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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동기 Apr 07. 2017

공영방송 기자는 공인일까요?

KBS '일베 기자'의 실명과 얼굴  공개를 두고 벌어진 '논쟁' 

오늘 오전 편집국에서 약간의 ‘논쟁’이 있었습니다. 공영방송 기자를 ‘공인’으로 볼 것인가 여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논쟁이라고 하면 뭔가 격한 토론을 연상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건 아닙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KBS기자가 있는데, 해당 기자의 실명을 공개할 것인가 그리고 얼굴도 공개할 것인가를 두고 내부에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문제’의 기사는 <[단독] ‘일베 논란’ KBS 기자, 리포트 전파 탔다>입니다. 김도연 기자가 단독으로 보도한 기사인데요, 일간베스트 활동 전력으로 논란이 제기됐던 이아무개 KBS 기자가 지난달 말부터 인터넷 기사를 작성하고 리포트를 제작·보도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김도연 기자는 애초 기사에서 이아무개 기자의 이름을 실명으로 썼고, 기사에 포함된 사진에서 해당 기자의 얼굴을 공개했습니다. 문제의 심각성과 여론 환기 차원에서 그렇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김도연 기자의 기사 데스킹을 보면서 그런 점에 공감했습니다. 그래서 실명과 얼굴을 공개한 기사를 출고시켰습니다.      


그런데 내부에서 이견이 제기됐습니다. 해당 기자가 공영방송 기자이고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나 아직 평기자이기 때문에 공인이라고 보기엔 애매할 수 있다는 거지요. 기사에서 실명과 얼굴을 공개할 정도의 ‘특별한 사유’가 있는 지에 대한 질문도 있었습니다.      


사실 저도 데스킹을 볼 때 이런 점을 고민했습니다. 그동안 ‘일베 기자’가 KBS 취재부서에 배치되는 것에 대해 KBS내부는 물론이고 언론계에서 비판 여론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KBS는 해당 기자를 취재부서에 배치했고, 그것도 모자라 이젠 리포팅까지 하게 했습니다. 저는 이건 아니라고 판단했고, 그래서 실명과 얼굴을 공개했습니다.      
지난 5일자 KBS 뉴스7 보도. 사진=KBS화면
그런데 공영방송 기자, 그것도 막내에 해당하는 평기자가 실명과 얼굴을 공개해도 되는 기준에 해당하는 공인인가라는 질문에 약간 혼란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변호사들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변호사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더군요. “고위간부나 앵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기자가 아닌 평기자의 경우 공영방송 기자라 해도 공인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를 밝힌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반면 “공영방송 기자는 민영방송과 달리 공인으로 볼 수 있고, ‘일베 기자’ 논란은 그동안 보도를 통해 사실상 특정화 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실명과 얼굴을 공개해도 무방하다”는 견해를 밝힌 변호사도 있더군요. 미디어오늘 기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었습니다.      


결국 판단은 데스크가 하는 거죠. 저는 고심 끝에 저의 결정을 번복하기로 했습니다. 이아무개 기자가 그동안 보인 행태(그것이 비록 KBS에 입사하기 전이긴 하지만)는 정말 문제지만, 기사를 출고한 목적이 ‘특정 개인’을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언론계와 다수 KBS기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해당기자를 취재부서에 배치한 KBS 측의 처사에 더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사를 쓴 김도연 기자는 “소송은 두렵지 않다. 실명과 얼굴을 공개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강력히’ 밝혔습니다. 사실 저도 소송은 고려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미디어오늘 보도가 저널리즘의 원칙과 기준에 부합하는 것인가 – 이 부분을 고민했는데 저는 “고위간부나 앵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기자가 아닌 평기자의 경우 공영방송 기자라 해도 공인으로 볼 수 없다”는 쪽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어 한마디 덧붙이면,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는 게 저널리즘 원칙에 벗어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김도연 기자에게 제가 결정을 번복하게 된 상황과 취지를 설명하니 아쉬워하면서도 수긍을 하더군요. 다만 제가 번복을 하긴 했지만, 오늘 저의 결정이 미디어오늘의 일관된 기준으로 적용되는 건 아닙니다. 공인의 기준은 변호사마다 다르고, 기자들의 판단도 제각각입니다. 심지어 언론중재위원회에서도 사안에 따라 공인 적용기준이 다르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그만큼 일관된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조만간 편집국 기자들이 시간을 내어 ‘이 문제’를 토론해 보기로 했습니다. 구체적인 케이스에 따라 기준이 달라야 하는 건지 아니면 미디어오늘의 일관된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건지 ‘이런저런’ 얘기를 한번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 전에 김도연 기자와 소주나 한잔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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