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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다 Nov 28. 2019

INTJ와 ENFP의 연애

되게 안 맞는데 되게 잘 맞아


'아, 내가 말실수를 한 건가!' 하며 내적 갈등에 돌입하기 위해 시동 거는 그의 휴대폰을 재빠르게 받아 들었다. 번호 입력 후 통화버튼을 눌렀고, 모르는 번호가 번쩍이는 내 휴대폰 액정을 그의 눈앞에 흔들어 보였다. 그제야 안도하는 그 사람.


 꽁무니 빼듯 서둘러 단지를 벗어나는 스포츠카를 눈으로 배웅하고, 집 현관문을 열며 여동생에게 말했다.


나 결혼할 것 같아!


 여동생은 이내 '미치는 것에 남다른 소질이 있다.' 하는 눈빛으로 내 눈을 응시하다 별다른 대꾸 없이 시큰둥하게 고개를 돌렸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또라이가 아니다 보니 크게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 사람과 결혼할 것이다! 촉이 왔다.


 그와 나는 회사에서 하루 종일 카톡을 하고, 퇴근 후엔 잠들기 전까지 통화를 했다. 현재 우리 부부는 영혼까지 쥐어짜내도 각자의 입에서 자식 이야기밖에 나오지 않는데, 그 당시에는 시시콜콜 모든 게 이야깃거리였고 24시간이 모자랐다. 대화 패턴은 일관적이었다. 내가 개드립을 치면, 그가 너무 재밌다며 하하 호호 그저 실없이 웃는 식이었다. 예전 같으면 '참 싱거운 사람이네.' 생각했을 텐데, 희한하게 그 웃음이 편안했다.


 내 전전전 그 어디쯤 남자친구의 경우, 내 개드립에 더 막강한 애드리브로 받아쳐서 대화할 때 티키타카 참 재밌는 사람이었지만, 반면 내 지랄에도 막강한 지랄로 대응을 해왔다. 내가 화난 이유를 카톡으로 구구절절 설명하면, 내용의 1/3만 보이는 [전체보기] 버튼이 달린 카톡이 왔다. 전체보기를 누르기도 전에 이미 헤어지고 싶었다.



 부모님들은 자식이 환장할 행동을 할 때면 말씀하신다.


너랑 똑같은 자식 낳아 키워봐라.

 

 연애도 마찬가지다.

 나랑 똑같은 남자 만나면 조진다.


 보통,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외모가 점점 닮아간다 생각하지만 실험에 따르면, 나와 닮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한다. 매일 보는 거울 속 내 얼굴과 가장 흡사한 사람의 외모에 끌린단다. 거지발싸개 같은 연애를 거쳐 [연애 실패 데이터]가 잔뜩 쌓인 나는, 나와 외모는 닮되, 성격은 정반대인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고 이 사람이 그 사람이구나!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일주일간 유선상으로만 연락을 주고받다, 주말에 첫 데이트를 했다. 이촌동에서 초밥을 먹고, 석촌호수에 떠 있는 러버덕을 보러 자리를 옮겼다. 결혼 전까지만 해도 온갖 아기자기한 소품을 사랑했던 나는, 귀여운 러버덕을 관람하느라, 결혼씩이나 할 예정인 사람에게 꽤 무심했다. 그는 자신을 어필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지만 번번이 러버덕에 밀려났다.



 며칠 후, 그는 작은 러버덕 한 마리를 품속에 안고 집 앞으로 찾아왔다. 오리를 인질로 삼아, 교제하자고 고백했다. 러버덕으로 내 시선을 빼앗으면 그 시선 끄트머리에 나란 사람도 얻어걸리겠지 생각하는 듯했다.


 작가 사인이 담긴 리미티드 에디션 러버덕을 구하지 못해 본인 사인을 해보았단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황급히 오리를 뒤집어보았다. 다행히 러버덕 본체가 아닌 포장지에 사인해 놓았다. 안심했다. 허술함 속에 담긴 그의 배려가 좋았다. 결혼은 할 거지만 교제에 대한 확답은 내일 주기로 했다.


 정말이지 의미 없는 밀당이었다. 나는 사귀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기에,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 반복하다가 12시 땡 하자마자 '알겠다.'라고 답장을 보냈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간으로 돌아가 29세의 내 멱살을 잡고 정신 차릴 때까지 흔들고 싶다.)


 내친김에 그는 커플링을 하자고 제안했다. 안쪽에는 인상 깊은 문구를 새기자며, 뭐 좋은 아이디어 없냐고 묻는다.


전자발찌 느낌 살려서,
'전자반지' 어때요?


 나는 제안했다.

 그 사람은 물개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그 모습이 참 따뜻했다.


전자반지, 철컹철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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