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1095호 사설]
일간베스트 활동 전력 때문에 입사 때부터 논란을 빚었던 KBS 이아무개 기자가 ‘취재현장’을 누비고 있다. 해당 기자는 지난달 말부터 인터넷 기사를 작성하고 리포트를 제작·보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사회적 커뮤니티에서 이른바 ‘헤비유저’로 활동했던 인사가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사회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리포트를 내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KBS 안팎에서 비판 여론이 증가하는 이유다.
물론 과거 ‘일베 활동’을 했다는 것만으로 해당 기자의 자격을 문제 삼을 순 없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자세를 보였다면 본인에게도 거듭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해당 기자는 2015년 사내게시판에 자신의 ‘일베 활동’에 대해 반성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반성 글을 올리는 것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해당 기자가 어떤 참회의 과정을 거쳤는지 우리로선 알 길이 없다. 오히려 ‘일베 논란’ 기자의 리포트가 전파를 탔다는 내용이 본지 보도를 통해 알려졌을 때 KBS에선 부정적 반응이 많았다. 정수영 언론노조 KBS본부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는 “우려하던 일이 현실화됐다. 사측에 인사 발령 철회를 요구해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은 그가 여전히 KBS구성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태가 여기까지 오게 된 데에는 일차적으로 KBS측의 책임이 크다. 특히 경영진과 보도본부 간부들의 책임론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의 기자’가 공영방송 기자 자격으로 기명 리포트를 하도록 인사 발령을 낸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KBS 측의 미온적인 대처도 비판받아야 한다. 이아무개 기자가 리포트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진 이후 KBS는 별다른 입장이나 공식적인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KBS가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라면 적어도 ‘자격 논란’이 불거진 기자를 현장에 배치할 때 먼저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이해와 용서를 구하는 게 온당한 순서 아닐까.
KBS측의 이런 소극적인 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일베 기자’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사내외 안팎에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KBS는 이아무개 기자를 비보도 부서로 발령내는 것으로 비난의 화살을 피해갔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였다. KBS는 지난해 3월 그를 보도본부 내 비취재부서인 뉴스제작2부로 옮기더니 급기야 지난 2월에는 취재부서인 사회2부로 발령 냈다. 그리고 해당 기자는 최근 마이크를 잡고 리포트를 하고 있다. 우리 사회 문제점을 지적하는 리포트를 ‘일베 기자’가 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청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아무개 기자가 과거 일베 등에 남긴 글에는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폄훼하거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내용이 많다. 여성비하 글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정도로 심각했다. 우리 사회 다양한 이슈에 대해 공정성과 객관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사회적 약자를 보듬고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는 공영방송 기자로서는 결격 사유에 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KBS는 사내외 반대를 무릅쓰고 해당기자를 일선 취재현장에 배치했다. KBS측의 처사에 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거 ‘일베’에서 ‘여성 비하와 차별’ 등의 전력을 갖고 있는 당신은 시청자와 국민 앞에 마이크를 잡고 ‘사회 정의’를 말할 만큼 당당하게 거듭났는가. 언론인으로서 그리고 KBS 기자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다할 수 있을지도 전혀 판단할 수 없다. 이에 대해 분명하고 납득할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한다면 당신은 아직 자격이 없다.”
지난 2월 KBS가 이아무개 기자를 취재부서로 발령 냈을 때 전국언론노조 KBS본부가 발표한 성명 가운데 일부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이 질문에 대해 해당기자와 KBS는 분명한 답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시청자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그렇지 않고선 ‘일베 기자’라는 꼬리표는 계속 그를 따라다닐 것이고 KBS 역시 ‘자격논란’이 제기된 기자에게 마이크를 잡게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KBS측에 다시 묻는다. ‘해당 기자’는 진정 공영방송 기자 자격이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