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아니 시간을 지킨다.

똑같은 상품, 똑같은 고객, 다른 용도

by 꿈애취애

내가 몸 담고 있었던 프로젝트의 목표는 건강을 지켜 주는 집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 집에 살면 건강관리가 자동으로 되어서 안 아프고 수명이 늘어나는 꿈 같은 집을 만드는 것이었다. 정확한 목표는 아니었지만, 대략적으로 그러했다. 기술 개발 중심의 프로젝트였고, 계륵과 같이 붙어 있는 파트가 법률적 검토와 경제성 평가였다. 내가 경제 파트에 있었다.

나는 "집은 누가 살까?"라는 평범한 질문에 답을 구했다. 일본에서 주택 구입자는 대부분 자녀를 둔 30-40대의 부모다. 젊고 건강하다. 80세 고령자에게 "이 집에서 살면 수명이 10년 늘어납니다."라고 말하면, 귀가 솔깃할 꺼다. 그런데 30-40대에게 그런 말을 하면 잘 먹힐까? 수명이 다 할 때까지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남았으며, 그들은 건강하기 때문에, 건강에 대한 수요가 그렇게 강하지 않아 보였다. 다이어트나 미용에 관련한 건강 수요는 있어도, 수명을 늘리고자 하는 수요가 크게 있어 보이지 않았다.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자녀가 있는 기혼자들을 대상으로 리서치를 실시했다. 마지막 질문에 집 혹은 생활에 대한 불만이 무엇인지를 주관식으로 물었다. 그리고 응답을 텍스트마이닝 기법으로 분석했다. 제일 많이 나온 단어는 "아이들(자녀)" 그리고 "시간"이었다. "건강"이라는 키워드는 논외로 할 정도로 나오지 않았다. 자녀가 있는 기혼자의 관심은 "아이들(자녀)"였고, 불만은 "시간이 없다"로 해석했다.


주택 수요자에게 건강 향상, 건강 관리 기능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였던 것 같다. 이 결과를 가지고 나는 고민했다. 이것만 가지고 보고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떻게하면 되는데?"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솔류션)을 함께 내 놓아야 할 것 같았다. 그때 도움이 된 것이 우리 애 충치 치료를 위한 치과 방문 경험이었다. 어린이집에 다닐 때 애 충치 치료를 위해 맞벌이 중, 한 명이 반차를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게 얼마나 번거로웠던지, 가까운 곳에 주말에 하는 치과나 야간에 하는 치과가 있는 지를 찾았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어린이집에서 조금만 더 신경 써 주었으면, 썩기 전에 여유를 갖고 대응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괜한 마음(남탓)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집에서 치아관리(건강관리)가 자동으로 돼서 병원 갈 길이 줄어든다면, 그래서 반차로 낼 일도 없어진다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가고 대기하고 다시 오는데 3시간, 그 중에 진료는 3분, 이 상황을 아예 없어버릴 수 있는 솔류션이 있다면 구매를 검토해 볼 만해 보였다. 건강 관리가 되는 헬스케어 스마트홈은 거주자의 건강을 지켜주는 게 아니라, 거주자의 시간을 지켜 준다고 어필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프로모션을 실행하지는 않았다. 연구사업단은 여전히 열심히 기술과 디바이스를 개발했다. 우리는 계륵이었다.


스마트홈이라는 똑같은 상품이고, 30-40대 주택 수요자라는 똑같은 고객층이었는데, 어느 관점에서 전하느냐에 따라 상품의 매력도가 달라진다.


여담인데, 내가 발표회때, 젊은 세대(주택 수요자)는 건강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자, 연구단장과 사업단장 안색이 변했다고 한다. 그런데 동료들은 우리의 역할이 그런거라며 나를 옹호(응원)해 주었다. 내부자가 아닌, 외부에서 고용한 연구자의 역할이 그런 말 하는 거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나는 내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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