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손에 쥔 커피 한 잔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전제 조건이 됐다. 커피 없이 하루를 시작하라는 말은, 회사에서 노트북 없이 일하라는 말만큼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최근 커피값 인상과 원두 수급 이슈가 뉴스에 오르내릴 때마다 직장인들의 반응이 유독 예민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커피는 더 이상 음료가 아니라 회사생활을 지탱하는 구조물에 가깝다.
회사에서의 첫 회의는 회의실이 아니라 커피 머신 앞에서 열린다. 누가 먼저 출근했는지, 오늘 일정이 얼마나 빡센지, 상사의 기분은 어떤지까지 커피를 내리는 몇 분 사이에 공유된다. 이 짧은 대화가 하루의 분위기를 결정한다. 커피는 말을 트게 만드는 장치이자 조직의 온도를 확인하는 리트머스 종이다.
탕비실에 어떤 커피가 놓여 있는지는 회사의 철학을 은근히 드러낸다. 이름 없는 믹스 커피만 가득한 회사와 캡슐 머신을 들여놓은 회사는 직원에 대한 기대와 관리 방식이 다르다. 물론 비싼 커피가 곧 좋은 회사라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다만 직원의 피로를 비용이 아닌 관리 대상로 보는지 여부는 커피에서 드러난다.
정식 회의보다 커피를 마시며 나눈 이야기가 더 큰 결정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팀 이동, 프로젝트 참여, 새로운 기회는 대부분 커피타임에서 암묵적으로 논의된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은 이 흐름에서 자연스럽게 소외된다. 그래서 커피를 좋아하지 않아도 커피를 마시는 척을 해야 하는 회사가 생긴다.
정전이나 머신 고장으로 커피가 끊기면 사무실의 공기가 달라진다. 집중력은 급격히 떨어지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늘어난다. 이때 드러나는 것은 개인의 카페인 의존이 아니라 회사의 업무 구조다. 커피로 버티는 시스템인지, 아니면 커피가 있어도 없어도 돌아가는 시스템인지가 명확해진다.
모두가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되는 회사는 어떤 모습일까. 충분한 휴식, 현실적인 일정, 불필요한 야근이 없는 문화라면 커피는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회사들은 커피로 부족한 구조를 메우고 있다. 커피를 줄이자는 말보다 커피가 필요 없는 환경을 만들자는 말이 먼저 나와야 한다.
회사에서 커피는 사소해 보이지만 가장 솔직한 지표다. 커피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 회사라면, 그 회사는 이미 많은 것을 커피에 외주 주고 있는 셈이다. 오늘도 커피를 마시며 일을 시작했다면, 그 커피가 나를 깨우는지 아니면 시스템의 허점을 덮고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