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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시나물효원 Oct 10. 2024

텀블러 도둑 아줌마

우리 우체국은 가을철 수확이 끝난 후 타지에 있는

자식들에게 농산물을 보낸다고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날도 정말 금융 손님도 가득, 우편 손님도 가득

너무 정신없이 동분서주하며 고객들을 응대하고 있었다.


내 책상은 누구나 지나가는 곳에 있다 보니,

가끔 좋은 고객을 만나면 음료나 먹거리를 놓고 가고

가끔 밉상 고객을 만나면 본인의 쓰레기나

본인이 사용한 이쑤시개를 버리고 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경우가 종종 있기에 특히나 책상의 청결에

나는 많은 신경을 쓴다.


그날도 내 책상엔 옷 매무새를 살필 탁상용 거울과

수시로 물 자주 마시라며 친구가 스타벅스 1호 한정판

시애틀 텀블러를 선물로 줬기에 그 텀블러에

페퍼민트 차를 우려 놓았다.


여성 고객이 나를 부른다... 공과금 수납 하는 기계인지.. 나는 바쁜 와중에도 내 본연의 업무이기에

네 맞아요.. 고객님 혹시 공과금 수납 하는 거면

좀 도와드릴까요? 하고 여쭤보니 아니다 나는

그냥 구경하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말란다.


그렇게 정신없이 고객 응대가 끝난 후 잠깐의

여유가 생겨서 책상에 앉았다.


잠시 숨 고르기를 위해 차 한잔 마시려는데

내 텀블러가 보이지 않는다..

내가 텀블러 어디에 뒀지? 우편 쪽 책상과 휴게실

여기저기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 텀블러


대체 내 텀블러는 어디로 간 걸까?


한참 돌아다니며 텀블러를 찾아다니니

국장님께선 별 일 다 있다며 잘 찾아봐라고

하셨고 나는 퇴근 시간이 다되어가니 뭐지 뭐지만

외치다가 사무실을 나왔다.


며칠 뒤 한 고객이 CCTV 보자고 찾아왔고

CCTV를 확인하다가 나는 정말 깜짝 놀랄만한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나에게 그토록 말을 걸며 정신을 혼미하게 했던 분이

내 텀블러를 살짝 책상에서 집어 들더니

ATM기기 쪽으로 가서 검정 비닐봉지에 담고

홀연히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아뿔싸.


우체국은 그야말로 CCTV 사각지대는 없다는 걸

그 고객은 몰랐던 걸까?


국장님은 속상해하는 날 보며,

그냥 잊어버리라고 간식 사준다고 달래였다.

나는 소중한 텀블러를 잃어버린 것에 속이 상한 것도

있지만 한편으론 내가 얼마나 우스워보였으면

내 책상에 있는 물건을 가져갔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텀블러 가져간 분홍색 티셔츠에 검정바지 입은

60대 중반 여성 고객님

이제 텀블러 가져간 지  10년이라는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언젠간 제게 찾아와서 미안했다고

사과하는 모습 보여주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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