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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동기 Dec 29. 2017

2017년은 ‘언론불신’의 해였다

[미디어오늘 1131호 사설] 

충북 제천 ‘화재참사’가 발생한 이후 많은 언론이 우리 사회 안전불감증을 질타했다. 소방당국의 초동대처 미흡을 지적하는가 하면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는 불법주차 문제도 비판했다. 소방기본법 개정안이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인 점을 언급하며 ‘국회책임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타당한 지적이다.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이기도 하다. 하지만 연이은 안전불감증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세밑 즈음에 언론이 반드시 되돌아봐야 하는 게 있다. 우리 사회 안전불감증도 문제지만 그 못지않게 언론신뢰도 또한 바닥이라는 사실이다.       


미디어오늘이 여론조사기관인 에스티아이에 의뢰해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언론불신’의 심각성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측 경호원 한국 기자 폭행 사건’과 관련해 ‘무리한 취재를 하려는 기자들이 잘못한 측면이 있다’는 응답(46.2%)이 ‘중국 경호원 잘못’이라는 답변(43.8%)보다 높게 나왔다. 기자가 폭행을 당했는데도 ‘기자 책임론’이 높게 나왔다는 사실은 한국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이 얼마나 깊은 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안전불감증과 언론신뢰도가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상관이 있다. 우리 사회 안전불감증을 질타하고 정부당국과 정치권에 대책마련을 주문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 언론이다. 그런데 그런 언론을 시민들이 믿지 못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언론이 어떤 옳은 말을 해도, 우리 사회 개혁을 외친다 해도 시민들의 반응은 이렇게 돌아올 것이다. ‘너나 잘해!’   

    

미디어오늘도 한 해 동안 이 공간을 통해 한국 언론의 자성과 개혁을 수차례 주문해왔다. 그만큼 언론이 제대로 역할을 못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한국 언론을 수식했던 단어들을 보면 긍정적인 것은 거의 없고 부정적인 어휘들이 대부분이었다. ‘기레기’는 수년 동안 계속해서 언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단어가 됐다. 여기에 ‘친삼성’ ‘원전마피아’ 심지어 ‘맞아도 되는’이라는 수식어까지 등장했다.  

     

미디어오늘 2017년 8월9일자 3면 
올해는 특히 언론과 관련해 낯부끄럽고 민망한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삼성 이재용 재판’을 통해 드러난 ‘친삼성 언론’의 행태와 ‘장충기 문자’ 파문이 대표적이다. 삼성과 언론간의 유착 의혹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재용 재판과 ‘장충기 문자’를 통해 드러난 재벌에 대한 언론의 굴욕적인 태도는 그 노골성과 적나라함 때문에 한동안 조롱대상이 됐다. 이런 자신들의 치부에 대해 독자들에게 사과한 언론은 극소수였다. 이 뿐인가. 배우 김주혁씨 사망사건과 샤이니 종현 자살 등을 보도하면서 상당수 언론이 클릭장사를 위한 어뷰징 기사를 양산했다. 독자들에게 한국 언론의 ‘민낯’은 이렇게 각인됐다.     


이명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정권홍보’에 앞장서며 부당노동행위 등을 일삼았던 MBC 경영진들은 물러났다. KBS 고대영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들은 구성원들과 시민들의 사퇴 요구에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퇴출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지난 9년 동안 엉망이 된 공영방송이 정상화 길에 들어선다고 해도 시민들의 언론불신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공영방송 정상화 정도로는 땅에 떨어진 언론신뢰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이는 이념적 스펙트럼과 상관없이 한국 언론계 전체가 독자들의 신뢰를 얻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공멸의 길로 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제 정권 홍보냐 비판이냐, 여당에 우호적이냐 야당에 우호적이냐와 같은 일차원적인 논쟁은 의미가 없다. 독자들도 사안의 본질에 제대로 접근했느냐,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 사안이 갖는 의미를 제대로 짚었느냐를 따진다. 이런 독자들의 기대와 요구에 언론은 대답할 준비가 되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당수 언론은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기보다 여전히 기득권 지키기에 몰두하고 있는 것 같다. 미디어오늘도 최선을 다해 언론개혁이라는 임무를 수행하려 했지만 제대로 역할을 했는지 반성하게 된다. 새해에는 좀 더 변화된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는 말로 사과를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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