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형
"OO 씨 이상형은 어떻게 돼?"
결혼 적령기 시절 주변에서 흔히 듣는 말이었다. 그럴 때마다 내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참하고, 지혜로운 남자요."
보통 이렇게 말하면 '참하다'는 남성성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무언의 눈빛이 날아들었다. "요즘 세상에 그런 남자가 있을까…?"라는 질문이 뒤따르곤 했다.
20대 초반, 나의 기준은 외모가 최고였고, 중반에는 능력이었다. 그러나 능력은 뛰어났지만 인간성이 낙제점이었던 X와의 연애를 끝낸 뒤, 나는 이상형의 본질을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외적인 조건보다 성품, 그리고 10대 시절부터 동경해 온 자상함이 진짜 기준이었음을 깨달았다.
사회생활을 하며 남성들을 객관적으로 관찰한 결과, 나의 기준은 더욱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자리 잡았다.
‘참하고 성실하며 지혜로운 사람. 술 담배 유흥과 거리가 멀고 모임보다 가정을 중시하는 사람. 그리고 책 읽기를 즐기며 나보다 성숙한 사람’이라고 말할 때면,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했다. "차라리 조건을 보는 게 쉽겠는걸?!"
나 역시 그 말에 동의했다. 내가 찾는 그런 유니콘 같은 존재가 실제로 존재할 확률, 그를 만날 확률,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해 줄 확률까지. 이 모든 관문을 통과해야 가능한 기적 같은 일이라는 것을 현실적으로 알고 있었다.
연봉이나 학벌은 숫자로 명시되지만, 변하지 않는 성품은 측정 불가 영역이다. 주변에서 '쉬운 조건'을 찾으라고 할 때도, 나는 그 조건들이 오히려 더 모호하고 일시적이라 느꼈다. 내가 이상형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그 기준이 단순히 '나를 위한 이상'이 아니라 '내가 지향하는 삶의 방향'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결국, 그런 사람을 만날 확률을 높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 삶의 가치를 스스로 구현하는 것'이었다. 그 질문을 가지고 더 이상 밖을 탐색하는 대신 내 삶을 채우는 데 집중했고, 인연에 대한 조급한 간절함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무렵, 우연히 남편이 강의하는 곳에 지인의 일을 도우러 가게 되었다. (당시 남편은 여러 곳에서 강연, 강의를 하는 강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더 이상 누군가를 관찰하거나 분석하려는 의도가 없었다. 그저 내 일에 집중하며 낯선 공간에 머무르고 있었을 뿐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때 유니콘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어쩌면 이야기가 잘 통할 것 같은, 내가 지향하는 삶의 방향을 이미 살고 있을 것 같은 한 남자가. 그리고 그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