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 때 뭐 했나몰라
한국에 놀러와서 뭐가 제일 좋냐고 묻는다면 단연 예쁜 카페들이다. 여기저기 독특하고 아기자기한 카페들부터 3-4층짜리 건물 전체를 무슨 전시장이나 식물원처럼 만들어 놓은 베이커리?카페까지. 여름엔 시원하게, 겨울엔 따뜻하게. 여행하다가 지쳐서 좀 앉아야겠다 싶으면 어김없이 주변에 카페가 있었고, 이런저런 음료와 베이커리를 시켜 앉을 수 있는게 참 좋다. 샌프란시스코에는 그렇게까지 앉을 자리 많은 카페가 많지 않은지라, 나름 한국 물 먹은 남편이 종종 한국식카페를 그리워한달까.
그런데 또 막상 나는 인스타그램을 뒤지고 블로그를 찾고 해서 카페 찾는 걸 잘 못 한다. 일가친척과 시간을 보내고 나면 막상 우리끼리 놀 시간도 많지 않은데, 한국에 왔으면 한국에서만 할 수 있는 걸 해야지에 휩싸여서 정신없이 돌아다니기 일쑤. 남편은 결혼하고나서 한국에 두 세 번 쯤 와 봤기 때문에 이미 좀 유명하다 싶은 건 왠만큼 해 본 이후이므로, 사실 별 건 없다.
남편이 넷플릭스에서 보고 사찰음식에 관심을 보여서 사찰음식을 외국인 대상으로 해 볼 수 있는 데가 있어 예약했다. 개인, 혹은 수업에 따라 다를 수는 있으나, 나는 딱히 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1. 요리 하는 사람이 영어로 하는게 아니라, 요리하고 설명하는 사람과 그걸 마이크를 끼고 통역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문제는 통역하는 사람이 요리하는 사람 말하는 중간에 계속 겹쳐서 말하는 바람에 한국어도 잘 안들리고 영어도 잘 안 들렸다.
2. 요리를 시연하며 같이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요리를 먼저 다 해서 보여주고 끝낸 다음 수강생들이 해 보는 방식이었다. 아무리 시연해서 보여주었고 레시피가 있다고 해도, 한국음식이 생소하고 어떻게 하는 지 잘 모르는 외국인들은 기억이 안 나 어버버 하거나 순서를 바꾸는 게 태반이었다. 그러면 요리시연자가 와서 "왜 이거 안하고 계세요-? 이 걸 해야지요-? 아니 아까 다 보여드렸는데 왜 이렇게 하세요?" 라고 했다. 도와 주러 왔다는데 핀잔 받는 느낌. 돈 내고 음식수업 들으러 간 거지 혼나러 간 곳이 아닌데..
3. 전반적인 준비나 진행이 정돈되지 않았다. 필요한 재료는 미리 덜어서 테이블 별로 미리 주고, 요리시간, 먹을시간, 치울시간을 넉넉히 주면 좋았을텐데. 어떤 재료는 앞에 가서 받아와야 되는데 모자라서 두 세번 왔다갔다 하거나, 얼마나 필요할 줄 몰라서 넉넉히 가지고 오면 왜 정량만 가지고 오지 않았냐고 화를 냈다. 요리 시연 시간이 지연되었고, 막상 요리시간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이 4-5명이 헤매며 만들었고, 만드는 중에 얼른 먹어야한다고 했다. 총 2시간 중에 시연을 한 50분, 만드는 게 40-50분 정도 였으니, 막상 먹는 건 10분 만에 대충 마시고 대충 설거지를 하고 치웠다. 먹는 중에도 빨리 먹고 치우고 나가야한다고 독촉했다. 외국인들이 가장 많았던 두 그룹은 거의 마지막에 나왔다.
4. 먹는데 자꾸 맛있냐고 색다르냐고 물어봤다.
전반적으로, 유투브 보는게 더 나을 것 같다.
그 다음에는 청와대에 갔다. 남편이 다음 대통령이 다시 들어간다고 할 지 모르니 지금 기회가 왔을 때 가봐야 한다며.
날씨가 너무 좋아 더웠다. 청와대는 잘 정돈되어있고 예뻤다. 굳이 닫고 공개했어야됐나 싶은 것이, 미국 백악관은 물론이고 다른 주/시 캐피톨은 그냥 정상 운영 중에 투어도 함께 운영하기 때문이다. 백악관, 워싱턴 디씨 캐피톨, 캘리포니아 주 캐피톨을 가봤는데, 오픈할 수 있는 곳들만 제한적으로 해서 체계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었다. 오히려 현재 직무를 하는 곳을 둘러본다고 생각하니 더 친근하게 느껴졌달까. 어찌됐든 봤다는 데에 의의를 뒀다.
청와대 밖을 걸어나와, 멋져보이는 카페를 찾아서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테이크아웃을 해서 나왔다. 앉을 데를 찾아 돌아다니다보니 어쩌다가 청와대 사랑채? 라고 하는 무슨 문화센터인가? 비슷한 건물 근처에 앉게 되었는데, 어린이나 가족단위 대상 행사중인듯 했다. 어린이대상 클래식 공연인 듯 무대에서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고, 우리는 조금 떨어진 초록초록한 나무 앞 작은 종각 계단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아이들이 반 쯤 먹은 솜사탕 막대를 들고 서로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산들산들 부는 바람에, 초록초록 배경의 아름다운 종각의 무늬. 시원한 커피와 달콤한 디저트. 여유가 이런거지. 여유를 부리고 있는데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평생 서울에 살았는데 자기도 아직 못 가본 청와대를 갔냐며. 그러게나 말이다.
쓰레기통을 찾다가 건물 앞 광장? 까지 나왔는데, 거기 무대가 있었고, 이러저런 행사부스와 함께 솜사탕도 있었다. 아까 애들이 여기서 받았구만, 하고 가만 보았더니, 솜사탕이 핵귀욤인데 애들은 먹을 만큼 먹은 듯, 한 두명의 어른들이 줄을 서 있었다. 이거 어른도 줄 서도 되는지 여쭤보니, 애들 줄이 없으니 어른도 준다고 하셔서 감사하게 받아왔다. 너무귀여워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D 한국에서 행사하게되면 저 업체 부르고 싶다.
그 다음엔 북악산엘 가보겠다고 버스를 타고 갔다. 별 생각 없이 갔다가 보니 끝없는 계단의 늪이었다. 산 입구에 뭔가 있겠지 하고 물도 안 가지고 간 상태여서 더 그랬다. 정말 계단이 끝도 없이 나와서, 그리고 정상으로 갈 수록 점점 가파르게 변하기에 계속 갈지 고민을 좀 했으나, 결국은 정상을 찍고 돌아 내려왔다. 거리 상으로는 얼마 안 되는데 아이고야 계단이 힘들었다. 꽤 힘들었나 사진도 없다. 남편이 좀 찍었을 텐데. 이 루트는 옛날 부터 있던 루트라서, 청와대 때문에 군사지역이라는 오래된 표시가 상당히 많았다. 당연히 청와대는 보이지 않는 루트. 남편은 이런 모든 것이 꽤나 흥미로운 듯 했다.
내려와서는 너무 목이 말라서 맞은 편에있는 윤동주 박물관을 헤매다가 2층에 카페가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바로 올라가서 음료와 쿠키로 목을 축였다.
버스를 타고 내려오려는데, 광화문부터 시위가 있는 관계로 훨씬 더 못가서 버스를 내려야 했다. 광장시장을 가려던 우리는 어떻게 할 까 하다가 그냥 지하철역까지 걷기로 했다.
걸어나오는 길은 즐거웠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길가를 구경하며 내려왔다. 오래된 집들, 오래된 상가의 새로운 가게들이 즐비했고, 그런 잔잔한 서울의 거리를 구경하는 것이 좋았다. 큰 길까지 내려오자 사람이 많아졌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광장시장 근처의 지하철역에서 내렸다.
사실 광장시장은 나도 한 번도 가 본적이 없었다. 한국에 살 때도 그냥 이런저런 시장 중에 육회랑 빈대떡이 유명한 곳이려니 했지, 굳이 찾아갈 생각을 안 해봤었다. 그러다가 아마도 넷플릭스의 몇몇 프로그램에서 광장시장 먹거리들이 나오면서 더 유명해진 것 같았다. '사람이 많을텐데 먹을 수 있을까, 그것도 토요일 저녁에?' 하고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 걱정은 금방 사실로 눈앞에 나타났다.
아니 사람이 많다 많다해도 너무 많았다. 거의 앞사람을 밀고 지나가야 하는 정도였는데, 맘이 급하게 지나다가 운이 좋게 메이저(?) 육회와 빈대떡 집으로 보이는 곳에 운 좋게 길지 않은 줄을 섰다. 워낙이 회전율이 빠르다보니 금방 들어갔다.
육회+빈대떡+고기완자 세트를 시켰는데, 아주아주 만족스러웠다. 일단 2만원 중후반?대 정도인데(요즘 환율덕분에 달러 체감으로는 만 구천원 주고 먹은 느낌) 퀄리티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저 뭇국은 뭘 넣었는지 속이 탁 트였고, 육회는 부드럽고 쫄깃쫄깃, 고기완자와 빈대떡은 바삭바삭했다. 남편도 육회를 잘 먹는 편이라 다행히 함께 가 볼 수 있었다(낙지탕탕이 들은 건 못 먹음). 흐엉. 또 먹고 싶다.
사실 나는 그 유명하다는 참치누드김밥? 이 먹어보고 싶었는데, 남편은 참치도 김밥도 안 먹으니 시도할 수 없었다. 그나마 육회는 먹어서 다행이지 않은가.
부른 배를 두들기며 시장을 조금 더 돌아다니다가 크림치즈와 슈크림이 든 호두과자 + 귤? 맛? 술을 사서 호텔로 돌아왔다. 다음에 한국 가면 광장시장은 꼭 또 갈 것 같다.
같은 날은 아니지만 가족과 조카와 함께 한강에서 요트? (하와이에서 탔던 카타마란 같은 배 인듯)도 탔다.
외국에서는 열심히 타고다녔던 페리나 보트를 왜 한국의 한강에서는 타 본적이 없었나 의문이었다.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닌데, 먼 것도 아니고. 왜지??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함께 타러간 언니도 처음이란다.
남편과 한국에 올 때 마다 해 보는 것들이,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도 처음해 보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재미있는 것은 지인들에게 관련 질문(나 이거 해 보려고/거기 가 보려고 하는데 혹시 해/가 본 적 있어?) 을 하면 "어? 그러고보니 나도 거기 안 가봤네/그거 안 해봤네" 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가까이에 있는 것을 언제나 할 수 있는 것, 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멀리 있는 것들이 더 좋아보이고 놀라워보이는 까닭일까.
손 뻗으면 있던 것이 태평양 건너 머나먼 것이 되어버린 지금의 나는, 아쉽다. 아쉬워서 갈 때 마다 참 부지런히도 돌아다니고, 구경하고, 먹는다(이런 마음을 깨닫고 난 후 부터는 사실 어딜 가든 부지런히 다닌다).
앞서 청와대 앞 문화센터에서 음악을 연주할 때, 그 중에 "아름다운 나라"도 있었다.
저 산자락에 긴 노을지면
걸음 걸음도 살며시 달님이 오시네
밤 달빛에도 참 어여뻐라
골목 골목 선 담장은 달빛을 반기네
겨울 눈꽃이 오롯이 앉으면
그 포근한 흰빛이 센 바람도 재우니
참 아름다운 많은 꿈이 있는
이 땅에 태어나서 행복한 내가 아니냐
큰 바다 있고 푸른 하늘 가진
이 땅 위에 사는 나는 행복한 사람 아니냐
이 곡은 가만히 듣고 있으면 눈시울을 붉히는 힘이 있다. 복근에 힘을 주고 따라부르게 된다. 지극히 한국적인 음과 가사, 박자로 조근조근 힘있고 아름다운 대한민국에 찬사를 보내는 곡. 그 곳에 당신은 살고 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께서는, 당신이 찻길 건너 그냥 갈 수 있는 그 곳이, 나에게는 참으로 머나먼, 그리운 곳이겠으니, 대신해 아껴 사랑해 주실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