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력의 필요성과 함께 사라진 남자의 효용

성숙한 남성 07

by 꿈애취애

남자로서 행복했던 적이, 저에게는 3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아내가 임신했을 때였습니다. 원초적인 본능이 충족된 느낌이었습니다. 생물학적 행복입니다. 두 번째는, 어찌하여 아내 명의로 집을 구매했을 때였습니다. 남편으로서 큰 일을 해낸 것 같았습니다. 경제적 행복입니다. 이 행복들을 매번 느끼고 싶었습니다. 그러려면 자식을 계속 낳아야 하고, 때마다 집을 사야 합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내 인생에서 남자로서의 행복은 이 2번(아이와 집)이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가족은 매주 주말에 집에서 함께 영화를 봅니다. 영화 선정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돌아가면서 합니다. 애니메이션도 보고, 액션도 보고, 코미디도 봅니다. 가족 모두가 싫어하는 장르는 “공포&호러”입니다. 애써 시간들여 공포라는 부정적인 감정을 체험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끔 유명한 - 화제가 되는 영화가 나옵니다. 그 중에는 좀비 영화 부산행도 있었습니다. 부산행을 보기로 했습니다. 제 와이프는 말그대로 제 등 뒤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봤습니다. 그때 결심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매주 공포 영화를 봐야겠다! 가정에서 내 존재의 의미를 느꼈습니다. 내 뒤에서 벌벌 떠는 여자(아내)가 있고, 내가 실제로 방패가 되어 지키니, 남자로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행복입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여러 차이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힘의 우위입니다. 일반적으로 남자의 신체적 능력은 여자보다 월등합니다. 이 사실은 대한민국 헌법재판소 판결(2023.9.26)에도 명시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남자만이 징집 대상입니다.

저는, 미래에는 한국에서도 여성 징집이 이루어질 것이라 보았습니다. 병력 자원이 줄어드는 상황에서의 불가피한 선택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발발한 지 거의 4년이 다 되어 가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러시아의 인적 손실은, 추산으로 전사자가 12만에서 35만명입니다. 부상자를 그 3배로 보면, 50~100만명이 남자들이 전장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런데도 러시아, 우크라이나 양국(兩國)은 여성에 대한 징집을 실시하지 않습니다. 여성도 징집 대상인 북유럽 국가들에 비해 성평등 의식이 낮아서일까요? 저는 의식 문제가 아니라, 전투력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전투에 적합하지 않기에, 즉 대량 징집해 전장으로 몰아 넣으면, 적응하지 못하고 몰살할 위험이 있으니, 건강한 20~30대 여성보다 조금 노쇠한 40~50대 남성들이라도 끌고 간다고 봅니다.


남자들의 효용은 힘입니다. 체격(키와 몸무게) 차이로 나타나는 힘의 격차를 여성들은 따라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여성은 상대방(파트너)에게 자신들에게 없는 “힘”을 기대합니다. 힘쎈 남성을 알아 보는 법도 쉽습니다. 직관적입니다. 키가 큰 사람입니다. 일반적으로 키가 크면, 체격도 크고 체중도 많이 나아갑니다. 그와 함께 힘도 비례합니다. 그래서 키 큰 남자가 인기가 많습니다. 힘이 필요한, 폭력 상황으로부터 보다 나은 안전을 제공받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남자들의 효용은 공권력이 확립된 현대 사회에서 사라져 갑니다. 지금 사회에서 폭력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수단이 되지 못합니다. 아무리 부당한 일을 당해도, 폭력을 휘두르면 범죄자가 됩니다. 폭력이 필요 없는 곳에서 남자만이 가진 “힘의 우위”는 그 효용을 잃어 갑니다.

그렇지만, 그 매력 요소는 아직 연예&결혼 시장에 잔존해 있습니다. 데이트 중 운동장에서 여자 친구 쪽으로 굴러 오는 축구공을 남자가 차서 날려 버린 일이나, 가정에서 아내가 열지 못하는 쨈 뚜껑을 남편이 대신 열어 준 일이 찬사를 받는 것은 힘의 우위, 혹은 힘의 효용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중학생인 제 딸은, “왜 결혼을 하고 싶으냐?”라는 질문에 “보호 받고 싶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보호 받고 싶은 마음이 여자의 본능이라면, 보호하는 역할은 남자의 행복입니다. 보호하고 싶고 보호 받고 싶다. 비대칭적 조건입니다. 서로의 요구가 일치합니다. 그래서 여자는 키 큰 남자를 찾고, 남자는 아무래도 자기보다 몸집 작은 여자(방패가 되어 주려니 보호 대상이 방패 안에 들어올 크기여야)에 눈이 가고, 서로 이루어집니다.


결혼 시장에서는 서로에게 요구되는 스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직장, 자산, 외모, 성격, 취미(라이프 스타일) 등등입니다. 그런데 평생 변하지 않는 스펙이 있습니다. 부자였다가 가난해질 수 있고(재산), 대기업 다니다가 실직할 수 있고, 자영업 하다가 잘 되서 회사 대표가 될 수도 있습니다(직장). 외모도 노화와 함께 살이 쪄 예전과 같이 않을 수 있습니다. 불륜 드라마를 보면 영원할 것 같은 사랑도 변하고, 심지어 그렇게 변하기 힘들다는 성격도 어떤 계기를 통해 변모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키”는 변하지 않습니다. 키는 고정된 값입니다. 만약 다른 모든 스펙을 포기하고 “키”하나만을 보고 결혼한다면, 일생 만족하며 살 수 있습니다. 변하지 않으니까요. 거기에 더해 변하지 않는 스펙을 하나 더 추가한다면, 그것은 “나이 차”입니다. 10살 어린 사람과 결혼하면, 그 차이는 절대 메꾸어지지 않습니다. 죽을 때까지 유지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남자만이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역할)는 물리적 위협에서의 보호(안전)입니다. 경제적 풍요로움, 사회적 지위 등은 여자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권력이 확립되고 훌륭한 치안을 가진 사회에서 남자가 가진 힘의 중요성은 줄었습니다. 개인간의 폭력이 더 이상 갈등 해소의 수단이 되지 않기에 바람직한 일입니다만, 아버지들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야만적 상황에서 오직 아버지만이 가정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일 말입니다. 가정 내에서 그런 힘을 가진 유일한 존재가 아버지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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