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랑과 연대가 시작되는 곳

제임스 맥브라이드의 ≪하늘과 땅 식료품점≫을 읽고, 책 서평

by eunjoo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또 인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추구하는 것은 결국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2024 노벨 문학상 시상식에서 한강 작가가 밝힌 수상 소감 가운데 일부분인데요. 이 말이 실감나는 문학작품이 있습니다.


제임스 맥브라이드가 쓴 장편소설 ≪하늘과 땅 식료품점≫입니다.


1972년 6월의 어느 날, 펜실베이니아 포츠타운의 헤이즈 거리에 있는 오래된 우물 바닥에서 유골 한 구가 발견됩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유골로 인해 이야기는 1930년대 치킨힐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 사람들의 삶을 재조명하게 되는데요. 그들이 겪은 사랑과 분노, 차별과 혐오, 폭력과 연대의 이야기가 한 편의 영화처럼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보스턴 글로브는 이 작품을 “대공황 시대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유대인 이민자들이 살고, 사랑하고, 싸우고, 함께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풍부하고 세심하게 그린 초상화”라고 격찬했는데요. 현재 미국 영화제작사 A24와 스티븐 스필버그 제작사에서 공동 영화 제작이 확정된 작품으로. 대공황기의 미국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대작을 기대해봅니다.


이 책을 쓴 제임스 맥브라이드는 2024년 타임지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오른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재즈 뮤지션입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와 폴란드 출신 유대인 어머니를 둔 작가는 2009년 흑인 노예 문제를 다룬 소설 ≪아직 불리지 않은 노래(Song Yet Sung)≫를 발표하며 작가로서 입지를 다졌는데요.


2014년 ≪더 굿 로드 버드(The Good Lord Bird)≫로 내셔널 북 어워드를 수상했고, 1996년에 출간한 작가의 어머니와 가족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 ≪컬러 오브 워터≫는 2년 이상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고, 미국 전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 교재로 사용된 영향력 있는 작가입니다.


≪하늘과 땅 식료품점≫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구심점이 되는 초나 역시 유대인으로, 사고로 듣지 못하게 된 흑인 소년 도도에게 엄마 같은 역할을 하는데요. 작가에게 미친 어머니의 선한 영향력이 연상되는 인물입니다.


제1부 : 사라지다, 제2부 : 구하면 얻으리라, 제3부 : 이루어지다. 모두 3편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에는 실로 많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하늘과 땅 식료품점 주인이자 중심 인물인 유대인 초나와 극장을 운영하는 초나의 남편 폴란드 출신 모셰. 모셰의 사촌 이삭, 초나와 가까운 이웃인 흑인 애디와 남편 네이트, 사건의 주요 인물이자 사고로 듣지 못하게 된 흑인 소년 도도 등


1972년 6월 어느 날, 도시개발업자들이 새로운 타운하우스로 가는 도로를 만들려고 헤이즈 거리 구역의 바닥을 파헤친 다음 날. 그곳에 있는 우물 바닥에서 유골 한 구와 벨트 버클과 팬던트, 빨간색 의상의 조각으로 추정되는 오래된 실뭉치가 증거로 발견됩니다.


경찰은 근처에 살고 있는 유대인 노인 말라기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며칠 후에 조사할 예정이었는데요. 갑작스럽게 닥친 허리케인 아그네스로 인해 유골은 물론 우물과 증거물 심지어 말라기 노인까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립니다. 결국 유골에 대한 수사는 무산되고 맙니다.


“신이 치킨힐을 감싸안으시고 이 비참한 곳에 마지막 정의를 실현하셨기 때문이었다.”(p.13) 신이 허리케인 아그네스로 사건의 증거를 모두 날려버림으로써 정의를 실현했다는 작가의 말이 지닌 의미는 무엇일까요?


1930년대 대공황 당시, 포츠타운에는 다른 지역에서는 살기 힘들어서 찾아 든 유대인과 흑인과 백인 이민자들이 주민의 대다수를 이뤘는데요. 수많은 등장인물을 둘러싸고 시간과 배경을 바꿔가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유색인종과 약한 자들에게 가해진 차별과 폭력 그리고 그에 맞서는 그들의 사랑과 용기를 보여주는데요.


주정부가 청각 장애를 지닌 도도에게 교육을 명목으로 보내려는 ‘펜허스트 주립 정신병원’은 실체가 밝혀지면서 1987년에 문을 닫기까지, 실재 존재했던 최악의 수감시설입니다. 초나를 비롯한 이웃들은 모두 차별 당하고 핍박 박는 사람들인데요.


“하늘에 눈부시게 반짝이는 별 하나 보다 여러 별들이 각자의 중력으로 서로를 붙잡아 주고, 밀고 당기며 돌아가는 별자리 전체를 보여주고 싶었다.” 작가의 이와 같은 의도처럼, 초나와 이웃들은 도도를 지키기 위해 하나로 뭉칩니다.


허구와 역사적 사실을 절묘하게 배합해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가 아닌 “인간이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작가의 저력과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모두 487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은 문학이 줄 수 있는 감동과 울림을 모두 선사받게 될 것입니다.


“나이 든 그 유대인과 언덕에 모여 살던 비슷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많은 것을 훔쳐 갔던 그들로부터 잃어버린 시간을 돌려받았다.”(p.14, 하늘과 땅 식료품점, 미래지향, 2024)



#하늘과땅식료품점 #제임스맥브라이드 #장편소설 #미래지향 #사랑과연대 #인간이얼마나잔인할수있는지 #인간이얼마나아름다운지 #도서협찬 #추천도서

하늘땅표지뒤.jpg by eunjoo [하늘과 땅 식료품점, 브런치 책 서평]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집사가 되고 싶은 당신 필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