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황인 항공산업 속 웃지 못하는 항공사
국제 항공 운송 협회(IATA)의 자료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항공산업이 호황이며 올 2018년에도 순이익은 11%가 성장하고, 좌석점유율은 81.4%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였다. 점점 많은 사람이 해외로 여행을 떠나고 있지만, 정작 항공사들은 맘 놓고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다.
2017년, 전 세계 14개의 항공사가 파산을 맞았다. 항공사업은 항공기를 사들이는데 엄청난 비용을 들여야 하며 공항 이용료도 내야 한다. 승객이 적게 탄다고 승무원을 덜 쓰고 기름을 적게 소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승객수가 제대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항공유, 인건비 등 막대한 운영비를 감당하기 힘들다. 항공사는 나라를 거점으로 삼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일이 생긴다면 가장 치명타를 받는 업종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가장 최근 파산한 유럽의 유명 항공사 2개와 과거에 유명했던 항공사 2개를 소개할 것이다. 대부분 방만한 경영을 토대로 국가적인 사태가 추가로 타격을 입히며 파산을 맞은 기업들이다.
에어 베를린은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독일에서 2위, 유럽에서 4위의 승객트래픽을 가진 항공사였다. 항공동맹 Oneworld에 가입되어있었으며 자회사로 오스트리아의 니키항공, 스위스의 벨에어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최대주주로 에티하드 항공이 참여하며 자금 지원을 받고 코드셰어를 진행하는 등 한때 잘나가는 항공사였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에티하드가 손댔던 에어 베를린, 알리탈리아, 다윈항공이 모두 끝장날 것이라는 사실을...
에어 베를린은 잘나가던 시절을 포함해 지난 10년간 적자상태였다.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부지런히 경영했지만 2016년 기준 순이익은 -7억8190만 유로, 우리 돈으로 약 1조 원에 달하는 마이너스 순익을 기록했다. 파산한다는 소문을 들은 250명의 조종사는 무더기 병가를 내며 100여 편의 항공이 결항하였고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에티하드항공은 지원을 종료했다. 결국, 12억 유로의 빚과 8,481명의 직원을 데리고 있던 에어 베를린은 17년 10월 27일 끝이 났다. 그리고 일부 에어 베를린의 자산과 직원들은 루프트한자, 영국 항공사인 이지제트(EasyJet), 에어 베를린의 자회사인 니키항공으로 찢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니키항공 역시 약 2개월후 12월 14일에 쓰러졌다.
에어 베를린은 뒤셀도르프 공항에서 저공비행 퍼포먼스로 약 40년 운항의 끝을 알리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 이벤트는 공항 손님들에게 미리 공지가 되지 않아 공항에 추락하는 줄 알고 공포에 질린 승객들이 항의하는 등 마지막까지 슬픈 이슈를 남겼다.
영국에서 5번째로 큰 모나크 항공은 이집트, 터키, 그리스 등 지중해 주변국을 주로 운항하는 저가항공사다. 이들은 3년 전만 하더라도 흑자를 내고 있었고 보유한 모든 항공기를 보잉 737-8 MAX로 통일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세계정세는 마치 짠듯이 모나크 항공을 단기간에 파멸로 이끌었다. 주요 노선이었던 이집트에서 혁명, 시리아에서 내전, 터키에서 쿠데타가 일어났고 브렉시트로 인한 영국경제의 혼란, 파운드화의 약세까지 모나크 항공에겐 악재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다급해진 모나크 항공
은 비행기 표 가격을 줄이면서 경쟁항공사와 치킨게임을 시작했다. 2016년에는 2억 9100만 파운드, 우리 돈으로 4천억 원의 손실을 보았다.
그들의 꿈이었던 보잉 737-8 MAX. 새롭게 주문한 이 45대의 비행기 중 단 한대도 인도받지 못한 채 17년 10월 2일 모나크 항공은 파산했다. 2,100명의 직원이 직장을 잃은 이 참사는 영국 항공사 파산 중 가장 큰 규모의 파산이다.
모나크 항공의 파산으로 누군가는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고, 어떤 이는 94세의 아버지와 떠나는 여행이 취소되었다. 이 안타까운 사연들을 포함해 약 86만 건의 예약이 취소되었고, 이미 여행을 떠난 11만 명에 달하는 승객의 발이 묶였다.
트랜스아에로 항공은 이전 비행기 교실에서 소개했던 새로운 에어포스원의 원래 주인이자 아에로플로트에 이은 러시아 2위 항공사였다. 구소련 최초의 민간 항공사이며, 97대의 항공기를 가졌고, 156개의 공항을 이어주었다. 또한, 안전함에선 둘째가기로 서러운 항공사였다. 단 한 번도 사고를 당한 적이 없었고 러시아에서 가장 안전한 항공사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트랜스아에로는 지속해서 적자를 보고 있었으며 그 크기는 39억 유로, 우리 돈으로 무려 5조 원에 달하는 부채를 쌓아 놓고 있었다. 에어버스 A380과 보잉 747 등의 대형 항공기를 구매하며 적자 상황을 타개하고자 했던 노력은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러시아의 경제 악화와 루블화의 가치가 폭락하며 빚더미가 터져버렸고, 새로운 비행기는커녕 더 버틸 수가 없었다. 9,549명에 달하는 직원이 직장을 잃어버린 순간이었다.
대표적인 항공사 파산으로는 팬암항공의 파산을 꼽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상업항공시대의 개척자, 최초의 정기 항공노선 개설, 최초의 대서양 및 태평양 횡단 항공노선 취항, 일등석과 기내 영화상영을 처음 시작한 항공사, 달나라 여행 예약까지 받았던 항공사. 혁신적인 비행깃값 인하로 부유층의 전유물이던 해외여행을 서민들도 가능하게 만들었고, 국제 항공시장을 그야말로 독점하고 있던 항공사다.
이런 팬암항공은 미국의 상징이었고, 그로 인해 반미주의 테러리스트들의 집중 타깃이 되었다. 600명에 달하는 사람이 사망한 테네리페 사고는 공항 폭발물 테러가 발단이 되었고 파키스탄 팬암 항공기 납치사건, 270명이 사망한 로커비 사건 등이 팬암항공을 상대로 벌어진 테러다.
이미 너무 많은 대형 항공기의 운항과 걸프전으로 인한 국제유가상승에 유연한 대처를 하지 못해 부도 위기가 오기도 했고 파산 직전엔 하루에 200만 달러에 이르는 손실을 내기도 했다. 여기에 테러로 인해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것이다. 7,500명의 직원은 ‘다시 부를 때까지 집에서 기다리라’는 통보와 함께 하루 아침에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
오늘 살펴본 항공사들의 공통점은 미래예측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쓰러진 직접적인 원인이야 어쩔 수 없는 세계정세 변동이었지만 그 전에 불안한 경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위기에 대처하지 못했다. 팬암항공과 트랜스아에로 항공은 대형항공기 수요 예측에 실패했고, 모나크 항공은 치킨게임의 승자를 예측하지 못했다. 그리고 에어 베를린은 너무 오랜 기간 적자였다.
세계적으로 가장 불안한 지역 1순위로 꼽히는 한반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항공사들은 유연한 대응을 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일찍이 저가항공사를 설립하고 연비가 나쁜 비행기를 처분, 효율 좋은 보잉 787이나 봄바디어 CS300 등을 도입하며 부채를 줄이기 위한 노력하고 있다. 적자를 보고 있던 아시아나 항공도 저가항공사인 에어서울을 설립하고, 조직 슬림화, 구조조정 등을 통해 위기에 대처하고 있다.
앞으로 다가올 항공산업의 위기는 바로 조종사 부족이다. 일본의 저가 항공사인 '피치 애비에이션'과 '바닐라 에어'는 기장을 확보하지 못해 2천 편 이상 결항되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중국 항공 산업의 성장 탓이다. 중국에는 경험이 풍부한 조종사를 외국에서 스카우트해오고 있다. 앞으로 중국 자본에 맞서 국내 조종사를 어떻게 지키는지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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