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살리는 살림살이를 시작합니다

by 이런이유지

논리적으로 비관 공식이 무너졌다고 해서 수십 년간 나를 지배해 온 ‘자기 비하’라는 깊은 습관까지 한 번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 가치를 끝없이 의심하고 헐뜯고 있었다.


연애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는 내가 스스로 무너트리려는 순간마다 나의 가능성을 믿어줬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들을 이야기하며 개인의 한계라고만 생각했던 많은 것들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알게 해 줬다. 연애를 시작할 무렵 일을 그만두고 다음 일을 찾을 때까지 방황하며 존재의 이유마저 의심하는 나에게 늘 해주는 단골 멘트가 있다.

“너 스스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내가 봤을 땐 누구보다 탁월한 면이 있어. 그 빛은 감추려 해도 감춰지지 않는 거야.”

괜한 자책에 마음이 슬퍼질 때,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왠지 힘이 나는 말이었다.


다른 시간과 공간에 살다
같은 공간과 시간에 살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속도와 생각을 존중하며
서로를 살리는 살림살이를 시작합니다.


남편이 고심해서 쓴 청첩장 문구였다. 그는 정말 9년째 생각 속도, 밥 먹는 속도, 움직이는 속도 등 나의 거의 모든 속도에 맞춰 함께하고 있다. 남편은 책을 너무 좋아하고, 독서가 삶의 습관이 된 사람이다. 하지만 정작 나는 아니었다. 스스로의 무기력에 빠져 종일 잠만 잘 때도 있었고, 휴대폰만 붙들고 시간을 흘려보내던 시기도 있었다. 그런데 그는 단 한 번도 나에게 ‘책 좀 봐라’, ‘뭐라도 해봐라’ 하는 등의 말들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함께 밥 먹고 일상을 사는 시간을 공유하며 지켜봐 줄 뿐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나를 덮친 무기력이라는 긴 터널을 안전한 속도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런 나를 평가하거나 재단하지 않았고, 나의 가치를 묵묵히 지켜주는 방패였다.

지루한 일상 사이에 ‘뭔가 하고 싶다’라고 한 번씩 입을 열 때면, 그는 누구보다 적극적인 지지자가 되었다. 현재도 사용 중인 컨벡션 오븐을 사게 된 계기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일련의 일들로 내가 쿠키를 구워서 판매해 보고 싶다고 말했을 때, 바로 클래스를 알아봐 주고 필요한 오븐을 사러 박람회에 나를 데려갔다. 우리의 통장 잔고가 얼마 남지 않던 시절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응원과 지지를 보내는 그만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들로 결국 그때 큰맘 먹고 샀던 그 오븐은 대략 3년이 넘도록 집에서 가끔 고구마나 구워 먹는 신세로 전락했다. 나는 쉽게 흥미를 잃었고, 또다시 방황했다.


남편은 방치된 도구에 대해 타박하지 않았다. 가끔 무언가를 만들 때마다 기쁜 마음으로 재료를 사다 주고 옆에서 보조와 카메라맨 역할까지 하며 사진도 찍고 영상도 남겨줬다. 그렇게 무겁고 커다랗던 오븐은 나의 무능함을 증명하는 물증이 아니라, ‘언젠가 빛을 볼 가능성’을 상징하는 존재로 주방 한 켠을 자리했다. 그리고 결국 그 컨벡션 오븐은 몇 년 뒤, 우리가 작은 케이크 가게를 오픈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씨앗이 되었고 우리의 생계가 되었다.


남편의 지지와 믿음, 그리고 나의 속도를 끝까지 존중해 준 인내심이 없었다면, 나는 꽤 오랜 시간 방치된 오븐을 보면서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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