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연재 <딸의 엄마로 살아가는 일> 제5화
“아니, 저걸 진짜 애 혼자 다 했나 봐요!”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여름 방학 과제로 제출한 모형 집을 신기한 듯 한참을 쳐다보던 같은 반 친구 엄마가 내게 물었다. 딸이 몇 시간 동안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혼자 뚝딱뚝딱하더니 만든 집이라고 했다. 그런 것 같다며 그 엄마는 무슨 재미있는 볼거리라도 되는 냥 눈을 동그랗게 뜨고 딸이 만든 집을 이리저리 살폈다. 풀칠로 마무리하는 게 힘들다고 딸은 내게 대신해주면 안 되냐고 물었다. 네 숙제인데 어른 솜씨는 한눈에 티가 나서 선생님께 꾸중을 들을 거라며 스스로 할 수 있는 만큼 해보라고 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딸이 다 만들었다고 보러 오라며 나를 자기 방으로 불렀다. 딸이 만든 집은 8절지 크기의 마분지 위에 만든 지붕이 없는 단층집이었다. 도화지로 네 벽을 세우고 방과 화장실 부엌, 거실로 내부를 구분해 놓은 원룸 형태였다. 도화지로 만든 벽에는 창문을 두 개 뚫어 놓았고 색종이로 가구를 만들어 놓았다. 방에는 침대, 부엌에는 식탁과 의자, 거실에는 텔레비전, 누가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친절하게 명칭까지 연필로 다 적어놓았다. 딸이 만든 집을 보면서 ”얘는 머리 굴리는 게 보통이 아냐! 아주 세상을 찜 쪄 먹을 애야”라는 우리 엄마 신 여사의 말이 생각났다.
딸이 도화지와 색종이로 만든 집은 신 여사의 확신을 여실히 입증해 주었다. 똑똑한 딸이 풀 대용품으로 찾아낸 접착제는 스카치테이프였다. 풀칠은 끈적거리고 손에 묻어서 불편하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도와달라던 딸은 간편한 스카치테이프를 사용해 일사천리로 작품을 완성한 것이었다. 벽에 창문은 말할 것도 없고 집안을 장식한 가구들은 삐뚤빼뚤한 모양을 한 채 스카치테이프 칠갑을 하고 있었다. 딴에는 엄마에게 자랑하려고 보여줬을 텐데, 잘했다는 말은 도무지 나오질 않았고 ‘해 줄 걸 그랬나.’하는 후회만 맴돌았다. 공부를 잘하니까 뭐든 잘할 거라고 기대했었던 것 같다.
그래도 딸이 마음 상할까 싶어 “숙제를 끝까지 해낸 거 너무 잘했어.”라고 한마디 건넸다, 개학식 날 아이 혼자 들고 가기에는 무리라 교실까지 들어다 주었다. 선생님은 복도 사물함 위에 아이들 숙제를 전시해 놓았다. 아크릴로 만든 집체부터 완제품을 연상케 하는 정교한 가구들과 글루건 마무리까지, 10살 아이가 만든 거라고 보기 힘든 작품들이 꽤 있었다. 딸이 서툴게 가위로 오리고 스카치테이프를 붙여 만든 종이 집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 엄마는 아이가 할 수 있는 게 있고 부모가 해줘야 하는 게 있다며, 다음에는 나도 좀 도와주라며 다들 그렇게 한다고 했다. ‘다들 그렇게 한다고.’ 생각이 많아졌다.
특별한 원칙을 정해놓고 아이를 키우지는 않았지만, 외동인 딸이 우리가 없는 세상에서도 씩씩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소망은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일은 스스로 결정하고 해낼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키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초등학생이 되면서부터 일기 쓰기를 비롯한 모든 숙제는 혼자 하도록 했다. 어휘 뜻이라든지 수학 문제 풀이 같은 경우에는 사전 찾는 방법을 가르쳐 주거나 교과서 설명을 이해될 때까지 읽어보도록 했다. 그런 아이를 주변 사람들은 안쓰러워하면서, 내게 엄마가 너무 융통성 없는 거 아니냐고 했다. 여름방학 집 만들기 숙제를 계기로 시작된 고민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욱 커졌다.
여전히 딸의 과제는 딸의 몫이었고 한 번도 도와준 적이 없었는데, 중학교 2학년 때 내 마음을 흔드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딸은 기술·가정 시간에 수행평가로 잠옷 바지를 만들어야 한다며 걱정이라고 했다. 내 마음 또한 걱정으로 요동쳤다. 그도 그럴 것이 딸과 내가 판박이처럼 닮은 데가 있으니 바로 손재주가 별로 없는 곰손이라는 점이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니 동네 세탁소에 맡기라고 했다. 수예나 바느질 수행평가는 다들 그렇게 한다며 너무 표 나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하면 된다는 팁까지 알려줬다.
친구 이야기를 들으니 나만 다른 세상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몇 날 며칠을 밤잠을 설치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모두 그렇게 한다는 데, 딸이 그렇게 원하는 학교에 가는데 도움이 될 텐데 뭘 망설이냐는 목소리와 떳떳하지 않은 일이 무슨 자식의 인생에 도움이 되겠냐며 길게 보라는 목소리가 내 안에서 뒤섞였다. 딸이 스스로 하게 하자니 왠지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았고 맡기자니 부끄러웠다. 아이의 인생 보다 성적과 성취에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닌지 이게 시작이라면 끝이 없을 거라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되돌아보았다. 내가 딸에게 하는 양육방식은 신 여사가 우리 남매를 키운 방식과 닮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뜰수록 코가 하나씩 더 생기는 목도리를 수행평가 과제로 뜰 때도, 잘 다니던 직장을 친구에게 넘겨주고 유학을 떠난다고 했을 때도, 겨울날 뜨끈한 아랫목서 신 여사가 맛있게 만든 쑥버무리를 먹으며 진지함은 일도 없이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고 했을 때도. 신 여사는 대신해주지도, 왜 그랬냐고 묻지도 않았고 무조건 오케이였다. 훤한 대낮에 동네 정육점에 고기 사러 간 서른 살 넘은 딸이 여름 장마에 내리치는 천둥소리에 놀랄까 봐 우산도 없이 정육점으로 뛰어온 신 여사였지만 모든 일은 스스로 하게 했다.
그토록 자식에 대한 사랑이 깊었던 신 여사가 무한한 신뢰를 내게 보여줄 수 있었던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내가 잘해서 나에 대한 믿음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라는 의문이 생겼다. 물론 나는 신 여사의 그 믿음으로 인해 자신감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지만, 나에 대한 믿음 말고 신 여사 스스로 간직한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아이의 단단한 미래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건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고 보니, 신 여사의 그 무언가는 자신의 마음을 굳건하게 다지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무소의 뿔처럼 남에 말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용기 말이다.
변함없이 기술·가정 수행평가는 딸의 손으로 완성되었다. 고무줄이 들어가야 할 허리 부분에 커다란 옷핀이 꽂힌 파자마를 내게 선물로 줬고, 덕분에 나는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었다. 딸아이는 한 번도 힘들다는 대학 입시를 7번 치르며 자신의 길을 힘차게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