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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일상잡담 19화

담아? 말아! 일단 주문부터

연재 에세이 <일상 잡담> 제19화.

by eunjoo


오늘 아침에도 삼십 분 넘게 똑같은 일을 반복했다. 지지난주부터 장바구니에 담아 놓았던 것을 넣었다 뺐다 다시 담기를 몇 차례 거듭했다. 책을 본격적으로 구입하기 전에 의식 치르듯 하는 새로운 습관이다. 스무 권 넘게 장바구니에 들어 있던 책이 열 권 남짓으로 줄었다. 막상 구입하려고 하니, 가격이 만만치 않다. 한 권에 보통 18,000원 정도 하는 책들인데다, 30,000원 가까이 되는 책도 두 권 정도 있었다.

이번 주 금요일부터 시작되는 긴 연휴를 대비해서 구입하려고 모아놓은 책들이었다. 책 읽는 것 못지않게 책 자체를 좋아해서,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을 하다가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우선 구입하고 본다. 구입해서 책장에 꽂아 놓은 책들 가운데 절반은 읽지 않은 책들일 정도로 책 욕심이 많다. 더구나 전자책이 아닌 종이책 독서를 즐기기 때문에 한 해 책 구입비가 적잖게 들어간다.

알라딘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한 내 이력을 재미있는 통계로 만들어 준 것이 있다. “8189일 동안 알라딘 서점에서 구입한 책 1,286권으로 상위 0.114%, 건물로는 5.66층에다 결제한 금액은 18,589,530원”이라는 통계였다. 22년 동안, 책으로 옥탑이 딸린 5층 건물을 세운 셈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한 결과, 비록 책으로 만들었지만 조물주보다 힘이 세다는 건물주가 된 것이다. 그 사이 중고책방에 되팔아서 챙긴 수익도 꽤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읽지 않은 채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볼 때마다 미뤄둔 숙제처럼 여겨져 마음이 불편하다. 아쉬움이 컸지만 책 나눔도 하고 눈에 띄지 않게 여닫이문이 달린 책장을 사서 그 책들을 보관해 두기도 했다. 책이 줄어들면 어느새 그만큼 또 다른 새로운 책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특단의 조치로 선택한 것이 바로 장바구니에 담았다 빼기를 반복하는 방법이었다. 일단 구입하고 싶은 책을 장바구니에 모두 담아두고, 3~4일 씩 간격을 두고 2주 정도 살펴보는 거다.

마지막 순간까지 장바구니에 담겨 있는 책들은 2~3주 후에 구입을 하는데, 양이 다섯 권이 넘을 경우에는 관심이 많은 책 순서대로 다섯 권을 먼저 구입하고 나머지는 다시 담아 놓는다. 이런 방법으로 책 값 다이어트는 물론 읽어야 하는 부담도 확연히 줄일 수 있었다. 앞으로는 상위 0.1%도 5층 건물주도 될 수 없겠지만, 현명한 소비자는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많이 읽어라. 그러나 많은 책을 읽지는 마라. Read much, but not many books.” 벤자민 플랭클린의 말을 되새기며 오늘도 나는 책을 구입했다. 독서도 결국 좋은 습관을 길러가는 과정, 그런 게 아닐까.


IMG_9177.JPG by eunjoo [브런치 연재 에세이 <일상 잡담> 제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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