의 이야기는 실로 무한한 재창조가 가능해서 당해낼 재간이 없다. 한 뮤직트랙에 라이온킹 + 노틀담의 꼽추 + 모아나 + 코코 + 최근의 엘칸토 까지 섞어서 "네가 꿈만 꾼다면, 뭐든지 이뤄낼 수 있어" 하는 몽글몽글한 메세지로 내 놓으면, 최근 30년을 망라하는 셈인데 부모부터 아이까지 그 중에 내가 좋아하는 게 없기가 힘들게 된다.

이 모든 것은 많은 이들의 합작으로 이루어진다. 저 음악을 재편곡 하고, 녹음하고, 이 음악에 맞춰서 건물에 쏠 영상미를 제작 편집하고, 거기에 맞춰 불꽃놀이까지 다양한 각도, 색, 박자를 이용해 시퀀스를 제작하고 실제로 이를 쏘는 사람들 까지. 일하기 재미있을까? 결과물을 볼 때, 혹은 이 결과물을 보고 감동하는 관객들의 얼굴을 보는 그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



하필 다음 날도 돌아오는 비행기가 아침이라 마음놓고 쉬지 못하고 나왔다. 좀 쉬고 쇼핑도 하고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아, 폭염에 디즈니랜드에서 노는 건 정말 힘들었다. 얼마나 칼로리 소모가 많았는지, 그렇게 패스트푸드와 아이스크림을 때려 부었는데도 집에 돌아온 후 몸무게의 변동은 미비했다. 갔다와서 하루 반은 몸이 너무 피곤해서 아무것도 못 했지만 재밌었다. 아직 아이가 없으니 싱글라이더도 이용해서 빠르게 탈 수 있고. 한국에서는 한여름에 놀이공원도 개장에서 폐장할때 까지 하루종일 놀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체력이 무리라는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다음엔 겨울에 가야겠다.









대략의 디즈니랜드 초심자 가이드는 이전 글을 참고하세요

https://brunch.co.kr/@c39a98fae8d84a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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