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연재 <딸의 엄마로 살아가는 일> 제 6화.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을 타인에 의해 발견하는 순간이 있다. 경우에 따라 유쾌하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하다. 단번에 수긍이 되기보다 생뚱맞을 때가 더 많기도 하고 대개 얼마쯤 시간이 지나면 기억나지 않는다. 좋은 소리든 나쁜 소리든 마음에 오래 담아두지 못하는 성격 때문일 터.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조문 온 대학동창 정주를 오랜만에 만났다. 그때 정주가 한 말이 20년이 흐른 지금도 어제 들은 말처럼 생생하게 기억된다.
출석번호가 붙어있는 나와 정주는 전공 시간에 앞뒤로 앉는 횟수가 잦아지며 친해져서, 하루가 멀다 하고 붙어 다니던 친구였다. 내가 육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면서 몇 해를 못 보고 지낸 터라, 헤어지기 섭섭해서 조문을 마친 후 장례식장 근처 카페로 갔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시간을 거슬러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캠퍼스 라이프를 소환하기에 이르렀다. 풋풋했던 그 시절에 대한 회상으로 시간이 가는 것도 잊은 채 수다삼매경에 빠졌다. 약속한 시간이 지나도 집에 도착하지 않는 엄마가 걱정된 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반가운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하느라 조금 늦어질 것 같다는 말끝에 늘 하던 대로 딸에게 “사랑해, 강아지”라며 통화를 마쳤다. 그 순간, 못 들을 소리라도 들은 것 마냥 양손으로 자신의 귀를 감싸던 정주가 던진 “얘가 왜 이렇게 간사해졌어.”라는 한 마디였다. 대학 때부터 친자매란 오해를 살 만큼 허물없이 지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모습에 얼마나 당황했는지. 천성이 어떻게 바뀌겠냐며, 곰살맞은 딸의 엄마로 살다 보니 곰 같은 내 입에서도 그런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변명을 했다. 내 입에서 나오는 사랑이란 말이 마치 아양 떠는 것처럼 느껴졌나 보다.
쑥스러워서 감정 표현을 잘 못하는 성격인지라, 없으면 못 살 것 같이 좋고 한없이 고마운 엄마에게도 임종 직전에야 겨우 “내 엄마가 되어줘서 고마워. 사랑해, 엄마”라고 할 수 있었다. 딸이 아기일 땐 집안 어른들 앞에서 대놓고 예뻐하지도 못했다. 말이 늦었던 딸은 네 살이 되면서 말문이 트이더니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 사랑해”, “엄마 고마워”라는 말을 내게 해줬다. 온 힘을 다해 그 말을 내게 건네는 딸의 살가움이 내게 전염되었을까. 어느새 딸에게만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랑한다는 말을 들려줄 수 있었다.
딸에게만 들려주던 그 말이 한동안 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딸이 중학교 2학년 무렵,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듯 대화가 되지 않았다. 내 궁금증은 딸에게 간섭으로, 말하기 싫다는 딸의 말은 나에 대한 무시로 받아들여졌다. 딸에 대한 마음의 문이 조금씩 닫히면서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이 어색했다. 한창 감수성이 풍부한 시기에 혹여 잘못될까 싶어, 종이에 적힌 글씨로 대신 그 말을 딸에게 전해졌다. 그때는 표정을 감출 수 없는 말보다 내 마음이 그대로 노출되지 않는 글이 편했다. 딸에게도 그 편이 더 좋을 거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던 것 같다.
몇 해가 지나고, 딸은 진로와 친구 관계에 대한 고민으로 힘들었다고 당시 심경을 털어놓았다. 딸의 책상에 며칠째 같은 페이지가 펼쳐진 채 있는 문제집을 보면서 섭섭했던 마음, 말수가 줄고 어두워진 딸의 표정을 사춘기라 그렇다고 오해했던 마음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그래도’,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그때는 이 세 마디가 내 마음을 온통 삼키고 있어, 다른 말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엄마이기 이전에 딸이 의지하고 인생을 배울 수 있는 어른이라는 것을 잊고 산 세월이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딸에게도 그 세 마디는 똑같지 않았을까.
요즘 나는 다시 딸에게 “사랑해, 고마워”라는 말을 건넨다. 천성이 살가운 딸은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바로 “사랑해, 고마워 엄마”라고 화답한다. 딸의 표현에 나는 가끔 “오케이”란 말로 답하기도 하는 데, 딸은 기어코 내 입에서 “사랑해 고마워 딸”이란 말을 나오게 만든다. 소원했던 세월만큼의 시간을 들여 서로의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우리는 다시 가까워졌다. 먼 길을 돌고 돌아, 웃는 얼굴로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기에 최선을 다해 딸에게 다정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