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우리의 인연이 시작된 날

by 이런이유지

그가 낯선 공간에 혼자 머물던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을 때, 나는 사실 좀 놀랐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강사인 그에게 그 당시 내 고민이었던 부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궁금한 것들을 좀 더 자세히 물어볼 수 있겠구나’라는 현실적인 계산이었다.


내 얘기에 집중하고 있는 그에게 청년창업센터 지원 준비 중이라고 밝혔고, 그는 과거 입주 경험을 이야기하며 관심을 보였다.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의 질문에 납득할 만한 깊이 있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통상적으로 낯선 이와의 대화는 묘하게 나의 조건을 떠보거나, 내가 가진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질문으로 흐르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는 ‘당신의 노력과 과정은 어떠했나?’를 묻는 듯한 태도였다. '숫자'가 아닌 '가치'를 헤아리는 사람의 언어였고, 이는 내 깊은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는 자신의 방으로 가더니 30권쯤 되는 노트를 두 팔 가득 안고 돌아왔다. 높이 쌓인 그 노트 더미는 나에게 마음을 움직이는 ‘가치’의 무게로 다가왔다. 나중에야 ‘나 이렇게 살아온 사람이다’라는 말을 건네고 싶었다는 그의 뜻을 알게 되었다.


30권의 노트 더미 앞에서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것은 노트 한 권, 한 권에 쌓인 시간의 무게였다. 나는 노트들을 보며 이 사람이 얼마나 성실하고, 자신의 삶을 얼마나 진지하게 대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평생 스스로를 깎아내리며 부족하다고 여겼던 그 '가치'가, 이 사람에게는 가장 소중한 '삶의 증명서'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늦은 밤까지 이야기는 이어졌다.


그는 나를 택시 타는 곳까지 에스코트해 줬다. 집에 도착하니 잘 도착했냐는 메시지가 왔고, 그렇게 남편과의 인연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