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이 남긴 영수증과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by 숫자의언어

시간이라는 가장 비싼 비용

야근을 하면 수당이 나오기도 하고, 택시비를 지원받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지불하는 가장 비싼 비용은 바로 '시간'이다. 한 번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오늘 나의 저녁 시간. 그 시간 동안 나는 책을 읽을 수도, 운동을 할 수도, 사랑하는 이의 눈을 맞추며 이야기할 수도 있었다. 야근 영수증에 찍히지 않는 이 무형의 가치들을 우리는 너무 쉽게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시간의 가치를 인식하는 순간, 야근은 더 이상 당연한 일상이 아니게 된다.

관계의 유통기한을 줄이는 일

"미안해, 오늘 야근이야." 이 한마디에 취소된 약속들이 쌓일수록 관계의 온도는 내려간다. 친구들의 모임에서 소외되고, 가족들의 대화 주제에서 멀어지는 것은 야근이 가져다주는 잔인한 결과다. 사회생활을 잘하기 위해 야근을 하지만, 정작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무너지고 있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 일은 대체 가능하지만, 관계는 대체 불가능하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잘하겠다는 말은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지금 당장 곁에 있는 사람을 챙기는 것이 야근보다 중요하다.

건강이라는 이름의 적금 깨기

야근은 건강이라는 적금을 야금야금 깨서 쓰는 것과 같다. 불규칙한 식사, 수면 부족, 만성 스트레스는 몸에 고스란히 저장된다. 당장은 젊음으로 버틴다고 하지만, 어느 순간 몸은 정직하게 신호를 보낸다. 뒷목이 뻣뻣해지고 소화가 안 되며 이유 없이 무기력해지는 증상들은 몸이 보내는 마지막 경고다. 건강을 잃고 얻은 성과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병원 침대에 누워 지난날의 야근을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내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사라진 취미와 메말라가는 영혼

예전에는 좋아하던 것들이 많았다. 영화를 보고, 악기를 배우고, 정처 없이 걷는 것을 즐겼다. 하지만 야근이 일상이 된 지금, 퇴근 후 내 유일한 취미는 유튜브를 멍하니 보다 잠드는 것뿐이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할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다. 취미가 사라진 삶은 단조롭고 건조하다. 나를 정의하던 수많은 수식어가 사라지고 '회사원'이라는 단어만 남았을 때의 상실감은 크다. 영혼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야근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정한 워라밸을 위한 투쟁

워라밸은 누가 거저 주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쟁취하고 지켜내야 하는 영역이다.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불필요한 회의를 줄이며, 상사에게 당당하게 의견을 개진하는 모든 과정이 워라밸을 위한 투쟁이다. 야근을 줄이는 것은 단순히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내가 행복해야 일도 즐겁고 성과도 난다. 오늘 나의 정시 퇴근이 누군가에게는 도전이 되고, 언젠가는 우리 모두의 당연한 권리가 되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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