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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동기 Dec 20. 2017

‘맞아도 되는’ 기자는 없다

[미디어오늘 1130호 사설]

중국 측 경호원 한국 기자 폭행 사건은 심각한 사안이다. 어떤 이유가 됐든 취재진에 대한 폭행은 발생해선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당시 쓰러진 기자 얼굴을 경호원이 발로 가격하는 장면을 보면, 경호과정에서 발생한 단순충돌로 보기 어렵다. 이런 불상사가 문재인 대통령 중국 국빈 방문 중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중국 당국이 책임 있는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 이유다.     


이번 사건은 폭행의 심각성과 별개로 한국 언론에 새로운 고민거리를 던졌다. 한국 취재진이 중국측 경호원들에 의해 물리적 폭행을 당했는데도 비난 여론은 경호원이 아니라 기자를 향했다. 심지어 인터넷과 SNS에선 ‘맞을 짓 했다’ ‘오죽했으면 맞았을까’ ‘기레기는 맞아도 싸다’ ‘더 맞아야 정신 차린다’ 등의 반응이 주를 이뤘다. 한국 언론과 기자들에 대한 국민 신뢰가 얼마나 바닥으로 떨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런 상황은 언론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일부 언론은 문 대통령 방중 기간 동안 불필요하고 지엽말단적인 상황을 부각시키며 방중 성과를 폄훼했다. 한중 관계를 최악으로 만들어버린 박근혜 정부의 외교 난맥상은 고려하지 않은 채 근거도 불분명하고 실체도 없는 ‘저자세 외교’ ‘굴요외교’라는 비난을 쏟아냈다. 파면 당한 대통령 박근혜씨가 의전과 패션에만 신경 쓰다 한중 관계는 물론 한국 외교를 바닥으로까지 추락시킨 게 엊그제 일이다. 이런 상황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국민들 입장에선 일부 언론의 문 대통령 방중 보도를 악의적·편파적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기자폭행 사건’ 이후 일부 언론의 어이없는 보도는 불붙듯 번지고 있는 한국 언론에 대한 비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중국경호원 기자폭행 나눌 때 ‘김정숙 여사’는 스카프 나눠”라는, 기본적인 어법에도 맞지 않는 기사가 등장했다가 사라지는가 하면 이른바 ‘혼밥’ 논란을 외교참사와 연결시키는 무리한 보도도 이어졌다. ‘혼밥 보도’ 자체가 왜곡보도라는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 사실상의 ‘보도참사’였다.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지만 여전히 한국 언론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낮다. 일부 언론을 제외하곤 여전히 바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발생했던 각종 ‘보도참사’와 관련, 당시 언론사 간부들 가운데 제대로 된 사과를 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던가. 전체 언론계 차원에서 지난날 과오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세로 반성한 곳도 거의 없었다. 이번 ‘기자폭행’ 사태와 관련해 비난 여론이 취재기자와 언론을 향한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하지만 이런 점을 감안해도 이 세상에 ‘맞아도 되는 기자’는 없다. 이명박근혜 정권 9년 동안 다수 언론이 정권비판과 권력 감시 등을 소홀히 해 온 점에 대해선 비판받아야 한다. 책임을 물을 것이 있다면 물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물리적 폭행이나 폭력을 정당화·합리화 하는 방식으로 가서는 곤란하다. 박근혜·최순실에게 국정농단에 대한 책임을 법적으로 물어야지 그들에게 린치를 가하는 방식으로 해서야 되겠는가.     

물론 언론에 대한 불신과 왜곡·편파보도에 대한 불만이 다소 ‘과격한’ 형태로 나타날 수는 있다. 이번 폭행사건에 대한 인터넷과 SNS상의 반응도 그런 비판과 불만의 목소리가 극대화 된 것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일부이긴 하나 폭행 자체를 정당화하는 식의 주장이 공개적으로 나온 것은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한 교수는 중국측 경호원 폭력을 정당방위로 옹호하는 주장을 펼쳤다가 사과하기도 했는데 해프닝으로 마무리 됐지만 논란의 불씨는 아직 남아 있다.       


한국 언론의 신뢰가 바닥인 것과 한국 기자가 폭행을 당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기자가 폭행당한다고 언론 신뢰도가 상승하진 않는다. 물론 현재 바닥으로 떨어진 언론의 신뢰회복이 쉽지는 않다. 지난날 과오에 대한 반성과 공정보도를 다짐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언론 수준이 바닥이라고 해서 우리 사회 수준까지 바닥이어서야 되겠는가. ‘저들은 저급할지라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는 것’이 비정상의 정상을 위해 광장에 모였던 시민들의 외침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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