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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일상잡담 20화

긴 연휴, 엄마 반 나로 반 살기

by eunjoo


올해 추석 명절 연휴는 자율휴업일이 더해져서 무려 10일을 쉬게 되었다. 여느 때와 달리 긴 연휴를 맞이하며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기대는 업무에서 벗어난 그 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활용할 수 있겠다는 모처럼 얻은 여유에 관한 것이었다. 우려는 10일 동안 가족들 끼니 걱정이었다. 아침 점심저녁 하루 세끼 밥상을 어떻게 차려야 할지 부담이 컸다.

우선 연휴 동안에 해야 할 개인적인 일과 집안일을 정리해 봤다. 현재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개인적인 일은 책을 읽고 서평을 올리는 블로그 작업이다. 집안일은 삼시 세끼 집 밥과 미리 사놓은 마늘 100접 까고 다져서 얼려놓기, 크게 두 가지였다.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몇 권 구입했고, 메뉴를 구상한 대로 스무 끼 집 밥에 필요한 식재료를 로컬 마트와 온라인 장보기로 주문했다.

책을 비롯해서 하나둘씩 도착하는 물품들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10월 2일이 되었다. 서평을 위해 사무실에 놓고 사용하는 독서록과 메모장을 챙기고, 컴퓨터와 커피포트 전원을 끄고 문단속도 꼼꼼히 하고 퇴근을 했다. 챙겨간 물건들을 집에 놓고, 알레르기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왔다. 병원은 집에서 도보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가깝기도 하고 20년 넘게 다니는 곳으로 우리 가족 건강 상태를 속속들이 알고 있어, 이제는 주치의 같다. 3년 전 수술 후에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져서 조금만 무리했다 싶으면 알레르기가 온몸으로 올라온다. 긴 연휴 덕분에 열흘 공백이 생기니, 학사 일정이 댕겨졌다. 하루에 한 두 개씩 처리하던 업무를 세네 개씩 처리하다 보니, 증세가 심각해졌다.

병원 처방까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하고 드디어 연휴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오늘이 10월 7일, 정확히 연휴의 절반이 지났고, 이제 5일 남았다. 하지만 사놓은 책 가운데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했고 서평 하나 올리지 못했다. 아침 먹고 부엌 치우고 커피 한 잔 타서 책 몇 장 읽으면, 점심때가 되고, 몇 장 더 읽으면 또 저녁 먹을 때다. 하루를 정리하고 나면 어느새 밤 9시가 훌쩍 넘었다.

가족을 위해 건강하고 맛있는 한 끼를 준비하는 일은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마인 내게는 소중하다. 엄마가 아니라 어떤 가족 구성원이더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그에 못지않게 내 미래를 준비하는 일 또한 소중하다. 내 삶을 위한 일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홀로 선 우리가 만나 단단한 하나가 되는 가족을 위한 일이기도 하니까.

내가 만약 엄마가 아니라 다른 가족 구성원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엄마가 밥을 하는 그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았을까? 직장에서는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으면서, 집에서는 자꾸만 엄마이기 이전에 ‘나’라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는다. 남은 5일은 은주도 챙겨야겠다.


by eunjoo [브런치 연재 에세이 <일상 잡담> 제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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