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메타인지 -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복지관 등에 가서 실습을 해야 한다. 내가 간 곳은 아동복지원이었는데, 원장님은 실습생들에게 여러 심리검사, 적성검사 등을 받게 했다. 다른 사람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런 검사들이 필요하고 본인들이 이런 검사들을 받아야지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취지였다. 그래서 미술 검사, MBTI, 자존감 점수, 자살충동 평가, 우울증 평가 등 단시간내 할 수 있는 검사라면 다 해 본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미술 검사, 그리는 검사를 하면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내가 그린 마을, 섬, 산의 관점이 모두 오버뷰였다. 높은 데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는 뷰였다. 하나의 검사에서 마을, 섬, 산을 함께 그린 게 아니라, 어느 검사에서 마을 그리고 다른 검사에서 섬을 그리고 또 다른 검사에서 산을 그려보니, 모두 하늘에서 내려 보고 있었다. 함께 검사에 참여한 동기 실습생들 중에서 이렇게 그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지막에서 그린 산은 내가 보아도 약간 괴이했다. 보통 산을 그리라고 하면 평지에서 바라보는 산의 옆 모습을 그리거나 산 밑에서 산을 올려도 보며 그리는데, 나는 인공위성에서 정확히 수직으로 내려다 보이는 등고선이 있는 산을 그렸다.
아동복지원에 받은 심리테스트 등이 좋았던 것은 원장님이 그 결과를 해석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점에 대해서도 물었다. “왜 저는 풍경을 그릴 때 모두 오버뷰로 그리나요? 이게 무슨 의미인가요?”원장님이 그 해석을 못했다. 원장님 사모님이 이 분야 심리학 박사인데, 아마 그 분도 이게 뭔지를 모르셨던 것 같다. 내가 아는 대표님들 중에 아동 심리학 박사 - H대표가 있었다. 그래서 그분께도 지나가는 말로 이게 뭔지를 물었는데, 그분도 몰랐다. 자기가 이 분야에 계신 분들에게 물어 보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지도교수님께 물어 알아 오셨는지 설명해 주었다. 그건 메타인지가 뛰어나다는 의미란다.
메타인지? 그 단어를 처음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그 단어를 몇 개월전에 처음 접했다. 그 이후에 직업이 교사인 어느 블로거가 쓰는 것을 보며 두 번째로 접한다. 메타인지? 그게 뭔가요? 라는 물음에 H대표님이 설명하기를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이란다. 그 한 줄로 이해 될리가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내 머리 속에 있는 개념으로 이해를 시도했다.
유학(儒學)에 양명학(陽明學)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 양지양능(良知良能)이라는 개념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전을 검색하면, 양지양능을 ‘경험이나 교육에 의하지 않고 선천적으로 사물을 알고 행할 수 있는 마음의 작용’이라고 나온다. 여기도 한 줄뿐이지만 내가 배운 것들을 토대로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은 경우다.
옛날, 어느 사람이 어느 마을을 지나다고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보고 놀라서 얼른 잡아 들어 구한다. 아이를 부모에게 맡기고 다시 자기 길을 걸으며 생각한다. ‘나는 왜 그 아이를 구했을까? 그 순간에 내가 저 아이를 구했을 때의 칭송을 생각한 것도 아니고 부모로부터 받을 사례를 계산한 것도 아닌데, 왜 나는 저 아이를 구했을까? 혹시 내 마음에 이익을 따지지 않고 사람을 구하고자 하는 선한 마음(良心)이라는 게 있는 게 아닐까?’하며 양심의 존재를 인식한다. 그리고 한 번 더 생각한다. ‘나는 어떻게 양심이라는 게 내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혹시 내 안에 양심을 인식할 수 있는 어떤 지적 능력이 있는 게 아닐까?’라 하며 양심을 알 수 있는 지적 능력이 있음을 인지한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양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지적 능력이 내게 있음을 나는 또 어떻게 알았을까, 그런 능력을 인지할 수 있는 또 다른 인지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 그게 내가 아는 양지양능이다.
이 설명을 H대표에게 했다. 그랬더니 그게 메타인지와도 맞다고 했다. 메타인지가 뛰어난 사람들, 예를 들어 학생들은 자기 문제를 잘 파악한다고 한다. 시험 점수가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으면, 그 이유를 잘 분석한다고 한다. 언어(국어), 수리(수학)에 점수가 부족하면 언어의 어디에서 문제인지, 수학의 어디가 문제인지를 파악한다. 더 나아가 투입 시간 대비 성과를 계산해, 국어의 어디를 혹은 수학의 어디를 선택 집중해야지 가장 최대의 점수가 나오는지를 예상하고 시간을 배분해서 공부하는 것이다.
학교 선생님이 오랜 시간 곁에서 지켜보며 문제를 파악해 주고 방법을 알려 주면 학생 누구나가 그렇게 하겠지만 메타인지가 뛰어난 학생들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본인들이 알아서 그것을 찾아낸다는 것이다.
H대표의 설명을 듣고 보니 참 좋은 능력인 것 같았다. H대표도 좋은 말만 해 주었다. 그러니 궁금해져 물었다. “이거 단점이 무엇인가요?”H대표는 바로 답해 주었다. 두 가지란다. 하나는 공감 결여다.
H대표의 말에 의하면 감정이란 일종의 몰두란다. ‘화가 머리 끝까지 뻗쳐서 눈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깊은 슬픔에 빠져 주위 사람들 말이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라는 표현처럼 감정은 자기를 잊고 빠져 버리는 일종의 몰두라고 한다. 그리고 그 대척점에 서 있는 포지션이 자기를 객관적으로 바라 보는 거다. 객관화가 뛰어나면 사건을 분석하고 더 밑에 숨어 있는 원인을 찾아 해결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장례식장에 가서 보면 죽음은 산자의 문제이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남편을 잃고 슬퍼하는 부인의 말은 ‘이제 나는 어떻게 살라고’로 요약할 수 있다. 떠나간 남편을 이제 다시는 보지 못한다는 슬픔도 있지만, 남편 없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밑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 “자식들도 이제 다 컸고, 보험금도 충분하니 앞으로의 삶에 대해 걱정하실 필요 없다”고 말하는 큰 실수를 할 수 있다.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인데, 사람들이 원하는 것 솔류션이 아니라, 공감인 것 같다. 고령의 어느 목사님이 자주 감기에 걸리는데, 감기 걸린 자기에게 원인 분석해 주는 사람이 제일 싫텐다. ‘누가 그걸 몰라!’ 차라리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많이 아프시겠어요.”라고 말해 주는 사람이 훨씬 고맙다고 한다.
객관화가 지나치면 공감능력이 없는 사람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어쩌면 실제 공감 능력이 부족한 건인지 모르겠다. 공감이란 결국 같은 감정에 빠지는 것인데, 감정에 빠지기 어려운 특성치를 가지기 때문이다.
메타인지가 뛰어난 사람의 두 번째 단점은 느리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분석하고 솔류션을 찾고자 하는 행동은 결코 생존 경쟁에 유리하지 않다고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게 생존 경쟁에 유리하다는 뜻이다. 물론 H대표의 말이다. 생각해 보면 그것도 맞는 말인 거 같다.
예를들어 미국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면, 무조건 총소리 나는 반대 방향으로 뛰어야 한다. 그때 그 자리에 서서, 이게 무슨 소리인지, 소리와 자기 지점과의 거리가 얼마인지, 이 상황에서 내 선택지가 몇 개인지, 그리고 리스크가 얼마인지를 계산하고 있으면 안 된다. 그냥 남들 도망가는 방향으로 아무 생각없이 같이 뛰어야 한다. 메타 인지 특성치 소유자는 웬지 그것을 분석하고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뛰어난 메타인지 소유자들은 뭔가 텀(term)이 긴 일들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연구와 같이 10년, 20년 동안 하면서 모든 걸 의심해 보고 분석해 보는 일이 맞을 것 같다. 혹은 준비를 많이 하고 행동이 짧은 거, 변화무쌍한 현장에서의 임기응변이 요구되기 보다는 기획과 계획이 많아야 하는 직업이 어울려 보인다.
나는 재미 있는 상상도 해 보았다.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잘 파악해서 그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다면, 그래서 그들이 행복해진다면 나는 위대한 사람이 될 것 같다는 상상이었다. ‘나에게 상담 받으면 누구나 행복해 질 수 있다.’ 이게 된다면 나는 정말 위대한 사람이다. 그런데 금방 이게 실현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누구나 타인에게는 객관적이다. 바둑, 체스의 대전자들이 아닌 옆에서 보는 3자가 상황이 객관적으로 보기 쉬운 것처럼, 이해당사자가 아닌 제 3자는 타인을 객관적으로 본다. 남의 행동과 이야기를 가만히 보고 듣고 있으면 그 사람의 문제가 무엇인지 무엇을 진정 원하는지 당사자보다 쉽게 알 때가 있다. 그리고’객관적’이라는 의미도 너와 내가 아닌, 제 3자들이 본 상황 분석의 평균치 아닌가! 보통 자기가 자신의 문제를 보기가 어렵지, 남 문제 보기는 쉽다. 메타인지는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 즉 자기 자신에게만 적용되는 능력이다.
이렇게 보면 - 계속해서 자기 분석을 하면, 서귀포 2주 살기에서 자기 소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딱 한 사람도 내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처음에 듣고 있었는데, 그냥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자기 꿈이 아닌 행동, 계획 없는 망상을 말했음을 알았다.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구나로 정리할 수도 있는데, 그게 뭐가 문제인지 설명할 수가 없다. 재미 없는 영화도 2시간 허비하면서 보기도 한다. 15분만 어떤 사람의 망상를 듣는다고 그게 내게 큰 손해가 되는 일도 아니다. 그 사람이 내게 해코지를 한 것도 아닌데, 내가 싫어하는 사람 목록에 그 사람이 상위권에 있다는 게 놀라울 일이다.
그 사람은 내가 되기 싫어하는 모습을 건드린 것이다. 나는 내가 말만 하고 아무 것도 안 하는게 싫다. 꿈을 말하며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거, 내 꿈이 망상이 되는 게 정말 싫다. 행동하고 도전해서 실패할 수 있다. 그건 성공을 위한 과정이고 자기 실력을 알 수 있는 기회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최악이다. 그 사람의 자기 소개에서 나는 내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 내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싫었던 것이다.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다.