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residio Library Oct 19. 2023

하와이에서 득도- 공짜에는 이유가 있다

혼자 간 하와이 호텔에서 무료로 얼리체크인을 해 줬는데...

하와이를 들렀다 오게 됐다. 남편은 먼저 귀가하고 나만 혼자 나중에 돌아오던 차에, 하와이안 항공권에 오아후 25시간 레이오버가 있었고 200불가량 저렴했기 때문이다. 남편 편에 큰 가방은 이미 보내서 산뜻하게 캐리어 한 개에 백팩 한 개. 혼자 하룻 밤만 묵을 호텔도 예약했고, 와이키키는 여러 번 가 봐서 지리가 익숙하기 때문에 그냥 여유롭게 돌아다니고 싶었다. 비행기에서 다시 미국 유심으로 갈아끼웠다. 여기저기를 다니니 유심이 세 개라 정신이 없었다.


순조롭게 우버를 타고 호텔까지 도착했다. 조금 후텁지근 하지만 너무 덥지는 않은 좋은 날씨. 호텔은 오래 된 건물을 최근에 젊은이 풍으로 알록달록하게 리모델링 한 듯 싶었다. 위치가 일단 아주 와이키키 한중간이었고, 비치타올도 빌려준다기에 예약했었다. 짐을 낑낑거리고 내리자 문 앞에서 직원이 날쌔게 들어주었는데, 슥 들더니 여기다 뭘 넣고 다니냐는 듯한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I know, it is heavy." 하고 웃었다. 프론트에는 직원 두 명이 알로하를 크게 외치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직 3시는 안 됐지만 일찍 체크인을 시도했다. 저녁 비행기를 타고 와서 피곤했던 지라, 안 된다 그러면 추가 금액을 내고라도 할 심산이었다.


직원은 장황하게 아 지금 가능한 방이 있다고 말을 시작했다. 엘리베이터 옆방이긴 한데, 일반 방보다 훨씬 넓고 새로 리모델링 된 곳이라며 이 방으로 하면 지금 체크인 해 주고 얼리체크인 비용도 안 받겠다고 하겠느냐고 했다. 내가 머뭇거리고 있자 옆 직원이 거들며 "그 방 진짜 좋아. 니 맘에 들거야" 했다. 나는 이놈의 지긋지긋한 짐을 좀 내려놓고 샤워하고 좀 자고 싶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홍콩, 거기에 한국, 하와이를 넘나들자니 시차가 꼬불꼬불 꼬여 몽롱했다. 엘리베이터 소리가 많이 크냐고 묻자, 그렇게 큰 건 아닌데,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릴 때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Well, sure. I will try." 내가 어깨를 으쓱하고 웃으며 말했다.


직원은 기뻐하며, 방 안에 간식도 있는데 모두 무료라며 다 먹어도 된다고 했다. 12층 방이 배정됐다. 뭐, 물이나 사탕 하나 나부랭이 있겠지 하고 방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를 내려서 방을 찾는다고 돌았는데 방이 정말 거기 바로 있었다. 엘리베이터와 방 사이는 거의 가벽 느낌. 발로 뻥 차면 뚫리지 않을까. 느낌이 쎄했다.


방안은 깔끔했고, 꽤 넓었으며, 무려 발코니도 있었다. 발코니를 열면 햇빛이 한가득 쏟아져 들어왔고 멀지만 바다도 보였다. 전기 콘센트도 여기저기 잘 되어있고, 침대도 괜찮았다.





테이블 위에는 간식 나부랭이가 아닌 트레이 가득 하와이안 맛 감자칩과 초콜릿, 하와이안 펀치 음료수 캔도 각 각 두 가지 씩 준비돼 있었다. 잉? 이게 다 공짜제공이라고? 한국 호텔에서는 이것 저것 주는 경우가 많지만 경험상 미국에는 커피+차 이외에는 물도 공짜로 안 주는 곳도 많다.




마트에서 이것만 사도 15불은 넘겠는데?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전화를 받으니, 다시 한 번 친절하게 환영한다며 간식 공짜니까 꼭 먹으라고, 필요한 것 있으면 얘기하라고 말을 하길래 알았다고 하고 끊었다. 호텔을 그렇게 오만군데를 묵어봤어도 얼리체크인 한 사람한테 전화까지 다시 해서 환영하는 경우는 좀 드물다.


그 때였다.








우우우우웅ㅇㅇㅇㅇ- 부우우우우우아아앙

공항 근처에 산다면 흔히 들을 수 있는, 비행기가 가까이 지나가는 듯한 소리.


바로 엘리베이터였다.



처음엔 들을 만 했다. 샤워를 하는데 화장실에서도 났다. 알고 보니 방이 엘리베이터 옆 방이 아니라, 엘리베이터 두개를 둘러싼 형태의 방이었다. 누군가가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이 소리가 계속났다.


그제야 왜 그렇게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권했고, 또 전화를 했고, 간식이 엄청나게 많이 제공되었는지 비로소 이해가 갔다. 헤실헤실 웃음이 나왔다. 공짜는 없는 것이다.


혼자 하룻 밤 묵는 곳이라고 하룻 밤 200불 이내의 내가 좋아하는 위치를 열심히 찾던 나에게 (비행기 값을 200 아꼈으니 그 내에서 호텔을 하고 싶었다구), 남편은 그냥 하룻밤인데 좋은 데 묵으라고 나무랐다. 자기가 마음에 들었던 데가 그렇게 안 비쌌다며 보여줬는데 그래, 좋긴 했지만 두 배는 더 내야 했다. 누가 뭐라고도 안 했는데 괜히 양심에 찔려서 싫다고 했다. 그렇게 찾고 찾다가 꽤 괜찮아 보여서 예약했던 곳인데. 남편 말이 맞나, 싼 것 좋아하다 이리 됐으니.


내가 엘리베이터 옆방이라는 것을 알고도 받아들였으니, 그리고 댓가로 얼리체크인을 받았으니 가서 불평하거나 방을 바꿔달랠 맘은 없었다. 다만, 평일이고 비수기라 호텔이 꽉 찬 것도 아니라서 꼭 이 방을 얼리체크인 전용으로 채웠어야만 한 것도 아닌데, 왜 굳이 이 방을 줬는지, 직원이 왜 소리가 별로 안 들린다고 뻥을 쳤는지 그 점에 대해서는 화가 났다.


엘리베이터는 계속 오르내렸다.

부아아앙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냥 마음을 바꿨다. White nose maker라고 애기들 잘 때 켜 두는 게 있는데, 그 소리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잠시 낮잠을 청하고 잠을 못 자면 뭐라고 할까 생각했으나 여독으로 피곤했던 나는 놀랍게도 잠을 잘 잤다. 일어나니 일반체크인 시간이 가까워졌다. 그럼 엘리베이터가 더 바쁘게 오르내릴 테니 밖으로 나오기로 했다. 나오는 길에 괜히 심통이 나서 아까 그 프론트 직원들의 인사를 소심하게 못 들은 척 했다. 그리고 하루종일 돌아다니다가 들어와서는 잠만 자고 아침에 눈 뜨자마자 비행기타러 나갔다.



사실 백색소음메이커라고 생각하고 나서는 엘리베이터 소리 자체가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를 유발하지는 않았다. 밤에 잠도 잘 잤다. 솔직히 잠이 덜 깨서는 비행기 소리인 줄 알고 몇 년 전에 살던 집인가(주변에 작은 공항이 있어서 비행기 소리가 간간히 들렸었다) 하고 조금 아련한 느낌이 들곤 했다. 다만 간간히 "속았다" 는 생각이 치밀어 화가 났을 뿐. 오히려 거슬렸던 소음은 하와이 오래된 건물 특유의 복도식 에어컨 (실외기 없는 형태의)의 온도조절 겸 켰다 꺼졌다 하는 소리. 이 소리가 맥락없이 꽤 커서 자다가 에어컨이 틱 하고 켜지는 소리에 놀라 깨곤 했다.


체크아웃하면서 어제 옆에서 거들던 그 직원을 다시 마주쳤다. "How was your stay?" 하고 묻기에 "야이 멍멍이 자식 같은 놈아 그짓말을 해?"하고 화를 내려다가, 그럼 뭐하나 싶어 "Well, the elevator was very loud. I wouldn't have taken it if I knew it was that loud (엘리베이터소리가 엄청 크던데, 그런 줄 알았으면 수락 안 했을 거에요)" 하고 답했다. 직원은 이해한다는 표정을 하며, 안다고, 자기네도 어떻게하면 보완할 수 있을까 고민중이라고 (에이씨 알고 그랬네. 그러면 나한테 왜 권했냔말이) , 엘리베이터 소음 외에 다른 건 괜찮았냐고 해서 그냥 그렇다고 했다. 그냥 다음에 안 묵으면 될 일이니.


좀 아쉬웠다. 위치가 아주아주 좋고, 오래된 건물이긴 해도 리모델링이 꽤 힙(?)했다. 정수기 겸 탄산수 기계가 있어 탄산과 맛을 마음대로 더해 받아올 수 있는데 그 물 맛이 아주 끝내줬다! 비치 갈 땐 타올도 빌려주고 아침에는 로비에서 커피도 마실 수 있다. 다만 사람이 많다면 생길 복도 소음이나 에어컨 소리같이 건물 및 시설이 낡아서 생길 수 있는 문제는 어쩔 수 없다. 물론 엘리베이터 옆 방을 권하면 거절하길 추천한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 직원에게 화가 난 건지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직원이야 그 방을 팔으라는 업무를 받았을 테니 판 것이고, 어찌됐든 엘리베이터 옆방이라 소리가 들릴 수 있다는 정보는 정당하게 제공한 데다가, 그 댓가로 얼리체크인 비용도 감했다. 불편할까봐 전화도 또 했지 않는가?


다 내가 욕심이 많아서 생긴 일이다. 하와이 호텔들 얼리체크인 무료로 잘 안해주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인데, 내가 무료라고 소음의 가능성을 애써 과소평가하고 수락했기 때문이다. 남편이 왜 저렴한 거만 좋아하냐고 나무랄 때 가성비의 맛으로 재밌게 있다 왔다고 떵떵거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니 화가 나지.


그래도 어른이 됐나 싶다. 어디 가서 진상부리지 않고, 그럭저럭 분함(?)을 잘 다스렸고, 결과적으로는 저렴한 가격으로 무료 얼리체크인까지 해서 무료 간식까지 받고 잠도 잘 잤으니..? 밖에 나가서는 또 나름대로 잘 놀다 왔다. 뭘 하고 놀았냐면 -



다음화에 이어집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