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 모아 티끌

by 이런이유지

남편과의 만남은 단순한 연애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나에게 부족한 핵심 노하우를 가진 사람, 혹은 나의 열등감을 건드리지 않는 좋은 사람과의 만남일 뿐이라고 가볍게 여겼다. 그러나 그것이 내 인생의 전부를 바꿀 대사건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나의 10대는 '성적 비교'에 짓눌렸고, 20대는 '외모와 취업'이라는 간판 경쟁으로 피로했다. 30대에 접어들자, 비교의 대상은 '능력과 자본'으로 바뀌었다. 삶의 모든 가치가 일렬로 줄 세워져 있었고, 단 한순간도 남들보다 낫다고 느끼지 못했으며, 그 끝은 늘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비하하는 악순환이었다.


어느 날 티브이에서 본 티끌 모아 티끌이라는 박명수의 조롱 섞인 명언이 내 마음속에 깊이 박혔다. 어차피 나의 작은 성취는 모아봐야 티도 안 나는 티끌이라 여기며, 비관을 습관처럼 굳혀가고 있었다.


40대가 된 현재, AI와 가상화폐 이야기가 주도하는 전 세계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여태껏 '내 능력의 한계'라며 벽을 느꼈던 세상의 모든 가치가 허물어지고 또다시 재정립될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직감한다. 이 변화의 물결 앞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한 출발점에 다시 세워진 듯한 느낌을 받으며, 새로운 삶의 방식을 고민하는 시점이다.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 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구태가 아니라 새로운 시야와 가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는 세상의 작동 원리나 정치에 대해서도 무지하여, 올바른 정치적 판단을 내릴 능력조차 스스로 없다고 여길 만큼 자신을 무능하게 평가하고 있었다. 선거 시기마다 벼락치기하듯 뉴스와 신문을 들춰봐도 단어가 생경하고 전체 흐름에 대한 맥락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또한 세상 돌아가는 사정은 시험 범위가 아니었기에 모두가 싸움이나 하는 '머리 아픈 이야기'라고 치부하고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다. '정답'을 맞추는 데 익숙했던 사고는, 정답이 없는 삶의 문제 앞에서 완전히 고장 나 있었다.


그의 노트 앞에서 받은 충격은, 남편이 그 노트들을 통해 '나 같은 사람도 스스로 길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그건 '나를 숫자로 증명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었고, 처음으로 엿본 새로운 시각이었다.


특히 그의 20대 이야기는 나에게 가장 결정적인 충격과 깨달음을 주었다. 남편은 20대 내내 피자 장사를 하시는 부모님을 도왔고, 대학생 때도 카투사 주말 외박 때도 피자를 만들고 배달하는 일에 청춘을 쏟았다. 장사에 대한 책임감으로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등교했고, 수업이 끝나면 곧장 가게로 향했다. 심지어 1박 2일 행사에서도 밤에는 다음 날 장사를 위해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대학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20대의 나는 장사하는 부모님 가게에 있는 것조차 부끄러워하며 일을 돕는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는데, 남편은 그 삶을 정반대로 살았던 것이다. 배달이 너무 많던 날, 헬멧을 쓰고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열심히 사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자랑스러웠다는 그의 말 앞에서 나의 굳어 있던 가치관은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남편의 사소하고 자잘한 노력이 단순한 노동을 넘어 실제로 가치 있는 성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고 느낄 때마다 혼란했다. 나에게는 아무리 모아도 티가 안 나는 '티끌'이라 여겼던 노력이, 이 사람에게는 이미 세상이 주목하는 '태산'의 재료가 되었거나, 최소한 그 재료를 성실하게 쌓아 올리는 방법이었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하루하루를 보면서, 평생 비웃고 무시했던 작은 성실함 이야말로 세상을 살아내는 가장 든든한 무기라는 걸 알기 시작했다. 내가 그렇게 믿었던 '티끌 모아 티끌'이라는 비관적인 공식이, 그의 서사 앞에서 논리적으로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