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런이유지 Jul 11. 2024

아침밥을 좀 먹어야겠어

오랜만에 집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바쁜 일정을 쪼개 한 동안은 동치미도 만들고 고추장도 만들어가며 집밥에 열과 성을 다하던 때도 있었다. 그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았기 때문일까. 어느 시점부터 나는 집에서 밥을 하지 않았다. 남편과 나의 하루 스케줄은 온전히 아이의 어린이집 시간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우린 등원시간 전에도 바쁘고 하원 후에도 바쁘다는 이유로 하루 두 끼 식사를 소홀히 했다.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간식과 밥을 먹으니 난 좀 덜 챙겨도 괜찮겠지 하는 게으른 마음이 지친 몸을 대신했다. 12시 오픈 시간은 정해져 있고 출근 후 오픈준비를 마칠 때까지 할 일이 많은데 앉아서 밥 먹는 시간이 늘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집에서 밥을 먹고 하루를 시작하면 좋을 텐데 그러려면 6시 30분에는 일어나서 식사 준비를 해야 한다. 아침 식사를 좀 더 빠르고 간편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 날 식사 준비를 어느 정도 해둬야 하지만 늦은 밤까지 야근을 하는 것이 일상인 내 생활에서는 힘든 일이다. 일 하느라 몸이 지치면 집밥을 더 필요로 하는 자아와 음식섭취 자체를 소홀히 하게 되는 두 자아가 번갈아 나타나게 되는데 최근엔 후자 쪽이었다.


그러던 중 며칠 전에는 본능에 이끌리듯 아침밥을 차려놓고 남편과 아이와 함께 둘러앉았다. 그냥 아침을 준비할만한 짬이 생겼고 체력이 따라줬던 날이었을 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거나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여기저기 음식을 흘리고 얼굴에 묻혀가며 밥을 먹는 아이와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며 식사를 하는데 한 동안 잊고 있었던 사소한 행복을 느꼈다.  갓 지은 밥과 국이 전부였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그날의 아침 식사가 힘이 되어준 것일까? 그 후로 다시 마트에 가서 식재료를 사고 냉장고를 채운다. 냉장고 구석에서 썩어가는 채소들과 곰팡이로 뒤덮인 오래된 반찬들을 꺼내 새로운 재료들로 빈자리를 채웠다. 도대체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오래된 무를 꺼내 소고기 뭇국을 해 먹고 싱크볼 안 도려낸 무 조각들을 정리하며 끼니를 소홀히 하던 근래를 함께 정리했다.


남편과 둘이서 가게를 꾸려가는 일은 언제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제는 아이가 많이 자라서 아이보다 가게일에 더 많은 힘을 쓰고 있는 느낌인데 그러다 보니 언제나 후순위로 밀려나있는 살림이 여기저기 아우성이다. 잡초가 무성한 가게의 앞 뒤 마당과 질서 없이 많은 물건이 뒤섞여있는 집안. 영업 공간을 제외한 모든 곳이 혼돈 그 자체이다. 휴일 전날이면 쉬는 동안 이거 해야지 저거 해야지 다짐만 하게 되는데 오늘은 수개월째 벼르고 있던 거실에 가득했던 아이의 장난감을 정리하고 많이 버리기도 했다. 처음엔 버리기 좀 아까운데 싶은 물건들을 따로 빼놓을까 하다가 이내 마음을 다잡고 과감하게 쓰레기봉투를 채워나갔다. 막상 정리를 해보니 걱정했던 것보다 오래 걸리지도 않았고 쓰레기가 많이 나오지도 않았다. 50리터 봉투에 모여있는 쓰레기 뭉치가 그동안 치워야지 치워야지 속으로만 품고 있던 마음의 짐이었다. 개운했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가 없어진 장난감을 찾을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우와 이제 놓을 곳이 많아졌다.”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진작 정리해주지 못했던 것이 미안할 지경이었다.


쉬는 날 대청소 하느라 함께 고생한 남편과 아이를 위해서 sns에서 눈여겨봐 두던 닭 전을 만들었다. 며칠 전부터김치냉장고에 보관 중이던 닭다리살을 작게 잘라 밑간을 하고, 양념을 만들어 전분을 섞어 전을 부쳤다. 뜨겁게 달궈진 팬에 고기를 올려 지글지글 냄새를 풍기고 나니 우리 참 잘 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이전글 잘 사는 기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