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직후, 가방을 내려놓고 가장 먼저 탕비실로 향한다. 물을 마시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거울을 보기 위해서다. 탕비실 한쪽 벽면에 걸린 작은 거울 속에는 집에서의 내가 아닌, '사원증을 목에 건 나'가 서 있다. 부은 눈을 가리기 위해 안경을 고쳐 쓰고, 흐트러진 넥타이나 셔츠 깃을 바로잡는다. 거울 속의 이방인에게 묵직한 응원을 건네는 시간이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말고 상처 주지 말자고.
점심 식사를 마치고 양치를 위해 탕비실로 모여든 사람들 틈에서 다시 거울을 본다. 동료들과 수다를 떨며 웃고 있지만, 거울에 비친 내 눈동자는 피로함이 가득하다. 입가에 묻은 음식물을 닦아내며, 오후 회의에서 보여줄 '자신감 있는 표정'을 연습해 본다. 탕비실 거울은 사회적 가면을 수선하는 수선소다. 우리는 그 짧은 순간 동안 자신의 표정을 검열하고, 다시 전장으로 나갈 준비를 마친다.
업무에 치여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문득 들른 탕비실에서 마주한 거울은 잔인하다. 기름진 얼굴, 헝클어진 머리, 그리고 무엇보다 생기를 잃은 눈빛이 나를 응시한다. "너 여기서 뭐 하고 있니?"라고 묻는 것만 같다. 화려한 커리어를 꿈꿨던 과거의 나와, 오늘 처리해야 할 엑셀 데이터 사이에서 갈등하는 현재의 내가 거울 속에서 충돌한다. 그럴 때면 찬물로 세수를 하며 비겁한 위로를 건넨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거라고.
드디어 퇴근 시간, 마지막으로 탕비실에 들러 컵을 씻는다. 거울 속의 나는 아침보다 훨씬 지쳐 보이지만, 한편으론 가벼워 보인다. 하루의 임무를 마쳤다는 안도감이다. 거울에 비친 탕비실 풍경은 고요하다. 낮 동안의 소란함은 사라지고 정수기 돌아가는 기계음만 남았다. 내가 떠난 자리에 누군가 또 들어와 거울을 보며 자신을 다독일 것이다. 탕비실 거울은 수많은 직장인의 애환을 묵묵히 기록하는 저장소와 같다.
어쩌면 탕비실은 회사에서 유일하게 자기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공간인지도 모른다. 책상 앞에서는 모니터만 보고, 회의실에서는 상사만 봐야 하지만, 탕비실에서는 잠시나마 거울을 통해 나를 볼 수 있다. 그 짧은 대면이 우리를 인간으로 남게 한다. 비록 거울 속의 모습이 초라할지라도, 그 안의 내가 여전히 꿈꾸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 탕비실은 단순한 공간 이상의 안식처가 된다. 오늘도 수고 많았다는 말 한마디를 나 자신에게 건네며 탕비실 불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