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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시나물효원 Oct 09. 2024

무궁화 열차를 타고 오는 노부부

유난히

고객들이 우체국을 많이 찾는 날 중 하나가 익산시의 최대 장인 북부시장 장날이다.

우리 우체국은

북부시장 장날에는 정신없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분주하다.


익산 북부시장 장날은 4일 9일이다.


시골에서 이른 새벽 버스를 타고 오는 어른들은

우체국 문 여는 시간보다 1시간은 일찍 와서

계단에 쪼그려 앉아 있으면서 우체국 문 여는 시간만 기다리는 진 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 고객들을 살펴보면 겨우 본인 이름 석자만 그리듯 쓴 종이를 들고 돈을 찾기 위해 번호표를 뽑고 대기하거나, 또 다른 고객은 본인이 농사지은 거라며 멀리 타지에 사는 자식에게 보내려고 자기 몸보다 큰 아이스박스를 꽉 꽉 채워 수레를 끌고 오기도 한다.

정신없이 바쁜 어느 날

우체국 계단으로 어느 노부부가 장바구니 수레에

김장거리를 한가득 가지고 와서 나를 부른다.


"아가씨 이거 보내려면 어떻게 보내는 게 좋을까요?"라고 노부부가 나를 택배의 신을 숭배하듯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 묻는다.


나는 "이 정도면 양이 많아서 한 상자는 힘들고

두 상자정도 나눠서 보내셔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 여기 갓이랑 파는 신문지 깔고 따로 보내고 생강은 옆에 사이에 비는 곳에 넣으면 될 것 같아요... 박스가 물건이 무거우면 못 버티니 밑바닥 튼튼하게 붙여서 해드릴게요"라고 하며 연신 컷팅기로

박스 테이핑을 하니 노부부는 "아이고 우리가 해야는데 도와줘서 고마워요 "라고 하며 할머니는 박스 테이프 붙이는 반대쪽 상자를 잡아주신다.


할아버지는 우편 기표지를 가져와서 택배 보낼 주소를 쓰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할아버지는 참기름을 짜왔는데 그거 택배 상자에 넣어 보내면 안 되냐고 또 묻는다.


나는 참기름이 유리병에 들어있는 거라서 깨질 수 있어서 택배로 보내는 건 위험하다고 안내를 한다.


내용물을 정리하고 할아버지가 쓴 주소를 보니,

서울 주소가 적혀있어서 나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바뀌었는지 물어보았다.


노부부는 그제야 내게 본인들은 서울 동부구치소 뒤에 아파트에 사는데 김치거리가 북부시장이 가락시장보다 훨씬 신선하고 가격도 좋아서 본인들은 서울에서 무궁화열차 6 시행을 타고 익산역으로 온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런 분은 처음 본다고 신기한 눈빛으로 그분들을 바라보며 그분들의 택배 업무가 마칠 때 미소로 조심히 올라가시라며 고객 응대를 마쳤다.


그리고 수개월 뒤 그 노부부가 다시 찾아왔다.

이번엔 열무김치를 3단 샀다면서 여름에 맛있게 담가 먹으려고 한다며 열무 사 온 것을

택배 포장 도와주라고 해서 도와 드렸다.


그리고 또 그 노부부는 김장철이라 배추는 절임 시켰고 여기서 배추 속 들어가는

재료 장 보러 왔어.. 아가씨.. 라며 인사를 건넸다.


내가 점심시간이 되어 없을 때는 직원에게 여기 청경아가씨 어디 갔냐고 묻고

점심시간 지나고 오겠다고 나를 찾았고...

또 어떤 날은 내가 휴가 내어 부재일 때가 있었는데

그 노부부는 직원들에게 나의 행방을 물었고


다음 해 다시 찾아온 노부부는

지난번에 왔었는데 아가씨 얼굴 못 봐서 아쉬웠다며 반가움을 금치 못 했다.


그렇게

일 년.. 이 년.. 삼 년... 팔 년째

나는 이 노부부를 김장철에 만난다.


어느 날 노부부가 이제는 힘에 부쳐서 기차 타는 것도 조금은 버겁다고 이젠 자주

못 올 거 같다며 아가씨랑 정이 많이 들었는데.. 아쉽다고 눈물을 흘리며 내 손에는 요구르트 아주머니에게 사 온 윌 봉지를 쥐어주셨다.


나는 그 노부부에게 건강하시라고... 조심히 서울 올라가시라고... 꼭 김치거리 사러 아니더라도

가끔 맛있는 거 드시러 장 구경하러 오시라며 마지막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시죠?


고객님 덕분에 제가 익산 북부시장이 정말 전국에서 대단한 시장이구나 알게 됐어요.


김치철만 되면 가끔 고객님이 그리워집니다.


본인도 경찰 출신이었다고 말했던 아버님과 음식 솜씨가 참 정갈했던 어머니


항상 건강하시고 많이 웃는 날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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