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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oo Nov 06. 2023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사회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고, 책 서평

마이클 샌델이 들려주는 

공정과 능력주의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 : What's the Right Thing to Do?)로, 2010년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에 정의의 열풍을 일으켰던 하버드 대학교 교수 마이클 샌델. 그가 10년 만에 '공정'이란 키워드를 들고 독자들을 찾아왔다.  



《공정하다는 착각》


2020년 와이즈베리 출판사에서 펴낸 이 책은 미국 사회에 대한 샌델의 깊은 고민에서 저술되었지만, 이 시대 수많은 나라에 적용이 가능한 인문학 도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마치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을 대변하는 것 같다.            


원제는 <The Tyranny of Merit: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  ‘능력주의의 폭정 : 과연 무엇이 공동선을 만드나?’이다. 샌델은 이 책에서 미국의 능력주의를 A부터 Z까지 샅샅이 해부한다. 


저자 마이클 샌델은 이 책에서 “기회는 공평하고, 능력은 마음껏 펼칠 수 있고, 능력에 따른 성과 분배”라는 능력주의 신화가 이상이 아니라 폭정이었음을 이야기한다. 마침내 드러난 능력주의의 민낯을 마주하며 독자들은 샌델이 던지는 화두, 공정에 대한 고민과 함께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책의 내용 & 메시지


공정은 능력주의와 공존할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이 둘은 근본적으로 공존할 수 없는 관계다. 능력주의가 추구하는 것은 사다리를 통한 계층 이동이지 평등이 아니기 때문이다. 능력주의라는 말은 1958년 마이클 영의 저서 ≪능력주의의 등장≫에서 처음 등장했다. 


계급체계가 붕괴되는 시점에서 영은 2033년 미래 사회에서 발생할 계층과 그로 인한 불평등을 우려하며 이 책을 썼다. 영의 능력주의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로서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영의 우려는 197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출현으로 야기된 불평등으로 인해, 기우가 아닌 현실이 되었다. 


능력주의에서 비롯된 불평등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능력주의 옹호론자들은 그렇다고 대답한다. 모두가 공평한 조건에서 경쟁한다면 그 결과는 정당하다는 것이다. 덧붙여 경쟁에서도 승자와 패자는 나온다고 말한다.(p.199) “가진 능력을 힘껏 펼쳐 성공하면 그에 따른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능력주의 옹호론자들이 말하는 이것이 능력주의의 핵심이다. 


하지만 문제 제기는 결과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것처럼 모두가 같은 지점에서 “공평한 조건에서 경주를 시작하는가?”라는 출발 조건에 대한 문제 제기다.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직업과 기회가 능력에 따라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불평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말로 그들이 말하는 공평한 출발선이 존재한다면 모를까. 


“능력주의에서 중요한 건 “모두가 성공의 사다리를 오를 평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다리의 단과 단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는 문제가 안 된다. 능력주의 이상은 불평등을 치유하려 하지 않는다. 불평등을 정당화하려 한다.”(p.199)         


by eunjoo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와이즈베리, 2020]


능력주의와 명문대 입시부정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2019년 3월, 미국에서 발생한 중산층을 비롯한 기득권층 자녀의 대학입시부정 사건은 지금 우리 사회와 너무도 닮았다. 윌리엄 싱어는 이를 통해 8년 동안 2,500만 달러를 벌었다고 한다. 기부입학제도가 실시되는 미국에서 조차, 명문대 합격을 위해 소위 옆문 뚫기라는 싱어의 대입부정사업이 번창한 것이다. 


자신들이 가진 부(富)와 함께 능력주의의 지표가 되는 명문대 간판을 통해,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공고히 하려는 탐욕이 빚어낸 결과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대학입시부정사건은 기회의 공평이란 말 뒤에 숨은 능력주의의 허구성과 능력주의를 지탱하고 있는 학력주의의 허상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 사건을 통해, 사람들은 사건이 지닌 불법성이 아니라 “누가 앞서 가고 있으며, 그것이 왜 허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경제적 불안이 전부는 아니다. 싱어의 고객들은 자녀가 사회적 하향선을 타지 않도록 막는 것 말고도, 또 다른 목적에서 지갑을 열었다. 그보다 덜 민감하지만 더 의미심장한 목적이었다. 자녀가 명문대 간판을 달도록 함으로써 그들은 ‘능력주의의 광채’를 두르려고 한 것이다.”(pp.35~36) 


자신의 재산은 물론 지위를 대물림하기 위해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의 이러한 행위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아이들에게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 긍지를 빼앗는 결과를 초래한다. 누가 부정으로 따낸 자격에 자부심을 느끼겠는가?  


by eunjoo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샌델, 와이즈베리, 2020] 


능력주의 사고방식은 


성공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반면, 실패하거나 불운을 겪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냉정하다. 미국의 42대 대통령 클린턴은 “자신의 책임이 아닌 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만 혜택을 받는 복지정책”(p.114)을 제안했다. 2023년 가을 연고전에서 논란이 된 원세대와 조려대를 아는가?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원주)와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조치원)를 빗대어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나는 죽어라 노력해서 여기를 왔는데, 그러므로 나의 지위는 능력으로 보장받는 것이 정당하다는 생각”(p.106)이 만든 사회 병폐 가운데 하나다.   


능력주의 경쟁에서 고등교육은 신분상승과 더불어 물질적 성공, 사회적 존중을 약속한다. 모든 사람에게 신분 상승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전제 아래, 성공한 사람은 자신이 이룬 결실을 누릴 자격을 부여받는다. 우리나라에서는 학벌주의로 표현되는 학력주의와 능력주의가 직결되는 지점이다. 


로써 능력이 편 가르기와 성과 독점, 승자라는 오만함과 계급을 형성하고 세습하는 수단으로 전락한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견고히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들이 선택한 것이 대학입시라고 샌델은 주장한다.



평가 & 마무리


그렇다면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사회는 어떻게 가능할까?      


이 책에 수록된 사례와 주장을 통해, 샌델은 도덕적 판단력이 결여된 능력주의는 시효를 다 했다고 분석한다. 이와 함께 샌델은 “누구나 능력껏 노력하면 뭐든 가능”하다는 공통의 신념에 의문을 갖게 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해결책도 제시한다. 공동선이 그것이다.   


“사회 속에서 우리 자신을, 그리고 사회가 우리 재능에 준 보상은 우리의 행운 덕이지 우리 업적이 아님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운명의 우연성을 제대로 인지하면 일정한 겸손이 비롯된다.”(p.353) 샌델이 독자들에게 제시하는 하는 공동선을 기르는 방법이다.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는 철학자 김형석은 그의 저서 ≪백 년을 살아보니≫에서 이렇게 말한다. "적게 받고 더 많은 것을 베풀면서 살 수 있다면 그보다 보람 있고 행복한 삶은 없을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지식과 학문도 모두가 스승과 다른 학자들로부터 받은 것이다. 


더 솔직히 말하면 생명과 인생 자체가 부모, 가족과 더불어 주어진 것이다.”(p.33, 백 년을 살아보니, 덴스토리, 2016) 104세의 철학자가 들려주는 이 말은 개인의 행복이 공동선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진정으로 자녀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면, 부모가 물려줘야 할 유산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겸손과 공동선의 소양이 아닐까?    


아이들에게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물려주기 위한 고민, 

공동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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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oo [공정하다는 착각, 브런치's 책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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